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인 것은 아니다

인도 동부에 있는 나갈랜드는 220만 명에 이르는 몽고계의 나가족이 오랜 독립운동 끝에 1963년에 만들어진 자치주이다. 사진은 2022년 8월 14일 나갈랜드의 독립기념일 행사 중인 나갈랜드 군인들이다.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세계 평화의 날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 기념일의 하나로 날짜는 9월 21일이다. 세계 평화의 날은 전쟁 및 폭력 행위에 대한 중단을 지지하고 평화에 대한 이상을 기념하는 날인데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올해 특히 그 의미가 각별하다. 그런데 며칠 동안 교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쟁이 중단된 것인가? 며칠로는 안 되고 몇 달은 되어야 전쟁이 중단된 것인가? 전면전이 마무리 되면 국지적인 게릴라전이 이뤄져도 전쟁이 중단된 것인가? 어쨌든 전쟁이 중단됐다고 치자. 그것만으로 평화가 이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모습의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인 접근으로 '평화'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알자지라에 실린 맨체스터대 명예교수 무케시 카필라의 글을 소개한다. 

원문:  Peace is not the absence of war

9월 21일은 유엔이 지정한 세계 평화의 날이다. 유엔은 1945년 설립 당시 “전쟁에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를 첫 설립 목표로 삼고 이 고귀한 말을 헌장에 새겼다. 그후 수 세대에 걸쳐 정치인, 외교관, 방위군은 전쟁이 항상 나쁘고 평화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선하기 때문에 평화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틀 속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전쟁이 그 자체로서 불법인 것은 아니다. 유엔 헌장도 침략이라는 범죄에 대응하는 전쟁을 허용한다. 국제인도법에도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이 있다. 전쟁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집단학살과 반인도적 범죄는 무력의 사용을 통해 종식됐다.

동시에 우리의 평화 구축 실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어난 무력 충돌 중에 진정으로 완전히 중단된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주기적으로 끓어오르기도 하고, 잠시 잠잠해지기도 하면서 끈질기게 이어진다. 팔레스타인, 카슈미르의 역사적 갈등, 미얀마 소수인종의 고난, 마그레브와 사헬의 반란을 생각하면 이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부족이 장악한 지역에서 소요가 계속 일어나는 파키스탄이나 민족 간의 무력 충돌을 겪은 남수단 등 수많은 국가가 지속적인 내부 분열에 몰두한다.

국제적으로는 유엔이 수십억 달러를 써 가며 수십 개의 국가에 수만 명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했다. 유럽연합(EU), 아프리카연합(AU)이나 아세안(ASEAN)과 같은 지역기구의 사절단과 수십 명의 유엔 대사가 전쟁 지역을 넘나들며 활동한다. 싱크탱크와 NGO들이 바쁘고, 평화구축 프로그램이 넘쳐나며, 저명인사들이 참여하는 평화 콘퍼런스가 1년 내내 열린다. 점점 드물어지기는 하지만 일부 노력이 강대국들의 합의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으로 인정을 받는다. 채찍과 당근이 제재와 지원을 통해 이용된다.

하지만 평화사업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방식은 수익이 매우 빈약하다. 커지는 압박감 속에서 한 쪽이 숨을 고르고 전열을 재정비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아무 종이에나 사인을 하면서 일시적으로 폭력이 멈춘다. 그러나 갈등은 다시 증폭돼 그 다음 휴전이나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다시 불타오른다. 그렇게 사이클이 계속 된다.

설상가상으로 정전이나 휴전을 위한 개입이 성급하게 이뤄지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한반도에서 그랬던 것처럼 갈등이 연장될 수도 있다. 때가 되어야 갈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해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잘못을 바로잡는 등 근본적인 원인이나 차이가 해결될 때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전쟁은 한쪽이 확고한 승리를 굳혔을 때에만 끝이 난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현대 전쟁은 다차원적이고, 확실한 승자가 등장할 때가 거의 없다. 특히 양쪽에 외부세력이 개입할 때 말이다. 어렵게 이뤄진 평화가 얼마나 지속적일 지는 두 개의 핵심 요인에 달려 있다. 첫째는 전쟁이 얼마나 사악하게 진행됐는가이다. 요즘은 끔찍한 만행이 일반적이다. 강간, 고문, 굶주림에 시달리고 강탈당한 생존자들은 가해자와 화해할 기분이 아니다. 그때 두번째 요인이 등장한다. 승자의 자비와 현명함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부족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전쟁에 대해 많이 알지만 평화에 대해서는 현명하지 못하다. 노벨평화상을 주는 것은 쉽지만, 많은 수상자들은 자신의 노력이 장기적으로 실패로 돌아갈 때 부끄러워한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과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평화는 잠정적이다. 폭력을 맛본 사회에서 폭력이 영구적으로 되풀이 되는 경향이 있다. 할리우드, 발리우드, 넷플릭스 제작자들이 역사의 기억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무력 충돌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축적돼 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말아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약 170개의 무력 충돌이 진행 중이다. 2021년 전투 중에 사망한 사람의 수는 2000년에 비해 3배 정도 증가한 12만 명이었다. 이런 수치는 사람들이 전쟁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의 일면일 뿐이다. 전쟁이 민간인에게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전쟁이 길어지고 더 악랄해진 지난 수십 년 동안 그 영향을 크게 증가했다. 유엔은 현재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20억 명이 분쟁 지역에 살고 있다고 추정한다.

전쟁과 평화 이론은 이런 결과를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더 건강해지고, 더 잘 살게 될수록 인간은 평화를 더욱 사랑하게 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가 더 많이 충족되고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목소리를 내고 존중받고 싶은 보다 높은 욕구가 실현되면서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싸울 이유가 줄어야 한다. 설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수많은 사회규범과 법률 및 제도가 우리를 통제할 것이다. 그래서 지역공동체나 국가 내의 분쟁, 혹은 그들 사이의 분쟁은 진실과 사실에 수반한 이성에 기반해, 균형잡힌 기브-앤-테이크의 원칙에 따라 조용하게 해결돼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현재의 에너지와 식량 위기와 같은 주기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빈곤 완화, 인간 개발 및 제도적 역량에 대한 지표들은 인간이 대부분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진전을 이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계 평화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전쟁과 평화 이론은 틀렸을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발달하면서 우리 세계의 잘못된 점에 대한 깨달음도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열망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인류의 사회적, 정치적 발전의 대부분은 투쟁을 통해 이뤄졌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인권은 투쟁을 통해 쟁취됐다. 인권은 선구적인 한 곳에서 먼저 발생해 먹을 권리, 투표할 권리, 고문 당하지 않을 권리처럼 성문화하면서 보편적인 것으로 확립된다.

그러나 투쟁을 통해 어렵게 쟁취한 권리를 굳건히 지키지 못하면, 권리를 어기는 잘못이 또 다시 고개를 들어 새로운 갈등을 촉발한다. 게다가 여성의 교육 받을 권리나 재생산 여부를 결정할 권리처럼 세계적으로 아직 완전히 확산되지 못한 권리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롭게, 편안하게 그런 권리를 누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막을 도덕적인 권리가 없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낫지만, 권위주의 정권이 그것을 막을 경우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미래에도 새로운 지정학적 긴장과 기후변화, 전염병, 자원 경쟁, 역기능적인 세계화로 커지고 있는 불안 더 많은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사회 내부와 국가 간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전 세계 사람들이 새로운 인권을 위해 싸우기 때문에 그런 갈등이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모든 갈등에는 그 갈등만의 논리가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갈등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처리해 지속적인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평화를 얻기 위해 그 갈등이 펼쳐질 수 있도록 기회를 먼저 줘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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