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노조와 ‘기후정의’ 머리 맞대는 민주노총…“에너지 공공성” 한목소리

민주노총·프랑스노조 공동 주최 ‘기후정의 국제 포럼’ 개막…“노동자계급이야말로 기후변화 대응 주체”

민주노총은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포럼’ 개막식을 열었다. ⓒ민중의소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주도해 5일간 진행되는 기후정의 국제 포럼이 막을 올렸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프랑스노조와 국제에너지노조 등은 에너지 공공성을 확보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노총은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포럼’ 개막식을 열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후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현 상황을 짚으며 개막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신속하고 실질적인 대응이 당장 있어야 한다”고 포럼 기획 배경을 밝혔다.

양 위원장은 “빈발하는 기후 재난은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올해 세계 곳곳에서 폭염과 큰비, 홍수가 이례적으로 자주,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미 지난해 과학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티핑포인트로서 지구 온도 1.5도 상승이 10년가량 앞당겨졌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노동자계급이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야 한다는 주체적인 의식이 강조됐다. 기업 논리로는 기후위기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게 양 위원장 지적이다. 그는 “기후위기는 나날이 심각해지는데, 정부와 자본 이른바 국제 기후 거버넌스는 그 심각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윤 추구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과 기업 입장이 우선 고려돼서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이윤보다 앞선, 생존과 재생산 문제를 우선에 두고 사업장과 산업 전환을 바라보고 대응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노동자”라고 말했다.

노동자는 기후변화 대응 중심에 있는 산업 현장의 당사자라는 점에서도 기후변화 대응의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양 위원장은 “노동 현장에서부터 기후위기 대응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탄소 배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 활동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자신의 공장과 산업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주체로 나설 때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노동자의 조직력도 중요한 요소다. 양 위원장은 “노동자계급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맞선 가장 조직적인 힘”이라며 “기후위기 주범인 기업과 자본에 맞선 최전선에서 단결과 연대라는 생래적인 무기로 가장 조직적으로 싸울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은 국제 수준의 연대를 요구한다. 노동자에게 국제 연대는 오랜 자산이다. 양 위원장은 “이미 인류적, 지구적 문제가 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국제연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노동자계급에는 국제주의라는 오랜 전통이 있다”면서 “노동자계급이 처한 현실이 일국적인 대응만으로는 타개하기 쉽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기후위기 대응이 바로 그러하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포럼’ 개막식을 열었다. ⓒ민주노총

“민간 중심으로 기후변화 대응 불가…에너지 공공성 확보해야”

지난해 기후정의 국제 포럼을 주도한 프랑스노동총연맹(CGT)도 자본과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에너지 공공성을 강화해야 실효적인 기후변화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화상 연결로 개막식에 참석한 보리스 플랏지 프랑스노총 생태·임금 책임비서는 개막연설을 통해 “생태·사회적 비상사태에 직면한 가운데 초국적 기업의 영향력, 냉소주의, 그리고 정부와의 담합은 진지한 전환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난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은 에너지 자원의 공적 소유와 민주적 통제가 없다면 환상에 불과하다”며 “모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생산과 활동의 공적 통제라는 구호를 반드시 내걸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후위기 대응의 대전제도 제시됐다.

우선 일자리가 보장돼야 한다. 보리스 책임비서는 “일자리는 필수불가결한 생태·사회적 전환의 방정식 중심에 놓여있다”며 “진정한 에너지 전환은 오늘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내일 동일한 또는 더 양질의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자리 보장 원칙은 부재한 효과적인 환경·사회 기준을 만들어 내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위기 회복 정책에 엄격한 조건을 부과하기 위해 국제 무역 체계 내 규범을 재조정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불평등 완화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보리스 책임비서는 “글로벌 생태 위기는 경제의 모든 생산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며 현재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가장 불안정한 계층이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적 영역을 통해 포괄적 대응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변화와 재건을 앞당기는 과정은 정의와 진정한 평등의 실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했다.

기조연설은 션 스위니 에너지민주주의노조네트워크(TUED) 코디네이터가 맡았다. 2012년 설립된 TUED는 현재 70개 국가에서 93개 노조가 가입했다.

TUED 설립 배경을 따라가면, 에너지 전환의 공공성과 맞닿아 있다. TUED 설립 직전 세계은행은 ‘포용적 녹색성장’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정부가 민간 부문을 기반으로 녹색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내용이다. 각국 정부가 친기업적인 환경을 조성해 기후변화 대응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션 코디네이터는 “당시 노조들은 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며 “우리는 거대한 담론 앞에 완전히 수동화됐다”고 말했다.

이후 TUED가 설립됐고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대안 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션 코디네이터는 전했다. TUED가 설립 직후 발간한 보고서는 ‘신자유주의적 법제도를 통한 에너지 민영화를 철폐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션 코디네이터는 해당 보고서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전력을 하나의 재화로 볼 수 없다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이 에너지를 사고팔아 이윤을 챙기는 구조에서는 에너지 전환을 이루지 못 한다”며 “에너지를 팔수록 이윤을 남기는 기업이 어떻게 에너지 전환을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에너지 전환이 구호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션 코디네이터는 “체제 전환만 얘기하면 부족하다. 어떻게 이룰지가 핵심”이라며 “생태·사회적 억압과 파괴적인 체계에서 벗어날 길이 있다고 믿어야 한다”며 “집단이 노력한 결과로 그 대안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 마련을 위해서는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현실을 외면하면 실효적인 대안이 나올 수 없다고 션 코디네이터는 역설한다. 그는 “전반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이 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문제는 에너지 전환이 아니라 에너지 확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에너지 사용이 늘고 있다”며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도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다”고 짚었다.

기술적 문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다. 션 코디네이터는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는 토지 부족과 변동성 등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포럼은 민주노총이 세계 각국 노동조합, 농민단체, 기후단체 등을 초청해 기후위기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기획했다. 포럼 일정은 오는 24일까지다. ▲녹색자본주의 넘어, 기후정의와 체제 전환으로 ▲기후재난시대의 위기의 농업, 토지주권, 공동체,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전환의 시대,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전환역량 형성의 과제 ▲공공 중심의 정의로운 전환과 노동조합의 역할 등 주제를 다룬다. 또한, 대표적인 온실가스 대량 배출 기업인 포스코를 찾아 규탄행동을 벌이고 마포구 서울화력발전소(당인리발전소) 현장도 방문한다. 포럼 마지막 날에는 대중 집회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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