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코로나 속 빛났던 문재인 케어, 윤석열이 짓밟으려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의 절반이 무너지는 처참한 기분이었다. 19일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적용을 대폭 확대했던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의 느낌이 그랬다.

나는 내가 발 딛고 서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 대해 두 가지 커다란 긍지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투쟁의 민족이라는 사실. 상명하복을 목숨처럼 여기는 이웃 일본과 달리 우리 민족은 중세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뜨거운 투쟁의 민족이었다.

조선 후기 동학 농민혁명을 필두로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 민주화운동,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2016년 촛불혁명까지. 근현대사를 통틀어 이토록 투쟁에 진심이었던 나라가 유럽의 프랑스와 대한민국 둘 외에 또 있었던가?

세계 4위의 건강대국이라는 긍지

또 한 가지 내가 갖는 긍지는 바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응? 그게 그렇게 긍지를 느낄 정도의 대단한 일인가?”라는 반문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복지란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그것을 너무 당연히 여기는 순간 그것의 위대함을 잘 알지 못한다. 문재인 케어를 포함한 한 한국의 건강보험 체계는 전 국민이 충분히 긍지를 가질만한 위대한 시스템이다.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교 통계를 통해 알아보자. 매년 3월 국제연합(UN)은 <세계 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라는 것을 발간한다.

행복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통계학자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존 F. 헬리웰(John F. Helliwell) 명예교수가 진두지휘해 만드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다운로드 횟수로 보나 국제 언론에 인용되는 숫자로 보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경제학 보고서 중 하나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행복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을 규정하는 요소는 모두 여섯 가지다. UN은 이를 바탕으로 약 150개 나라(올해는 146개국 대상)의 행복경제학 순위를 매긴다. 참고로 올해 3월 발간된 보고서는 2019~2021년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한국의 행복 순위는 59위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8.17. ⓒ뉴시스

그런데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여섯 가지 요소 중 ‘건강 기대 수명’이라는 항목이 있다.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느냐?’를 예상하는 항목이다.

다른 다섯 가지 항목 중 한국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1인당 국민소득) 분야에서 26위를 차지했을 뿐 나머지 분야에서 대부분 죽을 쒔다. 특히 ‘자주적 삶의 선택’이라는 항목, 즉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자기 삶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느냐를 묻는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146개 나라 가운데 113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받았다.

그런데 건강 기대 수명에서 우리나라가 몇 위였을 것 같은가? 무려 세계 4위에 올랐다. 건강보험 체계가 개판 오분 전(그나마 나아져서 오분 전이지 오바마 케어 이전에는 그냥 개판이었음)인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고작 70위였다. 이 어찌 긍지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수치인가?

더 놀라운 사실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한국의 이 순위가 껑충 뛰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원래 여섯 가지 조사 항목(1인당 국민소득, 자주적 삶의 선택, 공동체성, 부정부패, 사회적 지원, 건강 기대 수명) 중 건강기대 수명 분야에서 늘 세계 톱10 근처에 머물던 건강 강국이었다.

2019년에도 9위, 2020년 10위에 랭크됐었다. 그런데 2021년 7위로 올라선 우리나라는 2022년 무려 4위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마침내 세계 톱5 안에 진입했다.

“와 올해 우리나라 건강 기대 수명이 세계 4위라니 역시 윤석열 정권이 짱이야”라는 헛소리를 늘어놓을 빠가사리들을 위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보고서는 올해 3월 발표됐다. 그리고 조사 대상 연도는 2019~2021년 3년 동안의 통계다.

윤석열 정권과 쥐뿔도 상관없는 통계라는 뜻이다. 그리고 코로나 3년 동안 문재인 케어가 얼마나 빛나는 정책이었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하다.

건강보험은 사회적 협동의 정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빛나는 정책을 지금 윤석열 정권이 난도질하려 한다. 문재인 석자만 들으면 경기를 내는 윤석열 대통령의 열등의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손을 댈 게 있고 안 댈 게 있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자. 건강 기대 수명 세계 톱 5 안에 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이 훌륭한 문재인 케어를 무슨 명목으로 폐기한다는 건가? 그냥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싫어서? 그럼 대통령 하지 말고 보수 유튜버들이랑 손잡고 동네방네 욕이나 하고 다니던가?

건강보험은 사회적 협업의 결정체 같은 것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다.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건강보험 제도를 통해 인간이면 부자건 가난하건 누구나 최소한의 건강권을 가질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돈이 있는 자들은 보험료를 더 내 가난한 민중들의 건강을 돌보는 데 기여하도록 유도했고(이것도 아까워서 못 내겠다고 발광하는 자들은 부자를 떠나 그냥 인간도 아닌 거다) 가난한 민중들은 그 도움의 손을 통해 최소한의 건강권을 지켰다. 문재인 케어는 그 사회적 합의를 한층 더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문재인 케어를 폐기하겠다는 말은 이 사회적 합의를 허물려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앞으로 윤석열 정권의 보건 의료 정책 방향이 공공의료를 더 허물고 영리병원 설립을 부추기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나마 복지 제도 측면에서 별 볼일이 없는 이 나라의 마지막 사회적 협동 합의를,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긍지를 느끼게 하는 합의를 윤석열 정권이 파괴하려 한다.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인데, 한숨만 쉬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나라가 개판 오분 전에서 개판 일분 전으로 치닫는 꼴도 모자라 정통 오리지널 개판이 되려 한다. 나는 이 꼴을 도저히 그냥 두고 못 보겠다. 내가 가졌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최소한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정권의 개판짓은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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