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가 19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09.19 ⓒ민중의소리
지난 3월 대선을 앞두고 이색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다. ‘기호’가 아닌 ‘기후 0번’이 쓰인 어깨띠를 걸고 후보로 나선 그의 이름은 ‘김공룡’. “기후가 위기다! 기후가 먼저다!”, “더 나은 지구를 정치적으로 상상하자!”, “멸공 말고 멸종!” 등의 구호를 내걸고 나섰다.
당시 김공룡 후보는 토목 사업 전면 철회, 석탄·석유·가스 수입 단계적 금지, 재생에너지 확충, 화석연료 산업 보조금 폐지, 고위 공직자 대상 기후교육 전면 실시 등 7대 부문 14대 공약을 발표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공룡 후보는 사람이 아니다. 기후운동을 펼쳐온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마스코트다. 지구에서 인간보다 먼저 살다가 멸종해버린 ‘공룡’을 내세워 대선에서 기후 문제가 외면 받는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앞서 지난해 4월 펼쳐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김공룡’ 후보를 내세워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기후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청년들이 궁금해졌다. 지난 18일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를 만났다.
청년들이 공룡을 대선후보로 출마시킨 이유는?
“기후운동이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공룡’을 떠올렸어요. 멸종한 공룡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처럼 너희도 멸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생각에 시작했어요.”
공룡을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마스코트로 정하고, 대선후보로 출마시키는 등 각종 활동에 활용하게 된 이유를 묻자 강 대표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긴급하지만, 겉으론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서 위기를 느낀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공룡을 소환하면 인간보다 앞서 지구에서 살다 멸종된 공룡을 소환하면 기후위기를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설 것이라는 생각에 시도했던 아이디어가 대중의 큰 호응을 얻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은 자신들의 마스코트인 공룡을 가상 대선후보로 세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고발해 주목받았다. ⓒ청년기후긴급행동
아울러 공룡을 앞세우면서 기후운동을 몇몇 영웅적인 청년과 활동가들의 개인적 운동이 아닌 모두의 운동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의 별칭이 ‘김공룡과 친구들’인 것도 그런 이유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운동을 꿈꾸며 청년들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소중하게 여겼다. 정치학을 공부한 스물다섯 살 청년 강 대표도 그렇게 한 걸음 보태는 심정으로 청년기후긴급행동을 만들고, 힘을 보태게 됐다.
2019년 9월 기후위기비상행동 이후 나선 기후운동 “기후위기는 단순히 개인이 일회용 안 쓰고 에너지 절약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임을 알 게 됐어요”
그가 기후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건 지난 2019년이었다. “2019년 9월에 기후위기비상행동 행진이 있었어요. 그 행사를 전후해서 기후 관련 운동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됐고, 그냥 단순히 개인이 일회용 안 쓰고, 에너지 절약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넘어 굉장히 정치적인 문제임을 알 게 됐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정치 지도자나 사회가 알아서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접 나서 사회의 흐름을 바꿔야 하는 문제임을 알았어요. 그래서 여기에 힘을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 청년이 모였다. 학교도 다르고, 활동하던 동아리도 달랐지만, 함께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각자 그동안 기후와 환경문제와 관련해 다양하게 공부해 왔던 그들은 공부하고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위기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이젠 직접 행동해야 할 때라고 의견을 모았다.
“수십 년 동안 환경운동 또는 생태운동을 해왔고, 기후변화와 위기와 관련해 제도 교육에서도 가르쳐 줬지만, 이런 위기 상황에 맞는 긴급한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선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 맞는 움직임, 행동을 만들자는 게 목적이었어요. 우리들은 정부, 국회, 기업 등 우리 사회에 힘 있는 이들을 향해 시민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입맛대로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에 저항하고, 계속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단체, 청년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다양한 창조적인 시도를 하는 단체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2019년 말 청년기후긴급행동을 만들었어요.”
“우리처럼 멸종할래?” 환경부 행사장에 나타난 공룡 세 마리
이들이 처음 행동에 나선 건 2020년 1월 31일 열린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녹색 전환과 환경 정의 시민과의 대화’ 행사였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참석해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청취하는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진행된 행사에서 청년들은 환경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그 과정에 청년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이날 행사 주제이기도 했던 ‘녹색포용과 환경정의’가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의견을 전달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나갈 무렵 ‘우리처럼 멸종할래’ 등의 구호를 들고 공룡으로 분장한 활동가 3명이 등장했다. 청년기후긴급행동을 세상에 알린 사건이었다.
2020년 1월 31일 열린 환경부 주최 타운홀 미팅에서 조명래 환경부 장관 뒤에서 공룡 옷을 입고 피켓을 들고 있는 청년기후긴급행동 활동가들. ⓒ청년기후긴급행동
당시 문재인 정부는 ‘그린뉴딜’과 ‘탄소제로’를 강조했다. 2019년부터 환경부가 나서 “파리협정 이행에 맞춰 2020년을 기후변화 대응 강화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면서 우리나라의 중장기 탈탄소 경제·사회비전이라는 ‘2050 저탄소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탄소중립(net-zero)으로 전환해 기존 화석연료 기반 경제·사회구조 전반의 혁신하겠다는 것이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2020년 7월에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며 ‘경제성장 전략이자 모델’로서 그린뉴딜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녹색과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대기업인 삼성물산과 두산중공업, 하나은행과 공적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나서 베트남 하띤성에 붕앙-2 석탄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의 탄소는 줄이자면서 베트남에 석탄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컸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이중적인 현실을 청년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프랑스 속담을 빌어 비판했다. 이들은 2020년 12월 발표한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어둠이 내려앉아 눈에 보이는 모든 형체의 윤곽이 흐릿해져서 내 앞에 나타난 짐승이 나와 친숙한 개인지, 나를 해치려는 늑대인지 구별되지 않는 시간을 뜻한다. 대통령, 국회, 정부, 지자체, 기업까지 나서서 기후위기를 말하는 지금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강 대표가 동료와 함께 두산중공업 간판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까닭은?
개와 늑대가 구별되지 않는 시간, 청년들은 냉철한 시각으로 세상을 봐야 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어온 건 기업들이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우선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진 기업은 바로 두산중공업이었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는 동료 활동가 이은호와 함께 지난해 2월 18일 성남 분당에 있는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 ‘두산타워’ 앞에 있는 ‘두산’ 로고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 석탄발전소를 수출하는 두산중공업을 규탄하기 위해 나선 직접행동이었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 제공
“두산중공업은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자신들을 홍보하고 있어요. 그런데, 두산중공업은 베트남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석탄발전소를 수출하는 기업입니다. 그동안은 제도권 안에서 피케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식의 운동을 해왔는데, 좀 더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를 하더라도 끝까지 나서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강 대표는 동료 활동가 이은호와 함께 지난해 2월 18일 성남 분당 두산중공업 본사 건물인 ‘두산타워’ 앞 ‘두산’ 로고 조형물에 녹색 수성 스프레이를 칠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가 석탄화력발전 투자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펼치며 기습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활동가들은 경찰에 연행됐다. 이후 지난 7월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재물손괴와 집회시위법 위반으로 두 활동가에게 500만 원 지급하라며 약식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하지만, 올해 1월 5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두산중공업도 이들에게 1840만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의 법질서 안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면 이를 벗어나는 큰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두산중공업은 이 사건으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었고, 회사의 임직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했어요. 벌금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공익을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지만, 법질서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법질서와 관련해 의문이 들었어요. 기업 등의 사유재산과 관련한 이익을 보호해 주는 법은 있는데, 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말하면서도 위기를 막아낼 법은 없을까? 현재의 법질서 안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면 이를 벗어나는 큰 저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1월 19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재판을 앞두고 항의행동에 나선 청년기후긴급행동 회원들. 이날 재판에서 두산중공업 간판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린 행동에 대해 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강 대표 등 활동가들은 이에 항소했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 제공
기후위기를 대하는 청년들의 입장은 기성세대들과는 차이가 있다. 기성세대에게 기후위기는 아직 실감하기 어려운 현실인데 반해 청년들에겐 자신들이 살아갈 가까운 미래처럼, 또는 바로 오늘의 문제로 여겨진다. 청년들이 단체를 만들며 ‘청년기후긴급행동’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기후위기가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긴급’한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의 청년들이 만나는 현실은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 강 대표는 “임용고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만나면 밝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은 거의 없어요, 아이를 낳고 키우기조차 두렵다면서 미래를 걱정해요. 이런 청년세대의 모습이 기성세대가 보기엔 삶에 대해 의욕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어요. 그건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부모님 세대 같은 경우는 일자리를 갖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게 노력하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그런 걸 이해 못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성공의 신화는 지금의 청년들에겐 ‘유통기한’이 지난 낡은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신앙적 결심은 사회와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활동할 수 있고 힘든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인내하며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기후위기의 긴급함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에 강 대표를 비롯한 청년 기후활동가들은 벌금과 손해배상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행동에 나선다. 그리고, 주저함 없이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가 가진 ‘신앙’이다. 강 대표는 개신교 신자다. 목회자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청소년기를 지나며 나의 성공 또는 행복을 위한 삶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살길 원했다. 그의 손목엔 ‘창조주의 딸’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트 하엘’이 새겨져 있다. 강 대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는 신앙적 결심은 사회와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활동할 수 있고, 힘든 상황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꺼이 인내하며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라고 고백했다.
‘창조주의 딸’임을 잊지 않는 삶은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 창조주께서 만든 그 모든 것을 보전하는 삶이다.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면서도 기후 문제를 비롯해 지구와 생명을 지키는 일에 무관심하다. 심지어 보수 개신교, 대형교회 등에선 개인의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기며 개발 논리를 따른다. 창세기 1장 28절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담겨있다. 과거의 신학은 이를 자연에 군림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삼았다. 이런 과거의 신학을 대형교회들은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강 대표는 “무언가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방식이 아니라 돌보고, 그 안에서 가장 약한 이들, 가장 약한 생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대표가 19일 서울 종로구 민중의소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의 왼쪽 손목엔 ‘창조주의 딸’을 뜻하는 히브리어 ‘바트 하엘’이 새겨져 있다. 2022.09.19 ⓒ민중의소리
사실, 작은 교회에서만 신앙 생활을 해온 강 대표에게 대형교회와 보수 개신교의 이런 모습은 낯설다. 그에겐 낯선 모습이지만, 군림하고, 정복하고, 부와 영예와 권력을 뒤쫓는 교회의 모습은 대중들에게 익숙하다. 그리고, 대형교회와 보수 개신교는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과 그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지키는 데 큰 힘을 보태고 있다. 강 대표는 “솔직히 그들과 내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만 하진 않는다.
“저는 교회야말로, 기독교야말로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는 종교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이 다 말해주고 있잖아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잖아요. 큰 예배당을 교회라고 부르지만,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개인들도 하나의 교회에요. 결국, 그 개인의 삶으로 믿음을 드러내고 믿음을 실천하고 그러면서 내가 교회가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고 믿어요.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거고, 어떤 선택을 할 거고, 어떤 걸 지향할 거고, 누구와 함께 싸우고, 누구와 함께 웃고 울 것인가를 늘 고민합니다.”
그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나로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미국의 생태주의 철학자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자신이 변화하면 세상을 발효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이란 책에서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대중은 아직도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전이 느린 진짜 이유는 그 소수마저도 다수의 대중보다 실질적으로 더 현명하거나 더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가 세상을 발효시키는 효모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 대표는 “저는 교회야말로, 기독교야말로 자본권력에 맞설 수 있는 종교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경이 다 말해주고 있잖아요. 풍요만을 주장하는 ‘바알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라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더구나 기독교는 국경과 민족도 넘어서잖아요. 그런 성경의 사상이 기후위기를 맞은 오늘의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믿음으로 그는 지난 3월 서울 새밭교회 청년회 모임에 참석해 청년들과 함께 기후위기 이야기를 나누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대형교회를 찾아 기후위기를 알리는 선전전도 고민하고 있다. 그는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께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말씀을 들고 대형교회 교인들을 만나면 그들도 기후위기라는 ‘시대의 표적’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구체적 계기가 없이 바뀌지 않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이후 커지는 기후위기 “환경을 지켜야 하는 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 규제를 없애고 경제를 살리자고 말하는 게 맞나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후위기와 싸운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기후위기와 관련한 정부의 대응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당선인 신분으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과 만나 “기업은 올림픽 국가대표”라며 “그동안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오라고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말한 모래주머니는 각종 기업 규제 법안을 말하는 것이었고, 여기엔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환경 관련 법안들도 포함된다. 지난 8월엔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환경영향평가에 스크리닝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사업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가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강 대표는 “환경을 지켜야 하는 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 규제를 없애고, 경제를 살리자고 말하는 게 맞나요?”라고 물었다.
지난 9월 7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열린 두산중공업 관련 민사재판을 앞두고 '환경범죄 감형 & 생태학살 방조 한화진 환경부 장관 규탄 기자회견'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 제공
한발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탄소중립’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원전업계 간담회에 참석해 정부 관계자들에게 “지금 여기 원전업계는 전시다. ‘탈원전’이란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다. 비상한 각오로 일감과 선발주를 과감하게 해달라. 그러지 않으면 원전업계 못 살린다.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강 대표는 이렇게 탄소만 줄이면 되고, 이를 위해선 안전도 상관없이 원전을 도입할 수 있다는 생각을 ‘탄소 환원주의’라고 꼬집었다. 그는 “탄소를 줄이면 다 되는 게 아니에요. 다른 모든 걸 무시하고, 탄소만 줄이자는 식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고 말했다.
“인간과 우리만 생각해선 안 돼요 국경도 넘어야 하고 자연과 동물의 권리도 생각해야 해요”
이렇게 사회가 바뀌지 않고, 입으로만 기후위기를 떠들고 있는 가운데 어느새 위기는 현실이 되고 있다. 얼마 전 파키스탄에선 홍수가 일어나 국토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다. 우리나라에서도 반지하에 살던 서민이 홍수로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기후위기는 불평등하다. 약자에게 더욱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기후위기를 만든 책임은 선진국과 부자들에게 있지만, 이로 인한 피해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이에게 넘겨진다. 강 대표는 우리나라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11일 이수역에서 열린 기후재난과 관련한 불평등을 고발하는 캠페인 모습 ⓒ강은빈 청년기후긴급행동 공동대표 제공
“정부는 우리나라가 고도의 성장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말해요. 이만큼 잘 살았으면 됐지 뭘 더 기업을 먹여 살리려고 베트남 등 외국에 석탄발전소를 수출하는지 모르겠어요. 기후위기를 말하면서도 아직은 경제성장이 더디면 국가가 망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정부도, 우리 국민도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청년기후긴급행동은 ‘더 나은 지구를 정치적으로 상상하자’고 자주 말해요.”
청년들이 말하는 ‘더 나은 지구’는 무엇일까? 인간만, 우리나라만, 부자들만이 아니라 인간도, 동물도, 자연도 모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 “우리의 법질서는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에만 머물러요. 그렇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죽지만 않으면 생태계를 파괴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인간과 우리만 생각하는 거죠. 이것이 확장돼야 해요. 국경도 넘어야 하고, 자연과 동물의 권리도 생각해야 해요.”
지난 대선에서 청년기후긴급행동이 ‘강과 산의 권리를’이라는 구호와 함께 강과 산, 비인간 동물들의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바로 ‘더 나은 지구’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권리를 실제로 헌법에 넣은 국가도 있다. 세계 최초로 남미의 에콰도르가 지난 2008년 8월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에 자연의 생물이 영구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고 진화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에콰도르뿐 아니라 볼리비아, 뉴질랜드 등 많은 나라에서 이런 자연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9월24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 “우리는 기후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것”
청년기후긴급행동을 비롯해 ‘더 나은 지구’를 정치적으로 상상하는 이들이 9월 24일 서울 시청 인근에서 대규모 기후정의행진을 벌인다. 강 대표는 “정부가 나서 기업의 규제를 풀어주고, 가진 자들의 이익을 위해 편의를 봐주고 있어요. 이런 현실에서 거리로 나서는 건 기후위기를 이기기 위해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후정의행동 조직위는 “기후변화, 기후위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기후재난의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다. 폭염, 산불, 가뭄, 홍수가 이제 일상이 되고 있다. 왜 재난이 일상이 되고 있는가? 각국 정부와 대기업들의 휘황한 말잔치에도 실제로는 줄어들지 않는 온실가스 배출 탓이다. 이윤의 극대화, 성장과 팽창에 매몰되어 지구 생태계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착취하는 기업과 정부 탓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종적 불평등을 지속하는 사회 체제 탓”이라며 “우리는 기후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 광장에서 오는 9월 24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 포스터를 들고 홍보에 나선 청년기후긴급행동 ⓒ청년기후긴급행동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투쟁이 고요할 리 없다. 강 대표를 비롯해 청년 활동가들에게 184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정도로 반발도 거세다. 2년 넘게 재판이 이어지면서 강 대표는 자신의 재판이 한국사회와 시스템을 바꾸는데 보탬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를 위해 강 대표는 10월 19일 열리는 재판을 앞두고 1840명의 연대 지지 서명을 받아 원고인 두산중공업 대표에게 공개서한을 전달할 계획이다.
“구조 자체가 폭력을 만들어내고 지배와 착취를 전제로 굴러가는 데 내가 침묵하는 것도 이에 동조하는 거예요 저는 사회가 유해한데 무해한 개인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꿈꾸고 있는 삶은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해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믿음과 다른 삶이기 때문이다. 강 대표는 주어진 삶의 궤적과 경로는 결국 기존의 시스템을 인정하는 것이고, 시스템을 바꾼다는 건 그런 길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흔히 기성세대가 말하는 잘 사는 방식은 기존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는 거잖아요. 사회운동은, 기후운동은 결국 정해진 경로와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고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선 새로운 길을 열고, 기존의 전제와 규칙을 바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청년들에게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함께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최근 청년들에게 ‘무해(無害)’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남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 대표는 단순히 나만 무해해선 안 된다면서 나만이 아닌 사회가 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요즘이에요. 혼자서는 거대한 불의에 맞설 수 없기 때문에 나라도 무해하게 살아야겠다는 선량한 마음 말곤 달리 방도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혼자서는 감히 가질 수 없는 희망을 품게 돼요. 세상을 뒤집자는 치열한 투쟁 뿐만 아니라 우리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함께 고민하고, 꿈꾸고, 이루기 위해 함께 힘쓰는 삶은 참 아름다워요. 우리의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