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현지시간)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치러지는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을 나서고 있다. 2022.09.19.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처럼 오후 3시 이후 런던에 도착한) EU집행위원장도 참배했다. 오스트리아 대통령 역시 웨스트민스터 홀에 가서, 그리스 대통령도 가서 참배했다. 지금 총리와 외교부 차관이 일부러 사실을 호도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명백히 사실과 다른 얘길 하고 있다. 다 똑같이 오후 3시 이후 공항에 도착해서 참배할 시간이 없어 다음 날 미사를 마친 뒤 조문록을 작성하자고 왕실에서 안내했고 거기에 따랐는데, 다른 정상들은 참배를 했다. 참배를 안 한 유일한 정상이 윤석열 대통령 같다.”
20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나온 지적이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처럼) 런던에 늦게 도착한 EU집행위원장, 그리스 대통령, 오스트리아 대통령 다 같이 장례식 후 조문록 작성하면서 조문 행사를 마쳤다”며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준비 미비 및 대응 미숙 지적에 반박하자,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같이 지적했다. 현지시간 기준 18일 오후 3시 이후 도착한 대부분의 정상이 윤석열 대통령처럼 조문을 하지 않고 리셉션·장례미사 참여 뒤 조문록만 작성했다는 설명과 달리 여러 정상이 참배했다는 지적이다. 그 근거로 실제 해당 정상들이 여왕의 시신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조문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실제 해외언론 보도 등을 보면, 알렉산더 판데어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 웨스트미스트 홀을 찾아 고개 숙여 조문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EU집행위원 또한 조문했다. 특히 나루히토 일왕은 윤 대통령 부부처럼 오후 늦게 런던에 도착해 참배하지 못하고 오후 6시에 열리는 리셉션 행사로 향했다가, 오후 7시 리셉션이 끝나고 늦게라도 웨스트민스터 홀을 찾아 조문했다. 카테리나 사켈라로풀루(Katerina Sakellaropoulou) 그리스 대통령 또한 리셉션이 끝난 뒤 조문했으며, 오후 늦게 런던에 도착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는 교통 여건이 좋지 않자 운동화를 신고 30분을 걸어가 조문했다.
김 의원은 “웨스트민스터 홀이 14일부터 19일 아침 6시 30분까지 24시간 다 개방돼 있어서, 누구나 밤늦게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다”라며 “그런데 우리 대통령 부부는 18일 오후 7시 리셉션 끝난 뒤부터 다음 날 장례식 때까지 14시간 공백이다. (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뭘 했는지 알 수 없다. 영국 신임 총리가 만나자 했는데, 그것도 바쁘다고 거절했다”라고 비판했다. 단순 외교부의 준비 부족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의지 문제도 있었다는 지적이다.
나루히토 일왕 영국여왕 조문 ⓒ국회TV 생중계 화면 갈무리
2022년 9월 20일 외교, 안보, 통일 분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이 조현동 외교부 차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국회TV 방송화면 갈무리
“영미문화권 장례, 조문 가장 중요” “홀, 14일~19일 오전 24시간 운영” 도착 후 2시간30분, 리셉션 후 14시간 윤 대통령은 왜 조문 안 했을까?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오전 해외 순방을 떠났다. 영국 순방의 핵심은 영국 런던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조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문화권 장례절차 중 가장 중요시하는 조문을 취소하면서 논란이 됐다. “장례식에 가서 조문은 하지 않고 육개장만 먹고 왔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이에 김 의원은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다른 나라 대통령이 왜 운동화를 갈아 신고 30분을 걸어서라도 조문을 했는지, 일왕이 밤늦게라도 가서 조문을 했는지 설명했다. 그는 “영미문화권 장례절차의 하이라이트는 돌아가신 분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마지막 인사(조문)를 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라며 “그것을 영어로는 ‘뷰잉’(Viewing, 고인과의 대면)이라고 하고, 특히 영국 왕실에서는 이 뷰잉의 의미를 더욱 격상시켜 뭐라 표현하냐면 ‘라잉인스테이트’(Lying in state, 사망한 국가 통치자의 유해 일반 공개)라고 한다. 이걸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9월 14일부터 19일(오전) 까지 국민에게 공개하고, 축구스타 베컴이 그걸 하려고 13시간 줄을 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 핵심을 윤석열 대통령은 그냥 건너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여왕의 시신이 안치된 웨스트민스터 홀과 여왕의 국장이 열리는 사원, 리셉션 행사가 열리는 버킹엄궁, 한국전 참전기념비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보여줬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 내외는 이날 런던에 도착하면 오후 4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참전기념비에 헌화하고, 오후 5시 10분부터 20분까지 약 10분 동안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참배한 후, 오후 6시부터 7시까지 진행되는 버킹엄궁에서 국왕 주최로 열리는 리셉션 행사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 내외는 참전기념비 헌화와 여왕 참배 일정 두 개를 모두 취소했다.
김의겸 의원이 제시한 영국 런던 지도 ⓒ김의겸 의원실 제공
김 의원은 지도를 보여주면서 “윤 대통령 부부는 오른쪽 끝에 있는 참전기념비에 들렸다가 웨스트민스터 홀에 들렸다 왼쪽 버킹엄으로 가려 했다. 여기가 다 반경 1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참선기념비에서 (참배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홀까진 3~400미터밖에 안 된다”라고 했다. 또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버킹엄까지는 0.8마일, 1.2킬로미터다. 도보로 16분 거리다.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거리까지 거리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예정대로 10분 참배하고 20분 넉넉하게 걸어가도 6시 리셉션에 도착할 수 있는데, 이걸 건너뛴 것”이라며 “3시 30분에 공항 도착해서 6시까지 2시간 30분 동안 뭐 했나”라고 지적했다.
조현동 외교부 차관은 “사전에 협의하고 계획했던 것보다 막상 많은 정상이 동시에 (런던에) 도착하는 상황이었기에, 현장 상황은 도보로 16분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걸로 안다. 정상이 움직이는데, 그 사람 많은 곳을 도보로 움직일 수는 없으니까”라고 설명했다.
이에, 김 의원은 “그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 부부는 어떻게 움직였나?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거리인데 그 거리를 왜 못 걸어가나, 마크롱도 걸어갈 때 경호원이 위장하고 걸어간다. 저 사진을 보라, 다 경호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안 하나? 대통령 부부가 저렇게 손잡고 운동화 신고 런던 거리를 걸었으면 지지율 3%는 올랐다. 근데 홍보하란 홍보는 안 하고 언론보도 나면 화내고, 짜증 내니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겠나?”라고 비판했다.
이날 조 차관은 대통령이 영국 총리의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는 김 의원 지적에 “그것은 처음 듣는 말이다”라고 했지만, 김 의원은 “김은혜 홍보수석이 한 말”이라고 말했다. 앞서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이 외교 홀대당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반박하면서 지난 19일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영국 신임 총리 또한 ‘한영 양자회담’ 개최를 희망했으나 저희의 도착 시간 관계로 부득이하게 앞으로 시간을 조율해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말씀을 드렸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의원의 설명대로라면, 윤 대통령은 런던 도착한 후 일정을 취소하면서 붕 뜬 2시간 30분, 리셉션 참석 이후 7시부터 다음날 장례미사 참석까지 약 14시간 동안 조문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고, 한영 양자회담까지 거절하게 된 셈이다. 김 의원은 이를 “분초 다퉈서 일해야 할 대통령이 초저녁 7시부터 다음 날 11시까지 공치고 있었던 것”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한덕수 국무총리는 EU집행위원장과 오스트리아·그리스 대통령 등도 참배했다는 김의겸 의원의 지적에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의원이 가진 자료를 검토 좀 해봐도 좋겠나”라며 김 의원이 제시한 사진자료들을 갖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