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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좋은 음악은 수도권 밖에도 많다지만

왼쪽부터 신탄진 '혹시몰라', 탐쓴 - 역전포차, Say Sue Me - Old Town ⓒ기타

지금 한국 대중음악을 얼마나 폭넓게 듣고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는 수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의 이름을 몇 명이나 호명할 수 있는지 여부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광주/대구/대전/부산/인천/제주/전주/춘천 같은 광역도시에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뮤지션을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얼마나 깊게 파악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수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있냐며 반문할지 모른다. 사실 인천의 옛 헤비메탈 밴드들을 이야기 하거나 과매기 같은 관록의 부산 밴드를 이야기하기만 해도 음악을 꽤 듣는 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지역 음악인의 빈 자리를 채우는 뮤지션은 의외로 많다. 광주에는 김원중, 박문옥, 박종화의 음악을 듣고 자란 우물안개구리, 양리머스, 이승준, 조재희를 비롯한 뮤지션들이 있다. 대구에는 극렬, 김빛옥민, 이글루,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라이브오, 심상명, 아프리카, 오늘하루, 전복들, 탐쓴, 폴립, 혼즈만 적기엔 부족할 정도로 많은 뮤지션들이 활동한다.

그럼 대전에는 누가 있을까? 완태, 혹시몰라의 이름이 떠오른다. 부산에는 검은잎들, 김일두, 보수동쿨러, 세이수미, 소음발광, 우주왕복선싸이드미러, 제이통, 해서웨이와 그들의 동료 뮤지션들이 바글바글하다. 전주의 57, 고니아, 뮤즈그레인, 송장벌레, 이상한계절도 빠트릴 수 없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뮤지션은 강허달림, 이상순, 이효리, 장필순, 조동익만이 아니다. 이소, 젠얼론, 조성일 같은 뮤지션들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노래하고 연주한다. 수도권 밖 뮤지션들만으로 거뜬히 페스티벌을 꾸릴 수 있을 정도다.

혹시몰라(Hoksimolla) - 신탄진(Sintanjin)

인구 50만 명 내외의 광역도시에는 지역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발현하고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지역마다 도서관, 미술관, 서점, 영화관, 공연장 뿐만 아니라 음악감상실과 라이브 클럽들이 오랫동안 지역 음악인들과 음악 마니아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이 공간들은 수도권 뮤지션들을 위한 투어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3년부터 전국 주요 도시가 음악창작소를 만들어 음악가들이 손쉽게 녹음하고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며 지역 신을 일구고 있다. 광주, 대구, 부산, 울산, 전주 등지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과 청춘 마이크 사업, 지역의 크고 작은 축제가 도움이 된다. 대구의 음악비평웹진 빅나인고고클럽을 비롯한 기록, 아카이브 작업들도 특기할 만하다.

지역의 뮤지션들은 동네 곳곳을 누비며 연주하고 노래한다. 그리고 어떤 뮤지션들은 수도권과 자기 동네를 오갈 뿐 아니라, 다른 나라로 투어를 떠나기도 한다. 고니아,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세이수미의 해외 투어는 지역 뮤지션들의 열망에 불을 지른다. 음악만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케이팝이나 트로트처럼 익숙한 음악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만 기대서는 음악을 계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양한 음악을 찾아듣는 이들이 좀 더 많은 수도권의 문을 두드리거나 해외의 시장에서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탐쓴 - 역전포차 Feat. MC 메타, 이성수 Of 해리빅버튼

대중음악 창작력이 상향평준화된 시기답게 수도권 바깥 뮤지션이라고 음악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수도권 바깥 지역 뮤지션의 음악이라고 지역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도 않는 편이다. 대부분의 음악은 2022년 음악다운 현재의 감각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럼에도 어떤 뮤지션들은 몇몇 곡에서 자신이 오래 살았거나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추억을 숨기지 않는다.

혹시몰라의 ‘신탄진’, 탐쓴의 ‘역전포차’, 세이수미의 ‘Old Town’ 같은 곡이 바로 그런 곡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수도권으로 올라가야만 성공한 것처럼 여겨지고, 고향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실패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세련되고 멋져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고백하듯 노래한다. 동네에 계속 남아 있는 일은 애정과 안타까움, 절망과 분노 사이에 걸쳐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혹시몰라의 ‘신탄진’에는 우수가 가득하다. 탐쓴이 MC 메타와 해리빅버튼의 이성수를 불러 함께 완성한 ‘역전포차’에는 대구 사투리 랩이 난무하는데, “불타는 도시를 달리는 꿈의 전차 / 부릅뜬 두 눈 속에 가득 담긴 절망 / 불나방이 되어도 이 목숨을 건다 / burn baby burn 내 욕망의 점화”라는 가사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다. 세이수미가 ‘Old Town’에서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가 여기 있고 싶다고 노래하는 마음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Say Sue Me - Old Town (Damnably

인구감소와 지역소멸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오늘, 수도권 바깥 지역 뮤지션들 또한 같은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날마다 엄청난 고뇌와 결심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글을 쓰는 이유 역시 수도권 밖에 좋은 음악을 내놓는 뮤지션들이 많다고, 그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자고 설득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이제는 질문의 방향과 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을 특정 특산물의 생산지와 관광지, 혹은 노년의 안식처 정도로만 소비하는 수도권 거주민들에게 공생과 평등에 대한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하지 않을까. 행여 음악을 들을 때에도 흡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좋은 음악이 나오는 수도권 바깥 지역의 수많은 현장에서도 왜 어떤 음악은 일부의 찬사밖에 얻지 못하는지 질문해볼 때가 아닐까. 좋은 음악은 그 자체로 힘이 있지만, 음악만으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할 때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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