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하락하고 있다. ‘오를 만큼 올랐다’는 심리가 확산하는 데다 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되는 탓이다. 불과 1년 전, 매수 심리가 전국을 뒤덮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거대한 변화다.
부동산 하락기 발생하는 현상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래량이 역대 최소다. 지난해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679건이었다. 올 7월에는 642건에 불과했다. 1/7 수준이다.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서울 한 달 거래량이 1천건 아래로 떨어진 적 없었다. 17년 만에 처음이다. 앞으로 매달 ‘최저 기록’이 갱신될 가능성이 높다. 8월 거래량은 594건으로 7월에 비해 7.4% 줄었고, 아직 열흘 정도 남은 9월 거래량은 200건에도 미치지 못한다. 뜨문뜨문 있는 급매물 거래는 단지 전체 가격을 10~30%씩 끌어내린다. 주식으로 비유하자면, 서울 00구 1천세대 단지에서 2억원 하락 거래가 나와 단지 시세가격 총액, 즉 시가총액 2천억원이 증발하는 식이다.
깡통전세 소식도 많이 들린다. 빌라 등 일부 전세 사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보통의 주거, 아파트 단지에 깡통전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락폭이 큰 대구나 세종은 물론, 최근 5년간 상승폭이 컸던 경기지역 상당수 단지 가격이 박근혜 정부 시절로 빠르게 회귀하는 추세다. 그사이 집값 7~80%까지 올라붙은 전세가는 갭투자와 영끌로 추격 매수에 나섰던 집주인들을 조금씩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미분양이 늘고 있다. 지난해 7월 1만5,198건을 나타냈던 전국 미분양 물량은 올 7월 들어 3만1,284건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악성 미분양이 눈에 띈다. 공사 완료후 미분양(준공후 미분양)이 최근 큰 폭으로 늘었다. 공사 시작 전, 최초 분양에서 판매를 완료하지 못하고 공사 내내 여러 마케팅으로 팔려 노력했지만, 결국 끝내 팔지 못한 아파트다. 공급량이 몰렸던 수도권이 특히 심각하다. 4백여채로 안정세를 보이던 준공후 미분양은 6월 711건으로 64% 증가했고, 7월 말에는 1,017건으로 급등했다.
거래량 감소, 가격 하락, 깡통전세 위험성 증가, 미분양 누적까지, 집값 하락 신호는 명확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투기 거품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들말대로 ‘자유롭고 정의로운’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불안할 이유도, 조급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불안함과 조급함은 시장 원리를 부르짖던 이들에게서 먼저 터져나터져 나왔다. ‘누구도 경착륙 부작용을 원치 않는다’거나 ‘GDP 15%는 건설투자가 끌어간다’는 식의 주장이다. 집값 하락이 국가 경제를 망칠 것처럼 말 하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 정부가 집값을 떠받쳐 달라는 거다.
윤석열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서울과 수도권, 세종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 부동산 규제를 풀었다. 당초 단계적 해제를 예상했지만, 발표된 해제 규모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서울, 수도권을 빼면 전국이 규제 무풍지대다.
주요 대도시에서 1주택·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이 재개된다. 양도소득세, 종부세 중과 등 족쇄도 풀린다. 앞서 윤 정부가 내놨던 종합부동산세 축소, 재건축초과이익 환수 사실상 폐지, 임대사업자 혜택 부활 등 이른바 ‘국민 주거 안정 실현 방안’까지 감안하면 시그널은 명확하다. 하락장을 빨리 끝낼 테니, 다시 투자에 나서라는 말처럼 들린다.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 지난주, 추석 밥상에 부동산 이야기가 나왔다. “네 인생 마지막 기회가 오고 있다”는 조언이었다.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 팔아야 한다’는 말은 주식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금리 상승기가 끝나고 부동산 시장 가격이 바닥을 칠 때, 그때가 매수 타이밍이라는게 요지였다.
아무 말 않고 듣고만 있었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부동산이라는 말에 서글펐다. 인플레이션이 지나고, 경기 침체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저금리로 돈을 풀 중앙은행 생각에 씁쓸했다. 진짜 문제는 지금의 가격 하락이 아닐 터다. 하락기가 끝나면 ‘언제든 다시 올라간다’는 관성, 믿음이 더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핀셋 규제’가 대세 상승기 정답이 아니었던 것처럼, 윤석열 정부의 ‘시장 만능’ 역시 대세 하락기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공산이 크다. 진지한 해법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여당과 야당은 상대 실패를 비판하면 그만일지 몰라도 국민들은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