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비 퍼붓고도 기대수명 낮아지는 미국,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자기 트럭 앞에 선 미국 농부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 전국건강상태통계센터가 발표한 보고서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2020년과 2021년 2년 사이에 미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3년 가까이 줄어서다.  이것은 코로나 때문에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한국처럼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기대수명이 늘어난 국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기대수명이 2014년부터 계속 줄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세계에서 정부의 의료 지출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나라다. 이 현상의 원인을 짚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미 의회전문지 더 힐에 실린 에모리대학교 의학교수이자 전염병 전문가인 벤카트 나라얀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US life expectancy is in freefall — we can’t keep blaming COVID

한 세기 동안 기대수명이 꾸준히 증가한 미국은 모든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2022년의 최신 자료가 보여주듯 미국의 기대수명이 계속 낮아져 현재 1996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에서 지난 2년간 100만 명 이상의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팬데믹 이전에도 미국의 기대수명은 10년 넘게 더 이상 상승하지 않고 78세에 머물러 있었다. 더군다나 팬데믹 동안에도 코로나 사망자보다 심장마비나 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다. 미국의 기대수명 단축이 예기치 못한 새로운 치명적인 감염성 병원체의 등장 때문에 일어난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얘기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미국의 기대수명은 2008년부터 중년 사망률의 증가와 예방할 수 있었던 몇몇 조건으로 인해 모든 인종과 민족에서 팬데믹 이전부터 낮아졌다. 20세기에도 기대수명이 낮아졌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기대수명이 짧아지기 전후로 기대수명이 크게 높아지는 기간이 있었다. 예를 들어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는 기대수명이 거의 12년 짧아졌지만, 바로 그 이듬해에 14년 길어지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차 대전 전후에도 상황이 비슷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생 시 기대수명이 단축되는 것은 노인들이 옛날만큼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대수명의 단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사망률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수명의 단축은 조기 사망률의 증가를 의미하며, 대부분은 예방할 수 있다.

코로나 관련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조기 사망률은 제한된 의료 서비스 접근성, 출산 사망과 총기 사망 관련 정책의 실패, 혹은 심혈관 질환, 당뇨, 비만, 약물 과다 복용과 자살 등을 야기하는 신체적 및 정신적 조건을 악화시키는 사회적 불평등과 관련 있다. 이것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기대수명을 생물학이나 생체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미국에서 주 밑의 행정구역 단위인 카운티 별로 살펴보면, 기대수명이 20년 넘게 차이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건강하지 못한 카운티의 기대수명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의 기대수명과 비슷하다. 미국에서 가장 건강하지 못한 카운티들은 가장 건강한 카운티들보다 심혈관 사망률, 당뇨병 발병률, 아편성 진통제 중독률 등이 8~9배 높다. 이것은 사회적, 경제적, 지역적 요인들 때문이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만한 사실은 미국이 GDP의 거의 18%를 의료에 지출한다는 사실이다. OECD 회원국 평균의 약 2.5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수많은 건강 지표에서 세계적으로 최하위권에 있다. 이것은 미국이 사회복지 지출이 가장 낮은 OECD 회원국 중 하나이기 때문일 수 있다. 사회복지 지출이 충분하지 않으면 양질의 교육, 의료, 대중교통 및 영양 등 건강에 필요한 서비스에 대한 공평한 접근이 제한된다.

미국의 바이오과학은 지난 10년 동안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대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큰 기회를 놓쳤다. 미국이 과학분야에서 탁월하고 건강 관련 기술개발연구에서 전 세계 지출의 50%를 차지하지만, 그 대부분은 세포생물학, 생물정보학과 기술에 쓰였다. 이런 연구는 분명히 인류의 지식을 넓힌다. 하지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과 지역적 맥락도 같은 비중으로 강조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값비싼 치료법만 개발된다.

미국은 10년 넘게 기대수명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유일한 고소득 국가이다. 이런 추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가속화됐다. 이런 추세를 뒤집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결정 요인보다 협소한 바이오 과학적인 접근을 선호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암 및 정신 건강과 같은 만성적인 비전염성 질병에 대한 대처를 우선시하고, 인간의 건강에 생물학적 및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균형 잡힌 새로운 접근방식과 우선순위를 수립하고 거기에 맞게 균형 잡힌 투자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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