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자식같은 벼를 갈아엎는 지경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내놓은 답변은 속이 터진다. 21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한 총리는 야당의 대책 촉구에 애매한 답변을 내놓으면서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다.
한 총리는 쌀값 폭락의 원인을 묻자 "제일 중요한 건 수요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고 올해는 풍년의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쌀 수요 축소는 한 총리도 인정한 것처럼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풍년을 이유로 든 건 농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지르는 짓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카르텔이라도 만들어 고의적으로 농사를 망쳐야 한다는 말인가. 쌀은 식량안보의 근간이다. 풍년이든 흉년이든 식량의 절대량을 확보하고 과잉생산된 부분은 정부가 매입해 적정가격선을 유지하는 게 맞다.
야당 의원이 정부의 의무 매입을 법제화하자는 제안을 내놓자 한 총리는 "항구적인 제도가 경직적인 제도가 돼 버리는 것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법률로 정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내비쳤다. 정부가 행정을 통해 쌀값을 안정화시키지 못하니 국회가 나서서 법제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동문서답을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한 총리는 쌀 수입물량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독자적으로 국내적으로만 하나의 조치를 할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 국제적으로 통상질서에 중요한 파트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현재 우리에게 지워진 쌀 의무수입 물량을 관계국들과 조정하는 건 정부의 임무다. 일각에서는 의무수입 물량을 원조(ODA)로 돌리자는 제안도 내놨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는 대신 국제 무역질서만 탓하는 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대신 한 총리는 "최근에 윤석열 대통령이 농민들의 어려움에 대해 말을 했고 또 일정한 요청도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책마련을 지시했다면 무엇이 되었건 구체적인 방안이 나와야 한다. 한 총리는 대통령의 주문도 공개하지 않고,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라는 식의 대답만 되풀이했다.
이날 농민들은 충남 예산, 당진, 보령, 부여, 서천, 아산, 논산, 천안, 청양 등지에서 논을 갈아엎었고, 전북과 전남 영암 농민들은 집단 삭발까지 했다. 지난 달 29일엔 전국 농민이 상경해 나락을 도로 위에 뿌리며 시위를 벌였다. 애타는 농심에 심상치 않은 식량위기를 앞에 두고 한 총리와 정부의 태도는 얄밉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