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출석한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2020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거듭해서 인노회를 두고 “이적단체”라고 주장해 야당 의원들로부터 “경찰국장이 반헌법세력이냐”는 질타를 받았다.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진행된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업무보고에서는 인노회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들을 밀고한 대가로 경찰로 특별채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 국장을 향한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김 국장은 1988년부터 노동운동 조직인 인노회에서 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1989년 4월 인노회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될 무렵 돌연 잠적했고, 15명이 구속된 상태로 기소되면서 인노회 사건이 일단락된 지 두 달만인 같은 해 8월 경장 직급으로 갑자기 특채됐다.
경찰로 특채돼 승승장구하던 김 국장과는 달리 인노회 회원들은 이적단체로 낙인이 찍혀 처벌까지 받았다. 훗날 이들은 2020년 대법원 재심 판결을 통해 30여년 만에 이적단체의 누명을 벗었고, 현재 명예회복의 길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김 국장은 ‘인노회는 이적단체’라는 입장을 이날 행안위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김 국장은 ‘인노회가 민주화운동 단체냐, 이적단체냐’는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의 질의에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이적단체”라고 답했다. 박 의원이 ‘인노회 관련 법원 판결이 세 번 있었는데 명백한 주사파 이적단체라 생각하냐’고 재차 묻자, 김 국장은 “네, 그렇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 역시 2020년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며 ‘지금도 이적단체냐’고 거듭 물었는데, 김 국장은 이에 대해서도 “(대법원 판결 전까지) 27년간 이적단체라는 판결이 유지됐다”고 답했다. 대법원 판결을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심지어 김 국장은 ‘앞으로 경찰국장으로 일할 텐데 인노회가 주사파라는 입장에서 일할 것인가, 이적단체가 아니라는 입장에서 일할 것인가’라는 이 의원의 질문에 “고민하겠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김 국장은 동료들을 밀고하기 위해 돌연 잠적한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갖고 있는 인노회 활동을 그만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주사파 활동을 한 것에 대한 염증, 주체사상이 갖고 있는 공포 이런 것들 때문에 전향했다”며 “이런 것들을 해소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한 끝에 경찰이 되겠다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김 국장이 만약 인노회를 ‘이적단체’라고 생각했다면 왜 가입을 해서 지역 책임자까지 맡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김 국장이 수사당국의 프락치 활동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배경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이 “인노회를 왜 가입했냐”고 묻자, 김 국장은 “그 당시에는 주체사상에 심취돼 있던 때였다”고 답했다.
하지만 김 국장이 자신의 주장대로 만약 인노회가 주체사상에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면, 어떤 계기로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런 계기는 전혀 없이 갑자기 경찰이 된 점을 두고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김 국장은 ‘주사파 활동에 회의를 느낀 게 경찰 투신의 계기가 된 것이냐’는 박 의원의 질의에 “(인노회가) 이적단체이기 때문에 경찰에 투신을 한 계기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이적단체가 아니다’라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노회에 ‘이적단체’, ‘주사파’라는 색깔을 입히고 있는 김 국장의 태도에 야당 의원들은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당 행안위 간사인 김교흥 의원은 “그 당시 인노회에서 활동한 사람이 250명이다. 지금 눈을 다 시퍼렇게 뜨고 있다”며 “그중 인노회 구속자가 15명인데 14명이 민주유공자가 됐다. 1명만 범민련 문제가 껴서 유공자가 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무죄를 받았다. 그분도 곧 유공자가 될 텐데, 왜 자꾸 (인노회를) 주사파로 몰고 가냐”고 질타했다.
이에 김 국장이 “당시 국가보안법 판례에 의해 이적단체로 판결이 났다”고 거듭 주장하자, 김 의원은 “지금은 아니지 않나”라며 “진실과 정의는 3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똑같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김 국장이 살아온 배경을 보면 다 나와 있다. 다만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까 실증이 없을 뿐이다. 본인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고 사퇴를 압박했다.
민주당 이성만 의원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지 않는 저런 공무원을 데리고 어떻게 일을 할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판사 출신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향해 “판결을 무시하고 공무원이 업무를 일방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고 따졌고, 이 장관은 “대법원 판례를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대법원판결로 (1989년) 그 당시 인노회가 이적단체가 아니게 됐다”며 “(그런데도 이적단체였다고 주장하는) 김 국장이 오히려 반헌법 세력인 거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