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기침체 우려 속에 긴축재정이라니

정부가 긴축재정 기조를 선언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에는 다음 해 본예산을 편성할 때 그해 지출보다 증가한 상태에서 예산을 편성했으나 내년 본예산은 올해 추경을 포함한 규모보다 대폭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총지출을 679조원으로 볼 때 이보다 상당히 줄여 예산을 잡겠다는 것이다.

추 부총리는 또 "현재 역대 최대 수준의 지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며 "공공 부문의 솔선수범 차원에서 장·차관급 이상의 임금은 동결하되 10%를 반납하도록 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추 부총리의 언급이 현실화된다면 내년 예산은 2010년 이후 13년만에 직전 해보다 줄어든 규모가 될 예정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복지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총예산이 늘어나는 건 자연스럽다. 지금과 같은 고물가 국면엔 지출을 동결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긴축이 된다. 그런데 아예 숫자상으로도 긴축을 하겠다니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당국은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지만 결국 취약계층으로 가는 도움이 줄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국민을 설득할 뚜렷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당국이 내놓은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장 먼저 나오는 설명은 이른바 '건전재정'이다. 들어오는 것에 비해 나가는 것이 너무 많아 지출을 줄이겠다는 논리다. 놀랍게도 추경호 경제팀이 지난 달 21일 내놓은 건 대규모 감세안이었다. 소득세,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인하가 그것인데 하나같이 부자와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갔다. 받아야 될 세금을 깎아주고 나서 세입에 맞추어 세출을 깎겠다니 무슨 억지인가.

물가 핑계도 황당하다. 시중에 풀리는 돈을 줄여 물가를 잡겠다는 건데, 돈이 풀리면 물가가 오른다는 낡은 도그마도 문제거니와 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감세 기조와 충돌한다. 물가가 오르면 없는 사람들에겐 직격탄이 된다. 원자재 공급에서 문제가 생겨 올라간 물가를 당장 내릴 방법이 없다면 재정을 동원해 물가로 고통받는 취약계층을 도와야 마땅하다. 지금 긴축재정을 편성하겠다는 건 어려운 이들을 나몰라라 하겠다는 말일 뿐이다.

무엇보다 다가올 경기침체가 문제다. 물가를 잡겠다고 과도하게 올린 전세계 금리는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인위적으로 억누른 소비와 높아진 이자 부담은 모두 경기에 악영향을 끼친다. 아직은 아니라고 하지만 올 하반기부터 고용이 내리막으로 접어들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재정은 목마른 이들에게서 물 컵을 빼앗는 게 된다.

남는 것은 감세와 작은 정부, 재정건전화 같은 이념적 프레임이다. 보수정부로서는 당연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인 건 국민의 삶이다. 국민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긴축재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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