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림으로 세상읽기] 낯선 화가의 풍경화에 마음을 빼앗기다

미국 화가 로버트 줄리앙 언더덩크

가끔 컴퓨터 화면을 넘기다 눈이 번쩍 뜨이는 그림을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횡재한 기분이 듭니다.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알게 되는 작품도 의미 있지만, 낯선 이름의 화가 작품에 마음을 빼앗겨 알게 되는 것도 소중한 경험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으신가요?

생전에 ‘텍사스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라는 말을 들었던 미국 화가 로버트 줄리앙 언더덩크(Robert Julian Onderdonk / 1882~1922)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푸른색을 소개합니다.

텍사스 샌 안토니오에 있는 블루 보넷 들판의 이른 아침 Blue Bonnet Field, Early Morning, San Antonio Texas 1914 oil on canvas 77.5cm x 101.6cm ⓒ개인소장

아직 새벽 안개가 다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 얕은 동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자 놀라운 풍경이 열렸습니다. 텍사스 주를 상징하는 꽃, ‘블루 보넷’들이 빼곡하게 피어있는 들판을 만난 것이지요. 적당한 키로 모여 있는 블루 보넷 무리는 동산 전체를 덮고 그 너머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황야와 카우보이로만 기억되는 텍사스에 이런 숨겨진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잠시 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더덩크에게 처음으로 미술을 가르쳐 준 사람은 화가인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텍사스 화가들의 학장’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역 미술계에서 주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언더덩크의 첫 작품은 저녁 식사용으로 준비한 쇠고기의 포장지에 스케치한 것이었는데, 그의 집안에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설이라고 합니다. 이후 여러 미술 학교를 거쳐 미국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윌리엄 체이서가 주관하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언더덩크는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알게 됩니다.

텍사스의 블루 보넷 Bluebonnets in Texas 1915 onc 108.3x138.8 ⓒLyndon Baines Johnson Library and Museum

언덕 위에 오르자 아득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방금 소나기라도 훑고 지나갔는지 구름은 낮게 흐르고 있고 바로 앞 비탈에는 블루 보넷이 눈이 시리게 푸른색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블루 보넷이 피어있기에 산비탈을 타고 흘러내린 푸른빛이 들판을 지나 건너편 산까지, 보이는 모든 것을 한 가지 색으로 물들인 것일까요? 이곳에 한동안 머문다면 몸도 푸르게 젖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최고의 화가는 언제나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언더덩크는 1909년 뉴욕 라이스 갤러리에서 작은 개인전을 열고 난 후, 그해 늦가을 아내와 어린 딸 그리고 아내의 뱃속 아이와 함께 샌 안토니오로 귀향합니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가 담고 싶어 했던 주제들을 발견하고 작은 크기의 작품들을 끝없이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11년, 블루 보넷이 가득한 언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가 발견한 언덕에는 블루 보넷과 야생화가 지천이었지요. 이 풍경들이 그림에 담겼고 언더덩크는 텍사스의 숨은 비경을 미국 전역에 알린 화가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샌 안토니오 근처 Near San Antonio c.1918 oil on canvas 78.1cm x 104.1cm ⓒSan Antonio Museum of Art

이 작품은 앞서 두 작품과는 달리 맑은 오후에 그려진 것처럼 보입니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블루 보넷을 그림에 담은 언더덩크의 작품을 보면 낟가리 연작과 수련 연작 등을 남긴 모네가 떠오릅니다.

1922년, 가장 바쁘고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던 언더덩크는 갑자기 장폐색으로 쓰러집니다. 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졌지만,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겨우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에 완성한 작품이 두 점 있었는데, 뉴욕에 있는 내셔널 디자인 아카데미에 전시할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최측은 생존 작가들의 작품만 전시한다는 원칙이 있어서 처음에는 작품 수령을 거부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 전에 완성된 작품이라는 점을 존중해서 두 점의 작품은 보라 빛 리본을 달고 전시회에 걸리게 됩니다.

올 가을은 우리에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요? 한국판 ‘블루 보넷 들판’ 같은 풍경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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