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제적 망신 자초한 대통령의 영·미 순방

현지시간 18일부터 시작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 순방의 주요 일정이 끝났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이렇게 많은 구설과 논란을 일으킨 외교참사는 처음이다. 시작부터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다. 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조문하기 위해 방문했는데 막상 조문을 안 한 것이다. 늦게 도착한 다른 나라 정상들도 조문 일정을 취소했다는 식의 변명은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렀다. 조문 취소의 예로 들었던 다른 나라 정상들의 조문 모습이 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변명조차 그럴 듯하게 못하는 무능만 부각됐다.

미국 순방에서 보여준 모습은 지켜보는 국민이 굴욕감과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처참했다. 정부는 대통령이 순방을 떠나기 전부터 한·미, 한·일 정상회담을 기대하는 모양새였다.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 시간을 조율 중에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만남은 시작하기 전부터 시끄러웠다. 우리 측이 정상회담이 합의됐다는 식으로 미리 발표하자 일본 측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가 있던 건물로 찾아가서 만났다. 어느 모로 봐도 회담을 구걸하는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30분 동안 ‘약식 회담’을 했다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지만 일본 측은 ‘회담’이 아니라 ‘간담’이라고 표현했다. 형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강제동원 피해 문제에 대한 해법을 포함한 한·일 간의 현안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난 시간은 불과 48초였다. ‘만난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더 허탈하기 짝이 없다. 실무진이 사전에 검토한 현안을 두 정상이 짧은 시간 동안 확인했으니 문제없다는 것인데, 이런 식이라면 세상 정상회담은 전부 1분도 안 걸릴 판이다. 한·미 간에는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등이 문제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비롯해서 우리에게 절박한 현안이 많았다. 백악관 브리핑에서 IRA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순방의 대미를 막말로 장식했다. ‘48초 환담’이 이루어진 바이든 대통령 주최 회의가 끝나고 행사장에서 나오는 길에 윤 대통령이 한 말이 하필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떻게 하냐?”라고 들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글로벌 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자고 했던 약속에 대해 미국 의회가 승인해주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상대국 의회와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을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했던 외교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의 막말 사태는 공적인 발언이 아니라는 식의 변명으로 수습될 수 없다. 더 나아가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이 아니라 "승인 안해주고 날리면"이라는 발언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대통령이 자국 국회를 상대로 비속어 막말을 한 꼴이 되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국격 훼손은 마찬가지이며, 이런 것을 변명이라고 하는 상황이 구차하기는 더 심하다.

한국 외교사의 전례 없는 총체적 난국을 초래하고 국민적 실망을 안긴 원인은 다른 누구보다 앞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다. 이 지경에 이르고서도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전면적인 쇄신에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치러야 할 국가적 피해는 가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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