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간 내면 선악의 실체를 위트 있게 까발린 연극 ‘반쪼가리 자작’

연극 ‘반쪼가리 자작’ ⓒ국립극단

창작 조직 성찬파의 ‘반쪼가리 자작’이 9월 25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이 작품은 2017년 초연 이후 꾸준히 재공연되고 있다. 제43회 서울연극제에선 대상, 연출상, 관객 리뷰단 인기상을 수상하며 심사위원과 관객들을 사로잡기도 했다.

환상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 (Italo Calvino)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박성찬 연출의 각색을 거처 독특한 구성의 연극으로 재탄생됐다. 박성찬 연출은 이 작품에서 각색, 연출, 무대, 인형을 맡아 1인 4역을 빈틈없이 해냈다.

회를 거듭하며 다듬어지고 재미를 더해가는 이 작품의 시작은 의도하지 않은 듯 의도적인 연출로 시작된다. 이야기판을 펼칠 광대들이 무대로 나온다. 공연 시작 전 악기를 조율하듯 광대들은 이야기를 펼칠 준비에 한창이다. 광대들의 이야기는 인형극으로 시작된다. 인형은 상황을 요약해 전달하는 보조 역할이 아니라 배우로 등장한다.

박성찬 연출 각색을 거처 독특한 구성으로 재탄생

이야기는 청년 메다르도 자작의 소개로 시작된다. 메다르도 자작은 어린 나이에 집안의 위신 때문에 떠밀리듯 이교도와 전쟁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적군의 포탄을 맞고 몸이 반으로 나뉘게 된다. 의사들이 살려낸 메다르도는 오른쪽만 남은 반쪼가리 몸이었다. 패잔병의 모습으로 돌아온 메다르도는 예전의 메다르도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반대했다며 사형을 집행하고 한쪽 눈만 뽑아 버리기도 한다.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뺏거나 거침없이 죽여 나간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 ⓒ국립극단

메다르도는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메다르도의 악행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치적 철학에 반하거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에게 행하는 정치 보복도 아니다. 마치 마음속에 응어리진 화를 풀듯 이유 불문, 대상 불문이다.

메다르도의 밑도 끝도 없는 악행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사람들은 ‘절대적인 악’인 메다르도 자작의 폭정에 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를 면하기 위해 아부하고 아첨을 일삼는다. 그에게 잘 보여 작은 이익이라도 얻으려는 우스꽝스러운 행태는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고 만다.

악과 선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과감하게 되감기를 시도한다. 젊은 메다르도가 전쟁에서 적군의 포탄을 맞고 몸이 반으로 갈라진 채 수술대에 올랐던 순간에 되돌아간다. 그 시점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이다. 그 수술에서 살려낸 메다르도가 반은 ‘절대적인 악’이고, 나머지 반은 ‘절대적인 선’만 남은 반쪼가리 존재라는 사실이다.

돌아온 선한 메다르도는 사람들에게 온갖 선행을 시작한다. 너무 과해 부담스럽기까지 한 메다르도의 뜬금없는 선행은 그림자극으로 재생된다. 극한의 악과 달리 극단적인 선은 또 다른 의미로 관객들의 웃음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뜬금없이 악한 메다르도의 폭정도 싫지만 앞뒤 없는 메다르도의 선행 역시 부담스럽기만 하다. 급기야 사람들은 메다르도의 선행을 비아냥대기 시작한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 ⓒ국립극단

사람들은 악한 메다르도에게는 상대적 도덕심을 느끼지 않지만, 선한 메다르도에게는 상대적 도덕심을 강하게 느낀다. 적당히 나빠야 콩고물이 떨어지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원작의 예리함과 연출가의 명민함이 만나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의 실체를 위트 넘치게 까발린다.

‘어디에나 있는 마을’이라는 ‘테랄바’가 중세 유럽의 어떤 작은 마을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축소판임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일 수도 있다. 작게는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일 수도 있다. 어디에 대입해도 어색하거나 이질감이 없다.

적당한 악과 적당한 선이 수없이 교차하는 인간에게 온전함이란 선과 악의 이상적인 배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극을 보다 보면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차마 웃지 못하게 되는 지점이 오고 만다. 결국 온전함의 정의를 찾다가 적당히 비열하고, 적당히 정의로운 나 자신이 보여 헛헛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연극 ‘반쪼가리 자작’

공연장소 :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공연일장 : 2022년 9월 2일(금) ~ 9월 25일(일)
공연시간 : 평일 19시 30분 / 토, 일 15시(화 공연 없음)
러닝타임 : 95분(인터미션 없음)
관람연령 : 8세 이상 관람가(초등학생 이상)
원작 :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
창작진 : 각색,연출,무대,인형 박성찬/번역 이현경/음악 배미진/의상 김정향/분장 신나나/조연출, 음향오퍼레이터 곽예진/무대감독 신희존/제작프로듀서 조혜랑
출연진 : 이경민, 김륜호, 김상보, 장원경, 전민영, 최예경, 백효성
티켓예매 : 국립극단 홈페이지(만 24세 이하 청소년은 본인에 한해 ‘푸른티켓’ 권종으로 1만 5천원에 관람이 가능하다. 한정수량), 인터파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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