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께 한마디 조언을 드린다. 비대위 탄생의 원인은 대통령의 ‘내부총질, 체리따봉’ 문자 때문이었다. 본인의 문자로 이 난리가 났는데 모르쇠로 일관하며 배후에서 당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한 처신이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당정이 새 출발을 하도록 역할을 해주시길 바란다.”
법원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함에 따라 당 혼란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 글은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와 비대위 체제 전환, 법원 가처분 결정 등 최근 당에서 벌어진 일련의 과정과 그 본질을 일목요연하게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사태의 원인이 국민의힘 주류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출처조차 불분명한 이준석 전 대표의 ‘성접대 의혹’이라고 믿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부터 이 전 대표와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던 윤핵관들은 성접대 의혹 건으로 이 전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적어도 그동안 진행된 과정을 보면 그렇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지지율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나고 심지어 20%대라는 역대급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자 집권세력 주류에서는 여당을 비상상황으로 진단하기에 이른다. 그 진단의 희생양은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정권 창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던 이준석 전 대표였다.
그들의 입장에선 윤핵관을 중심으로 지도부를 꾸림으로써 ‘눈엣가시’ 이 전 대표의 존재로 흔들릴 수 있는 여당을 재정비하고, 약화된 지배계급을 강화할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작동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6월 초 이 전 대표가 띄운 당 ‘혁신위원회’ 이슈를 직면한 윤핵관이 자칫 장래의 총선 공천권 문제와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숨기지 못하고 이 전 대표와 갈등적 언어로 대립한 데서도 그런 기류의 전조가 포착됐다.
이후 국민의힘은 이 전 대표의 징계 절차에 착수했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공식화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개입해선 안 되는 일이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지난달 초 출근길에서도 이 전 대표의 징계 결정과 관련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대통령으로서 이미 말했지만, 당무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고, 그게 당을 수습하고 국민 기대에 부응하는 당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 역시 자신에 대한 징계 시도가 “윤 대통령의 의중은 아닐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파국의 진짜 책임은 대통령, 애써 무시한다고 해결될까?
윤 대통령의 공언과 이 전 대표의 믿음이 무색하게 지난달 말 윤 대통령의 본심이 드러난 건 권성동 원내대표와 주고받은 문자 대화에서였다. 윤 대통령이 권 원내대표에게 이 전 대표를 언급하며,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공개된 것.
그 당시는 이 전 대표의 징계 이후 대표 직무가 정지된 이후 당내에서 비대위 체제 전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문자 메시지에서 드러난 건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가 징계로 사고 상태가 된 데 대한 긍정적 평가와 당 지도 체제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대선 당시 포옹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준석 전 대표 ⓒ뉴스1
이런 와중에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측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달라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의사를 전달했다’는 일부 매체 보도가 나왔고, 이후 배현진, 조수진, 윤영석 최고위원,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의 사퇴 선언이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이 ‘윤심’에 의한 것임을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일들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윤 대통령이 당 연찬회에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면서 부자연스러웠다. 가처분 사건 결과가 나오기 전 당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당의 기강을 잡는 등 당내 영향력 확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의 연찬회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의원들이 의정 전략 및 노선에 대해 토론하는 행사로, 과거 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여당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는 취지에서 참석하지 않은 건 물론 여당도 초청을 자제했다.
그리고 법원은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의 정당성에 제동을 걸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황정수 부장판사)는 26일 “이 사건 당 전국위원회 의결 중 비상대책위 결의 부분은 당헌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및 민주적인 내부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당원의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기관 및 집행기관을 가져야 한다는 정당법에도 위반되므로 무효로 봄이 타당하다”며 이 전 대표가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낸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국민의힘이 규정한 ‘비상상황’ 역시 실질적으로는 ‘비상상황’에 해당하지 않으며, 당 대표 직무대행 및 최고위원들의 부재 등이 비상상황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국민의힘이 비대위 체제 전환을 위해 가상의 ‘비상상황’을 만들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윤심’에 대한 사법부의 철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주체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전날 의원총회를 열어 법원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 및 항고 등의 절차를 밟고, 당헌당규를 다시 개정해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또한 이번 사태의 책임이 이준석 전 대표에게 있다고 보고, 당 윤리위에 추가 징계를 요구하기로 했다. ‘이 모든 게 이준석 때문’이라는 식의, 실상과는 동떨어진 진단까지 동반한 셈이다.
대통령실도 여전히 ‘남 일 대하듯’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힘 상황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국민의힘 의총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겠냐”며 “의원은 개별 주체이자 헌법기관이다. 중지를 모아서 내린 결론에 대해 일이 잘 해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