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본 그림이 있었다. 하늘을 나는 고래를 보는 어린 소녀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 속 고래는 푸른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그림은 가정폭력 피해 아동의 그림이었다.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모르고 봤어도, 그림 속 고래는 선명한 이미지로 기억 속에 남았다. 뮤지컬 ‘아일랜더’ 포스터 속 고래를 보며 그 그림 속 고래가 떠올랐다.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낸 고래 역시 날고 있었다. 날고 있는 것이 하늘이 아니라 바다였을 뿐. 고래는 왜 무대 위로 선명하게 날아올랐을까? 그 이야기를 하려면 공연장을 들어선 순간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하지 싶다.
공연장은 하나의 섬이자 바다다. 원형의 무대 주위로 관객석이 빙 둘러싸여 있다. 무대 가까이로는 객석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이름 없는 무인도 같다. 이곳은 섬마을 키난이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섬 키난에선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관광객의 발길도 끊어졌다.
공연장이 하나의 섬이자 바다가 되다
본토의 지원마저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키난 사람들은 섬을 지킬 것인지 혹은 떠날 것인지를 결정하는 투표를 하기로 한다. 섬의 미래를 결정하는 토론회가 있던 날, 섬에 남은 유일한 아이 에일리는 해변에서 죽어가는 새끼 고래를 발견한다. 에일리는 새끼 고래와 그들만의 노래를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누지만 고래는 결국 죽고 만다.
고래의 죽음을 겪은 에일리 앞에 신비한 소녀 아란이 나타난다. 아란과 에일리는 본토로 향하는 작은 배에서 거센 폭풍우를 맞게 된다. 바다 한가운데 종잇장처럼 떠다니는 배와 그 속에 타고 있는 아란과 에일리. 위급한 순간 나타난 것은 바로 고래였다. 고래는 바다 깊은 곳에서 거대한 모습을 드러냈다. 고래는 그림 속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기적 같은 희망으로 다가온다.
뮤지컬 아일랜더 공연사진 ⓒ마크923
뮤지컬 ‘아일랜더’는 줄거리만으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진짜 가치는 무대 위 두 사람이 만들어 내는 즉흥 연주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주고받는 인물들의 대화 속에 있다. 무대 위에 두 배우는 루프 스테이션(일정한 구간을 반복 재생시켜주는 악기)과 두 대의 마이크를 사용해 모든 소리, 음향, 노래, 연주, 대화를 만들어낸다. 그 흔한 소품 하나 없지만 무대는 바다가 되고 섬이 되고 하늘이 된다. 무한 연습을 통해 만들어졌을 구성이지만 관객에게는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특별한 이야기
서로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싸우는 섬마을 사람들, 일자리 때문에 본토로 떠난 엄마와 수없이 끊어지는 영상통화로 힘겹게 인사를 나누는 에일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화해가 어려웠던 할머니. 이들의 이야기는 구세대와 신세대, 부모와 자식, 도시와 시골, 문명과 자연, 인간과 동물, 관객과 배우의 관계와 소통으로 영역 확장을 시도한다.
뮤지컬 ‘아일랜더’는 이야기보다 흐름에 더 집중하게 되는 작품이다. 인물 간 갈등 구조나 전체적인 주제 의식에 앞서 흘러가는 리듬과 소리에 온몸을 맡기게 된다. 작은 소리의 변화에 귀 기울이게 되고 조명과 음향으로 등장하는 고래의 숨소리에 숨죽이게 된다. 무대 위 파도에 시선을 뺏기게 되고 서라운드로 재생되는 파도 소리에 오감이 반응하게 된다. 이 작품은 그 느낌들이 모여 저절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다.
뮤지컬 아일랜더 공연사진 ⓒ마크923
‘아일랜더’는 우란문화재단의 기획프로그램인 우란시선의 일환으로 2021년 10월 초연된 작품이다. 스코틀랜드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독특하고 창의적인 음악 기법이 돋보이는 2인극 아카펠라 뮤지컬이다. 이번 재공연에는 초연에 참여했던 모든 창작진들과 스태프들이 다시 한 번 모여 관객에게 환상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고정된 페어로 공연이 진행되었던 초연과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간의 다양한 페어 조합이 새로운 볼거리와 감동을 준다. 뮤지컬 ‘아일랜더’는 9월 18일까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에서 공연되며, 예매는 인터파크 티켓에서 가능하다.
뮤지컬 ‘아일랜더 Islander’
공연장소 :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공연날짜 : 2022년 8월 10일(수) ~ 2022년 9월 18일(일) 공연시간 : 평일 오후 8시 / 토, 일 오후 3시, 6시 (화요일 공연 없음, 8/15(월) 3시 공연) 관람연령 : 만 7세 이상 러닝타임 : 90분(인터미션 없음) CREATIVE TEAM : 구성 Amy Draper/작 Stewart Melton/작곡,가사 Finn Anderson 제작진 : 연출 박소영/음악감독 이셋(김성수)/각색/번역 조민형/무대디자인 최영은/음향디자인 권지휘/조명디자인 노명준/영상디자인 이수경/의상디자인 도연/분장디자인 김남선 출연진:강지혜, 김청아, 유주혜, 이예은, 홍지희 티켓예매 : 인터파트 티켓, 우란2경 홈페이지 공연문의 : 02-79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