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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이 겪는 홍수

몇 십 년만의 가뭄이라더니, 얼마 후엔 백 년만의 폭우가 내렸습니다. 기후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힘있는 사람들보다는 힘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피해가 집중되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기후 변화를 가속시키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거든요.

19세기 영국 화가들의 작품 중엔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이 겪는 물난리의 모습을 담은 것들이 있습니다. 2세기 가깝게 흘렀는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홍수 A Flood c.1897 oil on canvas 139cm x 120.5cm ⓒ개인소장

순식간에 밀어닥친 물을 피해 사다리를 밟고 지붕으로 올라갔지만, 어느새 물은 발 밑에서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한 손으로는 어린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은 몸을 지탱하기 위해 굴뚝을 잡은 여인의 손등에는 모든 힘이 다 들어가 있는 듯 굵은 핏줄이 드러났습니다. 필사적으로 엄마의 치마를 잡은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그런데 엄마 품에 안긴 아기의 표정은 아주 평온합니다. 아마 엄마가 아이가 놀라지 않게 온 힘을 다해 안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엄마의 시선은 멀리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배를 향하고 있지만, 표정에는 공포감도 서려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 거친 물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프레데릭 모건 (Frederick Morgan)의 극적이고 역동적인 이 작품은 1897년 로열 아카데미에 출품돼 많은 갈채를 받았습니다.

모건의 아버지 역시 유명한 화가였는데, 직접 아들을 지도했습니다. 모건은 16세가 되던 해, 로열 아카데미에 ’리허설’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출품했는데, 이 작품은 전시회에 걸렸고 20파운드라는 금액에 팔리기까지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단한 성공이었지요. 그러나 이 이른 성공이 모건에게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 후 모건의 작품은 별 진전이 없었고 열정도 사라졌습니다.

3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모건의 아버지는 그에게 화가로서의 자질이 보이지 않으니까 다른 직업을 알아보라고 하고는 5파운드를 주고 런던으로 보냅니다. 런던에 온 모건은 이런저런 일들을 알아봤지만, 일자리를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온 모건은 화가로서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합니다. 아들의 재주를 확실히 알아보고 그 길을 걷게 하기 위해, 길을 돌아가게 하는 것도 마다치 않은 참 대단한 아버지였습니다.

홍수 A Flood 1870 oil on canvas 99.3cm x 144.9cm ⓒ맨체스터 미술관, 영국

아이의 요람이 물에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물이 쏟아졌는지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들의 1층이 모두 잠겼습니다. 어쩌다 아이가 누운 요람이 여기까지 흘러온 것일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한데 아이는 가지에 달린 물방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이의 얼굴에는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극적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아이의 발끝에 앉아 있는 까만 고양이는 입을 벌리고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위험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이겠지요. 다행히 저쪽에서 배 한 척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서둘러야 겠습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의 이 작품은 실제 있었던 일을 작품으로 남긴 것입니다. 1864년 3월11일 밤, 영국 셰필드에 준공을 앞둔 데일 다이크 댐이 터졌습니다. 댐이 가두고 있던 물은 거대한 폭탄이 되어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240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수 천 마리의 소떼와 마을들이 사라졌습니다.

이 때의 참사는 지금까지도 영국에서 일어난 인공 조형물에 의한 재난 가운데 최대 규모로 꼽힌다고 합니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는 극적으로 구조된 어린 아이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밀레이는 이 기사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그리게 된 것이지요. 댐이 붕괴되기 전 건슨이라는 현장 기술자가 댐에 작은 균열이 있는 것을 알았지만, 댐의 밸브를 열어 물이 더 많이 흐르게 하면 될 것이라고 오판한 것이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인재(人災)지요. 2007년에도 셰필드는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운하와 저수지가 수해를 키웠다’며 물줄기를 자연 상태로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끝없이 경고를 보내는 자연 앞에서 우리가 철이 들 날은 언제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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