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재로 인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 생각보다 심각하다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한 영국 노르위치의 송전탑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유럽연합은 중국, 미국에 이은 세 번째 에너지 소비대국이다. 물론 유럽연합 27개국 회원국이 자체로 생산하는 에너지도 있다. 2019년 기준 유럽연합 에너지 생산에서 재생에너지(37%)가 가장 비중이 높으며, 원자력(32%), 석탄(19%), 천연가스(8%), 원유(4%) 순이다. 그러나 자체생산 에너지가 턱없이 부족한 유럽은  러시아에 천연가스를 의존하고 있는데, 유럽이 일본 등의 국가와는 달리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러 제재에 적극 참여해 에너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에너지난이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공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는 포린팔리시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You Have No Idea How Bad Europe’s Energy Crisis Is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유럽은 그 수준을 넘어 완전히 곤경에 처해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겨울에 닥칠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줄 비상조치와 구제 계획을 세우기에 급급하다.

유럽의 가장 큰 문제는 전기요금을 보는 것이 두려울 정도인데다 인플레이션이 악화되고 산업이 마비되는 등 전 대륙이 혼란에 빠질 정도로 천연가스의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이제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지난 10년간 평균의 10배를 넘어 거의 미국 가격의 10배에 이르렀다. 컨설팅 회사 라피단 에너지 그룹의 글로벌 천연가스 시장 전문가인 알렉스 먼튼은 유럽 천연가스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원유 1배럴에 500달러를 지불하는 것과 비슷할 정도라고 했다. 상황이 훨씬 악화될 겨울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겨울에 수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천연가스를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유럽의 우려가 크다. 충분히 걱정할 만한 문제다.

유럽 천연가스 문제의 가장 큰 요인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을 어렵게 만들고 세계적인 가격 인상을 가져온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경제 제재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다. 러시아를 대체할 만한 나라들의 천연가스 가격이 높고, 기후변화로 인해 강수량이 줄고,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가동을 중단한 유럽 원전이 많다.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유럽의 정책입안자들이 에너지 시스템의 충격 장치를 고안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번 주에 독일과 프랑스의 전력 가격이 기록을 갱신해 유럽 전체의 에너지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음을 다시 보여줬다. 경제적 압박으로 다급해진 국가들이 절박한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영국은 고육지책으로 전기요금의 상한선을 80% 인상한다고 발표했고, 독일에서는 전기요금을 거의 500유로 인상시켰다. 독일의 경제장관 로버트 하베크는 이것이 독일 에너지 시장의 붕괴와 그로 인한 유럽 에너지 시장 대부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유럽은 에너지 수요가 큰 겨울에 쓸 천연가스를 여름에 미리 사 두고 저장한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고 천연가스의 흐름에 대한 러시아의 압박이 강화됨에 따라 빈 저장고를 채워야 하는 유럽은 눈물 날 정도로 비싼 가격에 천연가스를 사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이 아직까지는 계획대로 천연가스를 확보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겨울 전에 필요량이 다 채워진다는 보장은 없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러시아가 유럽 천연가스 수입의 약 60%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겨울에 러시아 천연가스를 수입할 수 없다면 미국 등으로부터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더욱 의존해야 한다. 문제는 유럽이 LNG를 확보하려면 유럽보다 LNG 수입량이 많은 아시아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LNG의 가격이 동유럽에서 수입하던 천연가스의 가격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먼튼은 “이것이야말로 유럽과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위기”라고 했다.

유럽이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을 포기함에 따라 많은 국가들이 다른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이탈리아는 알제리, 다른 국가들은 아제르바이잔, 노르웨이, 카타르로부터 어느 정도의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했다. 독일은 캐나다와의 계약 체결 나서고 있지만 캐나다 측의 태도로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또 다른 국가들은 LNG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독일은 5개의 부유식 LNG 터미널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네덜란드, 핀란드, 이탈리아도 부유식 터미널 증설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국가들이 짧은 기간 동안 추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에너지량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LNG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국내적으로는 전력 사용 억제에 도움이 되는 여러 에너지 절약 조치를 마련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넥타이를 매지 말라던 스페인은 에어컨 및 난방 규정을 포함한 에너지 절약 계획을 이번 주에 승인했고, 프랑스는 문을 닫지 않고 냉방을 가동하는 가게에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으며, 독일은 베를린의 기념비를 비추던 조명을 모두 꺼버렸다. 일부 독일인들은 겨울을 대비해 장작을 쌓아두는 등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은 가동 중인 마지막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계획을 연기시킬지 논의 중이다.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의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를 설립한 제이슨 보르도프처럼 대체에너지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원전 폐쇄는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문튼은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지적하며 “원전 운영회사들이 어느 시점, 예를 들어 올해 말에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면 거기에 기반해서 원전을 운영해 왔기 때문에 지금 갑자기 원전을 계속 가동하라고 하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진다”고 했다.

기술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정치인들도 각종 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는 체코가 가격 상한제를 검토해 보자고 제안한지 며칠 만에 체코의 산업장관 요제프 시켈라가 유럽연합의 에너지위원회에 임시회의 소집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의 국민과 산업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례로 영국은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GDP 추정치의 급격한 하향 조정으로 인해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있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컨설팅회사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유럽 제조업 부문이 앞으로 몇 분기 동안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 예상되며, 가계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가스와 전기 가격 인상은 소비자에게 큰 타격을 줄 것이며 가격의 상승폭은 정부의 추가적인 개입이 불가피할 정도로 클 것이라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현재로서는 유럽이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문튼은 이렇게 요약했다. “유럽은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더 악화될 것이라 전망하고 이에 대비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상황이 과연 얼마나 더 악화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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