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향한 미국의 광기 _ 이라크 전쟁

[연재] 추석 연휴에 만나는 재미있는 경제역사④

*편집자 주 - 지난 설에 이어 추석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공정한 분배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_ 대번영의 시대
② 미·소의 자존심 싸움, 인류의 발걸음을 우주로 이끌다 _ 우주 경쟁
③ 달러, 용과 호랑이를 동시에 덮치다 _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④ 석유를 향한 미국의 광기 _ 이라크 전쟁


2003년 3월 20일, 미국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George W. Bush)가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그 자리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제2차 걸프전쟁, 혹은 이라크 전쟁으로 불리는 전쟁의 개막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곧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1년 반 전인 2001년 9월 11일, 미국은 이른바 ‘9.11 테러’로 불리는 끔찍한 침공을 당했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2011)이 이끌던 이슬람 과격단체 알카에다(Al-Qaeda)는 여러 대의 비행기를 납치해 미국의 주요 시설에 자폭 테러를 감행했다.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 두 곳(제1무역센터와 제2무역센터)이 박살이 났고, ‘펜타곤’으로 불렸던 미국 국방부 건물도 똑같은 공격을 받았다. 3,000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고 2만 5,000명이 부상을 당했다. 실로 끔찍한 참사였다.

세계 최강대국을 자랑하는 미국이 이를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미국이 즉각적인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시 대통령 부시는 군산복합체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공화당 소속이었다. 전쟁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의외로 미국은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테러가 벌어졌던 2001년이 지나갔고, 심지어 2002년도 조용히 흘려보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난 2003년 3월, 마침내 부시가 칼을 뽑은 것이다.

그런데 어라? 미국이 침공을 결정한 나라는 이라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왜 이라크란 말인가? 2001년 미국에 테러를 가한 알카에다의 수장 라덴은 이라크와 별 관계가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2003년 당시 이라크가 아니라 시리아 사막에 숨어있었다는 믿을만한 첩보도 입수됐다.

그러면 미국은 당연히 시리아 사막을 폭격했어야 했다. 원수가 거기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국의 선택은 이라크였다. 게다가 폭격 목표 지점도 민간인 수백 만 명이 거주하던 아랍 제2의 대도시 바그다드였다. 이곳을 폭격하면 다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올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전쟁을 일으키면 국제 여론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미국은 시리아 사막이 아닌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공격했을까?

화학무기는 어디에?

3월 20일에 시작된 전쟁은 두 달도 끌지 않은 채 5월 1일에 끝났다. 전황은 1차 걸프전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도한 연합국의 일방적 승리였다. 막강한 무기로 무장한 미군에게 이라크 군은 스파링 파트너조차 되지 못했다. 미군 사망자는 214명에 불과했지만 이라크 군 사망자는 3만 명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마나한 전쟁을 미국이 왜 벌였을까? 물론 미국 군산복합체는 전쟁이 벌어져야 무기를 팔아치운다. 하지만 단지 이 이유만으로 미국이 이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강대국이라도 전쟁을 벌일 때에는 명분이 중요하다. 무기 팔아먹겠다고 깡패처럼 아무 나라나 두들겨 패면 국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걸프전 때에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먼저 침공하기라도 했지,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가만히 있는 나라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 격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이 내세운 전쟁의 두 가지 명분은 ①이라크가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조직을 지원했고 ②이라크가 화학 무기와 핵무기 등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해 세계 평화를 위협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아무리 검토해도 이라크가 알카에다를 지원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명분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인데, 이마저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 미국이 가장 먼저 폭격한 ‘대량 살상무기 공장’은 미국 언론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평범한 비료 공장이었다.

전쟁 직후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의 정보기관이 중심이 된 이라크사찰단(Irag Survey Group)이 구성됐다. 이들은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그야말로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런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들은 무려 1년이 넘는 긴 활동 끝에 2004년 10월 1,000페이지에 이르는 장문의 보고서를 미국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결론은 “이라크에는 대량 살상무기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벌어진 진짜 이유

그렇다면 미국이 이 무리한 전쟁을 벌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전쟁 이후 4년이 지난 2007년 7월, 미국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렌단 넬슨(Brendan Nelson) 국방장관이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국방백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넬슨 장관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나라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중동 지역의 석유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발언한 것이다. 이어 넬슨 장관은 “이라크는 원유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3위에 이르는 산유국이다. 그리고 우리는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곳이 필요했다”며 참전의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이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벌인 ‘석유전쟁’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나라 석유가 탐이 난다고 그 나라를 침공했다는 사실을 누가 인정할 수 있었겠나?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처음으로 이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놀란 기자들이 “이라크 전쟁이 진짜로 석유 때문에 벌어졌느냐?”라고 되묻자, 실수를 느낀 넬슨 장관은 “석유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일 뿐, 전쟁의 주요 이유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압정으로부터 이라크 국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장관의 본심은 이미 드러난 이후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장관의 발언을 수습하느라 큰 곤혹을 치렀다. 그들은 악착같이 “장관의 실수였고, 전쟁은 테러 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이 사태는 뜻밖의 곳에서 메가톤급 폭로로 이어졌다.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Federal Reserve Board) 의장을 지낸 사람이다. 연방준비제도는 한국은행처럼 미국의 중앙은행을 뜻한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장은 대통령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중요한 자리다. 일국의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권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린스펀은 평범한 나라도 아니고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중앙은행장을 20년 동안 역임했다. 역대 미국 중앙은행장 중 두 번째로 긴 임기였다. 그의 한마디는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뒤흔들 정도의 위력을 가졌다. 그래서 재임 기간 그린스펀에게 붙은 별명이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었다.

이라크 전쟁 당시 바그다드 시내를 점령한 미군 ⓒ기타

그런 그린스펀이 2007년 9월 『격동의 시대 : 신세계에서의 모험(The Age of Turbulence : Adventures in a New World)』이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린스펀은 “이라크 전쟁의 주된 원인이 석유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정치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현실이 서글펐다”는 충격적인 한 문장을 적었다.

그린스펀은 ‘뼛속까지 공화당원’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마침내 전쟁의 이유가 밝혀졌다. 그 전쟁은 결국 이라크가 보유한 석유를 탐낸 미국의 침략 전쟁이었다는 이야기다.

금융자본, 전쟁의 전면에 서다

이라크 전쟁이 과거의 전쟁과 다른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미국의 금융자본이 전쟁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었다.

미국은 군수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정보기술(IT) 자본이 이끄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미국은 제조업이 그다지 발달한 나라가 아니다. 1970년대까지 미국은 철강이나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에서도 강국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그 자리를 독일과 일본, 한국과 중국 등에 넘겨줬다.

그런 미국 경제를 지탱해온 삼각 축이 군수와 금융, IT였다. 이 중 ‘월 스트리트(Wall Street)’로 대변되는 미국의 금융자본은 세계 경제에 실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세력이었다. 그런 금융자본이 전쟁 국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전쟁이 아직 한창이던 2003년 4월 10일 미국 『CNN머니』는 “월 스트리트가 전쟁 종료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미국 금융자본은 이때부터 “전쟁은 사실상 끝났으며, 우리는 이라크 재건 사업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들었다.

월 스트리트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해 10월 “이라크 재건 사업에 500억 달러(약 60조 원)의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월 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이 재건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실제 바그다드 재건 사업에 참여한 대부분의 미국 금융자본은 10배에 가까운 투자 수익을 올렸다. 심지어 폭격이 끝난 뒤 건물에 붙은 불을 끄는 소방 업무도 미국 기업들이 차지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대가를 석유로 받았다. 미국이 시작한 전쟁의 비용을 이라크가 석유로 물어주는 구조였다.

이 전쟁을 미래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이 내세운 전쟁 명분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었고, 미국의 군수자본과 금융자본은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점이었다.

만약 이 전쟁이 정말로 돈과 석유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면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이라크 바디 카운트 프로젝트(Iraq Body Count project)의 2012년 발표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의 사망자는 총 16만 2,000명이었고, 그 중 목숨을 잃은 이라크 민간인 숫자는 무려 12만 7,980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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