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충북도청 앞에 시골주민들이 모였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마을주민들이었다.
사당마을은 1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농촌마을이다. 진천군은 산업단지가 18개나 있는 등 개발이 많이 된 지역이지만, 사당마을은 그래도 농촌의 모습이 남아 있는 마을이다.
땅과 집을 빼앗는 산업단지
그런데 2018년 무렵부터 마을에 산업단지가 추진된다는 얘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진천 테크노폴리스’라는 이름의 산업단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산업단지가 아니라, ‘태영건설’이라는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산업단지였다. ‘태영건설’은 SBS를 지배하는 태영그룹에 소속된 건설회사이다.
그리고 산업단지는 순식간에 추진됐다. 2019년 1월 충청북도 산업단지 지정계획에 반영됐고, 이명박 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에 따라 사업은 빠르게 추진됐다.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산업단지이지만, 최종적으로 주민들의 땅과 집을 강제수용을 할 수 있도록 법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집도 빼앗기고, 농사짓는 땅도 빼앗기게 된 것이다.
민간기업은 싸게 땅을 강제수용한 후에 산업단지를 조성해서 분양하면 돈을 벌지만, 땅을 빼앗긴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인 충청북도와 진천군이 나서서 산업단지를 추진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민편이 아니라 업체(태영건설)의 편에 서서 산업단지를 추진하는 데 앞장서다시피 한 것이다.
농지를 포기한 농림부
그런데 주민들이 마지막으로 기댄 것이 있었다. 산업단지 예정지 안에는 절대농지(농업진흥구역 내의 농지)가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절대농지가 해제되려면 농림축산식품부의 승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불승인을 해 주기를 기대했고, 2020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실제로 절대농지 해제를 불승인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불과 1년후인 2021년 10월 농림축산식품부는 입장을 바꿔서 절대농지 해제를 승인해 준 것이다. 다만, 태영건설이 산업단지 사업에 대해 100% 지분을 갖는 것이 아니라, 진천군이 20%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도록 했다. 그래서 진천군이 20% 지분을 갖는 특수목적법인인 ‘진천테크노폴리스개발(주)’가 설립되어 산업단지를 강행하게 됐다.
주민들은 이 과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1년 사이에 농림축산식품부의 입장이 이렇게 바뀔 수 있으며, 농지를 지켜야 할 농림축산식품부가 어떻게 이렇게 절대농지를 민간기업에게 넘겨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절대농지 해제를 승인해주자 사업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2021년 11월 충청북도는 산업단지 계획을 승인했고, 2021년 12월 31일에는 주민들을 이주시키겠다는 이주대책이 공고됐다.
진천테크노폴리스 이주대책 공고문 ⓒ진천테크노폴리스 이주대책 공고문
토지에 대한 감정평가가 진행됐고, 협의취득이 안 되면 강제수용 절차에 들어간다는 것이 예고됐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반대활동을 하고 있다. 2021년 11월부터 진천군청 앞에서 1인시위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사업시행자가 마지막 단계에서 토지를 강제수용하려면 산업단지 부지면적의 50%에 해당하는 토지소유자들의 동의가 필요한데, 주민들은 토지소유자들과 함께 주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동의비율이 50%를 넘지 않도록 최대한 결속을 유지하고 있다.
공무상 비밀누설 의혹까지 제기돼
동의비율 50%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자, 개발회사는 일부 토지소유자들을 설득해서 ‘토지수용재결신청 청구’라는 것을 하게 한 듯하다. 빨리 토지강제수용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일부 토지소유자가 ‘청구’를 하게 한 것이다.
이 청구를 근거로 개발회사는 지난 7월말 충청북도 토지수용위원회에 토지수용재결신청서를 접수했다. 일부 토지소유자들이 빨리 수용해 달라고 ‘청구’하고 있으니, 그것을 명분으로 토지수용재결신청을 한 것이다.
그러나 법제처의 유권해석에 따르면, 아무리 일부 토지소유자들이 ‘재결신청 청구’를 해도 동의비율 50%가 충족되지 않으면 토지수용재결신청은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충청북도 토지수용위원회는 요건에 미달한 토지수용재결신청서를 반려하지 않고 접수해줬다.
그리고 충청북도 토지수용위원회는 진천군청에서 서류를 열람하게 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토지수용재결신청 청구’를 한 토지소유자 중에 1명이 8월 9일 오전에 ‘청구를 철회’하겠다는 의견서를 진천군청에 제출한 것이다. 제대로 알아보니, 이런 청구를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태영건설측 관계자가 해당 토지소유자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당 토지소유자에게 ‘청구를 철회’한 것을 다시 취소해달라고 회유했다고 한다. 사업적 이익을 주겠다는 얘기까지 하면서 설득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진천군청에서 ‘청구 철회’ 사실을 태영건설측 관계자에게 누설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태영건설과 진천군청간의 유착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주민들은 이 사안에 대해 지난 8월 17일 충청북도 경찰청에 고발장까지 접수한 상황이다.
대기업에 맞선 작은 마을의 저항
지금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추진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온갖 문제들은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는 산업단지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주민들의 의사는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민간기업에게 토지강제수용까지 가능하게 하는 법제도, 업체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유착관계, 말로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를 떠들지만 민간기업의 이윤을 위해 농지와 임야가 사라지고 파괴되는 것을 방치하는 정치.....
이런 상황에서도 10가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이 태영건설이라는 대기업에 맞서서 끝까지 마을을 지키려고 눈물어린 노력을 하고 있다.
8월 17일 충북도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주민은 ‘사당리에 살리라’라는 노래를 불렀다. 평화롭고 소박하게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에서, 앞으로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노래였다. 그 소망이 지켜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