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조직위)’에 따르면, 오는 24일 서울 시내 일대에서 ‘924 기후정의행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
이번 여름 한국이 겪은 폭우·태풍 등 자연재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도 들게 했다.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의 기후행동이 벌어진다.
23일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조직위)’에 따르면, 오는 24일 서울 시내 일대에서 ‘924 기후정의행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기후행동은 한국에서 개최된 기후위기 관련 행사 가운데 최대 규모다. 전국 각지에서 2만여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직위에는 400여개 단체, 2,500여명 개인이 함께한다.
행사는 24일 오후 1시 서울시청 인근에서 시민들의 자유로운 목소리를 듣는 ‘오픈마이크’로 시작된다. 본집회는 오후 3시부터다. 청소년·노동자·농민·석탄발전소 소재 지역 주민 등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의 발언으로 채워진다. 이후 오후 4시 서울 중구 주요 거점을 경유하는 행진이 이어진다. 행진 도중 ‘다이-인(die-in)’ 시위도 펼쳐진다. 참가자들이 일정 시간 동안 땅에 누워 있는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시위다. 오후 6~7시까지는 타악기 퍼포먼스와 밴드 공연 등 문화제가 진행된다.
매년 9월에는 세계 각국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기후행동이 펼쳐진다. 시작은 지난 2018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5세이던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스웨덴 의사당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손에는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School Strike for Climate)’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툰베리의 기후파업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Fridays for Future)이라는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듬해 9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개최되기 전주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기후파업이 진행된 것을 계기로 9월은 기후행동의 달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도 2019년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열렸다. 서울에서만 5천여명, 전국적으로 7천여명의 참가자를 모으며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제한됐던 대규모 기후행동이 3년 만에 몸집을 키워 돌아온 셈이다.
한재각 기후정의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이번 기후행동 기획 배경에 대해 “기후재난 심각성이 가시화하고 있어 더 이상 주저할 수 없다는 결심이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정의’를 다시 한번 명확하게 요구하는 것이 이번 기후행동의 목적이다. 그간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진전하기는 했으나, 방향 설정이 잘못돼 한계가 분명하다는 문제의식이다.
3년 전 기후행동에서 정부를 향해 요구한 사항은 표면적으로는 이행이 됐다. ▲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선언을 실시하라 ▲온실가스 배출제로 계획을 수립하고,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범국가 기구를 구성하라 등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로 상향했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대책 수립을 맡는 위원회도 구성했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관련해 보인 정부 대응은 안일했고, 허울뿐이었다는 게 문제다. 목표는 제시했지만, 정책 수단은 미흡하다. 당장 획기적인 노력이 없으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한 위원장은 “2050년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했지만, 30년 후의 일을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49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하다가 1년 만에 ‘0’으로 줄일 수는 없다”며 “지구 기온 1.5도 이상 상승을 막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 이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게 전 세계 과학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9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 참가자들이 다이-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9.09.21. ⓒ뉴시스
자본주의성장체제의 녹색성장·탄소중립으로는 기후위기 대응 한계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성장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성장을 존립 기반으로 한다. 기업의 이윤을 보장해야 한다. 이 틀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이 제한된다.
대표적인 게 석탄 발전이다. 기업의 사적 재산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석탄 발전소 허가를 내준다. 석탄 발전 폐지를 미루면서 탄소중립을 이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본주의성장체제에서의 기후위기 대응은 ‘녹색성장’ 또는 ‘탄소중립’으로 표현된다. 이는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기업이 실제로는 친환경적인 사업을 하지 않으면서 친환경적으로 눈속임하는 이른바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도 나타난다.
SK에너지는 지난해 이벤트성으로 ‘탄소중립 휘발유·경유’를 판매했다. 탄소중립과 석유제품은 모순된다. 이벤트 실체는 기름을 12원 비싸게 팔고, 이 돈으로 탄소배출권을 산다는 것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소비자가 부담한 돈으로 때우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주요 대기업에 할당하는 탄소배출권 대부분을 공짜로 뿌리고 있다.
한 위원장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기후정의가 아니라 기후부정의의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자본주의성장체제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에 한계가 있다. 온실감축 부담을 외국, 미래세대에 전가할 뿐”이라고 말했다.
녹색성장 또는 탄소중립을 대체할 기후정의는 체제전환을 요구한다. 자본주의성장체제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의 타파를 포괄한다. 공공적·민주적·생태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 많은 논의를 통해 체제의 모습을 그려 나가야 한다. 이번 기후행동은 이 논의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의미가 있다.
한 위원장은 “자본주의성장체제에서는 부자·부유국·기업이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빈자·빈국·노동자·시민이 기후재난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불평등을 야기한다”며 “장애인·농민 빈자 등 불평등을 겪는 모두가 기후정의 안에서 모일 수 있다”고 했다.
조직위는 기후정의에 입각에 요구 사항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 ▲모든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등이다.
충남 태안군 석탄가스화복합화력발전소 일대가 흐리게 보이고 있다.(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집회 금지 통보한 서울시·종로서…“헌법상 기본권 무시”
서울시와 종로경찰서는 이번 행사의 집회를 불허했다. 앞서 조직위는 서울시에 광화문광장과 인접도로 사용을 신청하고 종로경찰서에 집회를 신고했다.
조직위에 따르면, 서울시가 비공식적으로 밝힌 불허 이유는 이미 같은 날 허가된 행사 있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기 허가 행사는 서울시가 주최하는 ‘서울자전거축제’다.
자건거축제는 명분이고, 진짜 이유는 오세훈 시장의 ‘정치 집회 금지’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 8월 광화문광장 재개방 이후 정치적 목적이 있는 집회와 시위가 열리지 못하도록 사전 차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종로경찰서는 교통량이 많은 주요 도로라서 집회를 허용하면 불편이 생긴다는 이유로 조직위에 집회 금지를 통보했다.
조직위는 서울시와 종로경찰서의 집회 불허에 대해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집회 불허에 대한 가처분 소송은 집회 당일이 임박해 결과가 나와, 행사 준비를 하는 실무 차원에서는 다른 장소로 대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조직위는 서울시청에서 숭례문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서울시와 종로경찰서의 집회 불허에 대해서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무시한 것으로 보고, 별도로 대응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