1980년대까지도 주말은 현재처럼 보편적 휴일이 아니었다. 업종 특성, 기업 규모, 고용 형태, 직업 지위와 무관하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주말노동을 해야 했다. ‘주말이 되면 휴식을 취하거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과 태도는 주40시간제 도입(2004년) 이후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시점에도 완전한 형태의 주5일제 도입률은 절반에도 못 미쳐 격주 토요일 근무가 남아 있었다. 기업 규모에 따라 주5일제 실시율 차이가 컸다.
이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투쟁이 이어져 주말 노동은 지금처럼 제한되었다. 적어도 직장인들에게는 점차 주말노동이 특수한 경우의 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주말=쉼’은 하나의 사회적 권리이자 문화가 됐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이뤄지는 주말노동 가전판매노동자들은 ‘상시’ 주말노동중
여전히 주말노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 많다. 버스/지하철/택시 노동자, 제철소/발전소 노동자, 경찰/소방/병원/공항 노동자들은 교대제 형태의 주말노동을 하고 있다. 해당 분야들은 통상 ‘필수적’이라 여겨지는 사업장이다.
또 마트나 백화점 등 유통서비스업 분야의 노동자들도 교대제 형태로 주말노동을 한다. 최근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 폐지를 공론화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그간 유통자본의 365일 24시간 영업에 대항하는 사회적 투쟁의 성과로서 주말노동이 제한돼 왔다. 그러니 작금의 논란은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의 사회적 의미가 언제든 퇴행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합원들이 4일 서울 용산구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앞에서 '국민제안 TOP10 2탄 규제심판회의, 대형마트 의무휴업폐지 시도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8.04 ⓒ민중의소리
최근에는 택배/화물/물류/배달 노동자들의 주말 노동이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들의 주말노동은 일-생활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상당한 장시간 노동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여기서 지칭하는 ‘주말’은 사회적 의미의 휴일, 토~일요일이다. 물론 택배/화물/물류/배달 노동자들도 쉬는 날이 있다. 근기법 상 주휴일 규정에 따라 평일 가운데 하루를 주휴일로 정하고 있다.
얼마전 실태조사를 통해 알게 된 가전판매노동자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겐 주말이 없었다. 게다가 가전판매노동자의 주말노동은 앞선 사례들과는 달리, 상시 주말노동을 해야 하는 경우였다. 이들에게 사회문화적 차원의 주말에 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극단적 형태의 ‘주말이 없는 삶’이다.
한 가전판매 노동자는 연인이 “나도 당신이랑 같이 주말에 영화 보러 가고 싶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주말노동이 ‘어쩔 수 없다’보니 보통 직장인들이 주말에 흔히 하는 것들을 함께 할 수 없어 서운하다는 소리였다. 이 노동자는 나에게 “입사하고 나서 주말에 쉰 게 기억이 안 납니다. 언제였나?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 털어놨다. 연인의 서운함이 오랫동안 쌓여 표출된 것 같았다.
주말에 못 쉬니, 주변인 경조사에 참석 불가 가족·친척·친구와의 관계 갈등 점차 심화돼
노동 패턴이 통상적인 사회 리듬과 불일치하면, 주변인들과의 관계 갈등을 빚게 된다. 우선 지인과 친척의 결혼식에 못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전판매노동자들이 쓸 수 있는 휴가 가운데, 경조사 휴가의 사용비율이 그나마 높은 편이었다. 이를 경사(慶事)와 조사(弔事)로 나눠 보면, 주말 일정이 대부분일 경사에 휴가를 내는 게 더 여의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불참러’가 되다보니, 친구 관계가 점차 소원해지는 것이다.
“보통 경조사가 주말에 생기니까. 진짜 오래된 친구가 결혼하는데, 제가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매장에서도 인원이 많이 빠지는데 ‘갔다 오겠습니다’라고 하지도 못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친구 몇 명은 서운해하고 저한테 따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경조사 참석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가족들과 같이 여행 가거나 시간 보내는 게 어렵습니다. 우리는 주말에 절대 못 쉬고 이러니까 (관계가) 삐끗삐끗할 수밖에 없어요.”
과거 야간노동에 대해 살펴볼 때, 특정 노동패턴으로 인해 사회 관계가 좁아지고 제한된다는 연구결과들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비춰 주말노동이 유발하는 관계 차원의 부정적 효과도 유의미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결혼식 자료사진 ⓒ뉴시스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엔, 주말노동의 부정적 효과에 대한 호소가 더 컸다. 한 가전판매노동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관점에서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평한다면 ‘매우 좋지 않을 것’이라며 자조했다. 그는 “좋지 않을걸요. 왜냐하면 우리가 주말에 쉬는 게 사실 어렵잖아요. 근데 아이들은 다 주말에 쉬니까. 그래서 ... 제가 보기에는 정상적인 가정, 그건 아닌 것 같아요”라며 탄식했다.
인터뷰 여러 곳에서 워라밸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대가 크다는 것이 느껴졌다. 반면 일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기대와 현실 간의 격차가 큰 것이다. 자조 섞인 말을 했던 노동자는 회사 평가 기준에 워라밸을 넣으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순위가 한참 떨어질 것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주말 노동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노동자들은 계속 고통을 감내해야 하나
가전판매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들에게 주말노동은 ‘어쩔 수 없는 것’, ‘불가피한 것’, 심지어는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여겨지는 느낌이었다.
“당연한 거에요. 스케줄 자체가 일반 직장인 같은 경우는 주중 근무, 주말 휴식이잖아요. 근데 영업직 같은 경우는 주말에 근무를 거의 다 대부분 하죠”
“(주말 근무를 왜 할 수 밖에 없느냐는 질문에) 실적이죠. 어느 매장이나 다 쪼아요. 뭐 어쨌든 영업팀 자체가 숫자로 평가를 하는 집단이라, 일 단위로 내 판매가 전산으로 나와요. 일 판매 얼마, 목표 얼마 중에서 얼마 했나, 그리고 월 판매 얼마, 누적 얼마까지 나오죠. 그 스트레스는 사실 뭐 저희가 사무직군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요”
왜 이런 고통을 판매노동자가 각오하고 감내해야 하는가? 모든 판매영업직이 다 그런가? 업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기업이 ‘영업직이니까’란 명목 하에 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적잖은 의문이 스쳐갔다. 이중 가장 먼저 든 의문은 ‘왜 교대제 형태의 격주 주말 근무조차도 안 될까’였다. 이 질문을 던지면, 노동자들은 ‘영업직이라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답을 했다.
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가전 매장에서 삼성 냉장고가 진열돼 있다. 이날 삼성전자에 따르면 1분기 연결기준 잠정실적을 집계한 결과 매출 77조원, 영업이익 14조1천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2.04.07. ⓒ뉴시스
가전판매노동자들은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 식사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점, 퇴근 후나 휴일/휴가 중에도 걸려오는 고객 전화 응대, 입구에 서서 고객을 맞이하는 입구대기, 판매 실적으로 줄 세우는 행태, 그걸 전 직원이 볼 수 있게 해 이뤄지는 실적 쪼기, 실적이 곧 인격이라 여기는 분위기까지 많은 불편한 것들을 업종 특수성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체로 영업맨으로서 어느 정도 각오하고 감내하는 분위기 였다. 이런 개인 차원의 ‘어쩔 수 없음’들은 매출을 최대화하려는 기업의 필요에 의해 강제로 굳어진 게 아닌지, 결국은 대자본들의 착취 재생산에 기여하게 되는 게 아닌지 의혹이 커져갔다.
어쩔 수 없음, 불가피함, 당연함. 이런 것들이 고정불변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언제부턴가 만들어진 것이라 상정해 보자. 그러면 이런 ‘어쩔 수 없음’들이 노동자들의 권리의 언어를 후순위로 밀어내고, 건강과 워라밸을 침해하며 기이한 형태의 착취들을 이어가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더 적은 인력으로, 더 싼 값에, 더 긴 시간 노동을 뽑아내려는 가전판매 자본이 만든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그러니 주말노동이 필요한 쪽은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이지, 관계 갈등, 건강문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아니다. 가전판매노동자들이 영업맨이기 때문에 당연하게 수긍해야 할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최근 노조 설립 후 노동자의 권리를 무력화하는 업무 관행들에 대한 비판이 하나둘씩 나온다고 한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을 받아들여 왔는데, 이건 아니다 싶다’는 것이다. 또 주말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이 각종 스트레스와 고통을 상쇄하지 못하는 형국이라고도 한다. 이런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그간 자본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어쩔 수 없음’을 표방한 관행들을 시원하게 깨는 조치들로 조직화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