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단내나는 삶] 하늘에서 본 세상

하이트진로 옥상 옥외광고판에서 화물노동자들이 고공농성 3일째인 18일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하이트진로의 집단 해고, 손배 소송, 노조파괴 분쇄 결의대회가 열린 가운데 고공농성 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바라보고 있다. 2022.08.18 ⓒ민중의소리

지난 18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지지 기자회견에 다녀왔다. 기자회견 전 나에게 전화를 한 동료 신부에게 기자회견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가 나에게 물었다. “거기도 올라갔지?” 노동자들이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인간적인 극한 상황에 몰아넣어야 하는 우리 사회의 수준이 슬프고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너무 화가 났다. “거기도 올라갔지?”라는 말과 함께, 내가 보았던 고공농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온종일 머릿 속에 맴돌았다.

1931년 을밀대에 올랐던
조선인 여성노동자 강주룡,
‘체공녀’ 강주룡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화물연대 총파업이 지난 6월 14일 마무리됐다. 그러나 화물연대 소속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들은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운송료가 십수 년째 제자리라 실제 수입이 줄어 안전 운행을 위한 조치를 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생활고를 겪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회사 측과의 협상에 진전이 없자 지난 8월 16일 하이트진로 본사 로비와 옥상을 점거해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931년 동광 7월호에 실린 강주룡 관련 기사와 사진 ⓒ1931년 동광 7월호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처음으로 고공농성을 한 사람은 강주룡이란 여성 노동자이다. 평양의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파업 투쟁의 지도자였던 그는 1931년 5월 29일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회사의 일방적인 임금 감하 결정에 대항하여 투쟁을 벌인다. 그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은 조선인 남성 노동자의 1/2 수준이었고, 일본인 남성 노동자와 비교하면 1/4 수준으로 열악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이어 단식투쟁을 벌였음에도 회사가 일방적인 임금 감하를 철회하지 않자, 강주룡은 마지막 수단으로 고공농성을 결심했다. 결국 그와 다른 노동운동 활동가들의 연대투쟁으로 임금 감액을 막을 수 있었다. 한 신문은 당시 그 상황을 ‘乙密臺上의 滯空女(을밀대상의 체공녀)’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지금이나 그때나 인색한 사용자는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체공녀’ 강주룡은 단순히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하늘로 오른 상태다. 내가 찾아간 현장만 하더라도 여러 군데다. 어떤 사람은 타워크레인 위에서, 어떤 사람은 송전탑 위에서, 어떤 사람은 굴뚝 위에서, 어떤 사람은 망루를 짓고 그 위에서, 그리고 또 어떤 이는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제 구조물에 자신을 가두었다. 이들은 부당하게 대접받은 것을 사회에 폭로하고 공정한 법 집행과 공정한 제도 정착을 요구했다.

그렇게 어떤 이들은 몇십 일을, 어떤 이들은 사계절을, 어떤 이들은 몇백 일을 하늘 위 감옥이나 또 다른 형태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었다. 이들이 자신을 감옥에 가둔 날짜는 사용자의 인색함을 넘어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공감 없는 경직성, 잔인성, 폭력성을 그 날짜만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잔인하고 폭력적인 상황이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부의 편중,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한 한국 사회
제대로 분배됐다면,
노동자들이 하늘에 올랐을까

한국은 국가 구성원들에게 자본주의 체제의 우수성을 어려서부터 교육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특징 중 하나를 ‘이윤추구’라고 가르쳤다. 이윤추구를 위해서 적당한 경쟁이 필요하다고, 아니 경쟁은 필수라고 가르쳤다. 또, 더 잘살기 위해서는 더 많이 경쟁하며,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고 체계 안에서 폭력적인 이윤추구 과정은 필수적인 경쟁으로 미화된다. 많은 이들, 특히 자본가들은 이런 사고 체계를 종교적 교리인 양 믿고 따르고 있다. 

한국 경제규모는 세계 10위권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불이 넘었다. 국민소득 3만 불이면 대충 계산을 하더라도 4인 가족 기준 연 1억 2천의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소득 분배가 가능하다면 대다수 국민의 삶은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막대한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임금을 줄였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부가 편중되었고 빈부격차가 매우 심한 사회가 됐다. 3만 불의 반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분배가 되었더라면 노동자들이 생계 곤란을 호소하기 위해 하늘로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이윤추구이고 누구를 위한 자본주의인가?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열린 '고공농성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지켜보고 있다. 2022.08.18. ⓒ뉴시스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 임금은 ‘노동의 대가’이다. 노동자들은 이 노동의 대가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나름의 미래를 계획한다. 노동자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고 한편으론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더는 노동을 해도 그 대가로 가정의 생계조차 책임질 수 없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하늘로 오를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법과 원칙을 앞세우며
노동자들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함께 잘 살 수 있게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


나는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절규하는 것이, 세계 경제규모 10위권인 한국의 모순임과 동시에 노동자들의 가정을 위기로 몰아넣는 자본이 일으키는 스캔들(범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용자와 우리 사회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책정할 때,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성인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수란 가정을 꾸려 적절히 유지하기에 충분하고 가정의 장래를 보장하기에 충분한 보수”(노동하는 인간 19항)여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정당한 대가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하청구조와 비정규직 제도는 대단히 잘못된 제도이고,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서 무한경쟁에 우리를 노출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경험하며 ‘잘 산다’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했다. 개인이 더 많은 부를 쌓아가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의 연약한 고리들을 살피고 돌보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잘 사는 세상을 위한 핵심적 요소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했듯이 법과 원칙을 앞세우며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을 모두 잘 살게 하는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적극적인 중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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