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31)이 직위해제 상태에서도 서울교통공사 내부전산망(인트라넷)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피해자의 업무 동선을 파악한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다른 공공기관 역시 내부망 운영을 허술하게 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
21일 민중의소리가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비위 행위로 직위해제된 자에 대해 내부전산망 접속을 제한하지 않고 있는 공공기관은 서울교통공사뿐만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워 직위해제됐음에도 공공기관의 중요 정보를 알아내는 데 어려움이 없는 모순된 상태인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직위해제가 되더라도 내부전산망 접근이 가능한가’라는 질의에 “문체부 본부 및 소속기관에서는 직위해제 된 경우 인트라넷 PC 단말기 사용을 위해 접속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과 그 산하 기관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직위해제가 되더라도 교육훈련, 연구과제 수행 등을 할 수 있고, 재직증명서 발급신청 등 업무 외 사유로 내부 전산망에 접속할 필요가 있으므로 접속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신당역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 및 살인 사건 등 일부 2차적 가해 또는 피해가 우려되는 범죄에 대해서는 직위해제 기간이더라도 해당자의 접속을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행정안전부는 ‘행정기관 정보시스템 접근권한 관리 규정’에 따라 등록된 이용자를 주기적으로 점검하지만, 마찬가지로 직위해제된 직원의 내부전산망 접근을 선제적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았다. 관련 조항이 없는 탓이다. 다만 행안부는 “각 행정기관은 직위해제된 자가 부적절한 이용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해 정보시스템 접속을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위해제에도 ‘무제한’ 접속...피해자 근무 일정 파악해 범행 이용
서울교통공사의 내부전산망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인 고인을 사측이 제대로 보호조치 하지 않은 단면 중 하나다. 공사는 2018년 피해자와 전 씨가 입사한 직장이다. 전 씨는 지난해 10월 피해자의 고소(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가 개시된 뒤 직위해제됐지만, 직원 신분을 유지해 공사 전산망 접속이 가능했다.
전 씨가 직위해제로 직무에는 종사하지 않아도 직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부전산망 접근이 허용됐다는 게 공사의 설명이다. 공사는 직원 신분을 유지하는 한 내부전산망 접근에 별도의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공사는 “현재 내부전산망 접속 대상에 관한 규정은 별도로 없다. 채용 등에 의한 신규 임용 시 해당 직원에게 자동으로 접속 권한이 부여되고, 이후 변동 사항 발생 시 변경 또는 말소된다”고 전했다. 여기서 변동 사항에는 ‘퇴직’ 등이 해당한다.
피해자는 가해자 전 씨와 내내 온라인 사무 공간에서 연결돼 있었다. 결국 사내 정보가 집결된 내부전산망에서 가해자 범행에 이용된 피해자 관련 정보들이 줄줄 새어 나갔고, 제도 미비로 인한 허점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 씨를 수사한 서울 중부경찰서의 브리핑에 따르면 그는 지난 8월 18일 결심공판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고, 당일 서울교통공사 내부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주소지와 근무지를 확인했다. 그 뒤로도 이달 3일 한 번, 범행 당일인 14일 두 번 총 네 차례 내부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 일정을 조회했다.
유족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피해자의 큰아버지는 전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중범죄 형량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사원 신분 변동 없이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랑 패스워드를 박탈하지 않았다”며 “이 사람이 아무 제재 없이 내부전산망을 통해서 피해자 정보나 동선을 파악해서 범죄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방치했다는 게 정말 뼈아픈 대목이다. 정보 접근을 제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는 뒤늦게 사후 대책으로 ‘직위해제자 내부전산망 등 접속 차단’을 약속했다. 공사는 전날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현안 보고하며 ▲징계 의결 요구 중인 직원과 ▲형사사건으로 계류 중인 직원에 대해 공사 내부전산망 및 휴대전화 업무용 애플리케이션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는 성범죄 사건에 대해 최종 확정판결이 날 때만 내부 징계 조치를 시행하지만, 1심 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될 시 징계 조치를 하도록 개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