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공정한 분배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_ 대번영의 시대 ② 미·소의 자존심 싸움, 인류의 발걸음을 우주로 이끌다 _ 우주 경쟁 ③ 달러, 용과 호랑이를 동시에 덮치다 _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④ 석유를 향한 미국의 광기 _ 이라크 전쟁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프로야구 최고 슈퍼스타로 떠 오른 해태 타이거즈 소속 유격수 이종범 선수(현 LG트윈스 2군 감독)는 1998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해외진출에 나섰다. 일본 프로야구 명문구단 주니치 드래곤즈와 계약을 맺고 1998년부터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종범 선수가 1998년 1월 6일 신문 사회면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가 사회면에 이름을 올리는 건 사고를 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종범 선수는 사고가 아니라 훈훈한 미담으로 사회면에 이름을 올렸다. 기사 제목은 <이종범 선수, 메달 등 금붙이 240돈 쾌척 - 나라 살리기 운동 동참>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프로야구 선수가 나라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돈이 아니고 금붙이를 쾌척했다는 건 무슨 뜻일까? 당시 기사를 보면 이종범 선수는 20여 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면서 받은 금메달, 금 야구배트, 금 글러브 등 금으로 된 모든 부상품들을 은행에 기증했다.
심지어 해태 타이거즈 선수 시절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으로 받은 황금호랑이 4개도 내놓았다. 하나하나 선수에게는 소중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종범 선수는 이 소중한 기념들을 아낌없이 내놓은 것이다.
금 모으기 운동
1997년 12월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지면서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정부와 기업이 외국으로부터 빚을 엄청나게 졌는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 돈을 갚을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이때 진 빚이 무려 40조 원이 넘었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 민중들은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언제나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진왜란이 벌어졌을 때 임금은 도주했지만, 백성들은 의병을 조직해 의연히 왜적과 맞서는 모습을 보인 것이 좋은 예다.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로 불렸던 1998년 외환위기 때에도 우리 국민들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웠다. 정부와 기업이 진 빚을 대신 갚겠다며 온 국민이 나서서 금 모으기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돌 반지, 결혼반지 등 소중한 추억이 담긴 금붙이를 은행에 맡겼다. 이 운동에 무려 351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고 227톤의 금이 모였다. 이 돈만 약 3조 원에 이르렀다. 이종범 선수가 소중한 금붙이들을 흔쾌히 내놓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외환위기와 뱅크런에 대한 이해
1997년 한국을 덮친 외환위기는 사실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먼저 시작됐다. 그래서 당시 사태는 ‘한국의 외환위기’ 보다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렇다면 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먼저 외환위기라는 것을 겪었는지,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두 가지를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 경제위기는 ‘빚’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초대형 경제위기는 단순히 기업 한, 두 곳 망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망하는 기업이 빚을 잔뜩 졌을 때 큰 위기가 시작된다.
보통 큰 기업들은 망하기 전에 어떻게든 기업을 살려보겠다며 은행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빌린다. 은행도 ‘설마 저 유명한 대기업이 망하겠어?’라는 안이한 심정으로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빚을 잔뜩 진 상태에서 기업이 망하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기업 한 곳 망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지 않고, 그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도 함께 망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망하면 사태는 더 커진다. 은행이 기업에 빌려주는 돈은 은행 자기 돈이 아니고 고객들로부터 예금을 받은 돈이다. 이는 은행 한 곳이 망하면 그 은행에 돈을 맡긴 수 백 만 고객들의 돈까지 함께 날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째, 뱅크런(Bank Run)이라는 경제현상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뱅크런은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내 돈 찾겠어요”라며 갑자기 은행으로 대거 몰려와 한꺼번에 돈을 찾아가는 사태를 말한다. ‘대규모 인출 사태’라고도 부른다.
은행은 고객들로부터 예금을 받은 뒤 그 돈을 기업에 빌려줘 이자로 수익을 내는 기관이다. 이는 고객이 맡긴 예금을 전부 금고에 쌓아두지 않고 그 돈을 여기저기 빌려줬다는 뜻이다.
그런데 갑자기 고객들이 몰려와서 “내 돈 내놓으세요”라고 외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은행은 고객들에게 돈을 전부 돌려줄 수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고객 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한 은행이 망할 위기에 처한다.
뱅크런은 고객이 은행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고객이 은행을 믿는다면 갑자기 우르르 몰려가서 “내 돈 내놓으세요”라고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고객들이 은행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진다. ‘은행이 망할 수도 있어. 잘못하면 내 돈을 떼일 것 같아’라는 공포가 퍼지면, 고객들은 은행이 망하기 전에 내 돈부터 찾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은행으로 몰려간다.
이 공포 때문에 뱅크런이 시작되고, 뱅크런이 시작되면 은행이 위기에 빠진다. 그리고 앞에서 살펴봤지만, 은행이 망하면 국가경제가 휘청거린다.
네 마리 호랑이를 덮친 외환위기
1970년대부터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한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4개 국가를 ‘아시아의 네 마리 용(Four Asian Dragons)’이라고 불렀다. 눈부신 경제 성장으로 세계경제에 돌풍을 일으켰다는 의미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이들 네 나라의 성장이 더뎌지자, 새롭게 성장하는 동남아시아 다섯 개 나라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그들이었는데 서구 사회에서는 이들을 ‘아시아의 다섯 마리 호랑이(Five Asian Tigers)’라고 불렀다.
1997년 외환위기는 이들 다섯 마리 호랑이를 먼저 덮쳤다. 원래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들은 돈이 많이 필요한 법이다. 공장도 짓고, 기계도 사들여야하니까. 그래서 성장 속도가 빠른 국가들은 대부분 빚을 많이 진다.
1990년대 초반 미국과 영국의 초대형 국제은행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아시아의 다섯 마리 호랑이에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호랑이 국가들의 경제성장이 기대만큼 빠르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외국으로부터 빌린 돈이 나라에 흘러넘치니 이들 국가 국민들은 뭔가 부자가 된 느낌을 받아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다. 샴페인을 일찍 터뜨려버렸다고나 할까?
돈을 빌려준 국제은행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을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 의외로 호랑이 국가들의 경제는 부진하고 돈만 계속 없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한 외국계 은행이 이들 국가에게 “불안해서 안 되겠으니 빌려준 돈 내놓으세요”라고 요구를 했다. 이 소문이 돌자 다른 은행들도 ‘내 돈이 떼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삽시간에 이들 국가로 몰려가 빚 독촉을 시작했다. 일종의 뱅크런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빌린 돈으로 흥청망청 살던 호랑이 국가들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이들 국가들은 빌린 돈을 갚지 못할 처지가 됐고, 은행은 돈을 떼일 위기에 놓였다. 이것이 바로 아시아의 호랑이를 덮친 외환위기의 출발점이었다.
한국 경제 역사상 최악의 치욕, 외환위기
1997년 초, 다섯 마리 호랑이 중 태국이 먼저 위기에 빠졌다. 원래 외국에서 돈을 빌릴 때에는 당연히 달러로 빌려온다. 갚을 때에도 당연히 달러로 갚아야 한다.
하지만 태국에는 빚을 갚을만한 충분한 양의 달러가 없었다. 태국이 먼저 외환위기를 맞자 바로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도 유탄을 맞았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당시 태국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하고 있었는데, 미국과 영국 은행들은 다짜고짜 “너희도 불안해. 빌린 돈 내놔!”라며 윽박을 질러버렸다.
다음 타자는 인도네시아였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 비해 경제성장이 더뎠던 인도네시아는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파산을 선언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6개월 안에 벌어졌다. 뱅크런 심리가 3개 국가를 초토화해 버린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공포의 빚 독촉 사태가 아시아 호랑이 국가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국제은행들은 그 다음으로 불안한 곳이 어디인지를 살펴봤다. 그런데 이 레이더에 걸린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한국은 당시 가장 흥청망청 돈을 쓴 상태였고, 경제적 불안감도 높았다. 무분별하게 여기저기 사업을 벌이던 재벌 기업들이 한계를 드러냈고, 한보그룹이 가장 먼저 파산을 선언했다. 유명한 기아자동차도 문 닫기 직전까지 몰렸다.
국제은행들은 즉각 한국 기업과 정부에 “빌린 돈 내놓아라!”라며 독촉을 시작했다. 전혀 준비가 안 됐던 한국은 바로 달러가 부족한 사태에 직면했다.
그리고 1997년 12월 3일, 한국은 경제적으로 가장 치욕적인 순간을 맞게 된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빚을 갚을 수가 없으니, 경제주권을 모두 외국 은행에게 넘기겠습니다”라며 항복 선언을 한 것이다.
한국은 이 사태를 IMF(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라는 국제금융기구로부터 돈을 빌려서 겨우 해결했다. 대신 한국은 돈을 빌리는 대가로 IMF가 시키는 일을 모두 하겠다는 굴욕적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후 IMF는 한국 경제를 사실상 좌우하며 마음대로 한국 경제 구조를 바꿔놓았다. 빚을 진 우리로서는 이 굴욕적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야 했다. 온 국민들이 돌 반지를 모아서 빚을 갚고자 했던 금 모으기 운동도 이런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