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3만여명 모인 ‘기후정의행진’, 아이들은 ‘우리 일’, 60대는 ‘부채감’ 말했다

전국 각지·각계각층 시민 참여…광화문 대로서 일제히 드러눕는 ‘다이-인’ 진풍경 벌어져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후위기 경고 피켓을 들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24일 오후 3시, 서울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햇살은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포근했고, 그늘은 시원했다. 얼마 전 이례적인 홍수와 태풍을 겪은 터라 화창한 날씨가 더욱 반가웠다. ‘이런 날씨를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 수만 명이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 드러누웠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기후정의’를 외쳤다. 걱정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날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가 주최한 ‘9.24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현장에는 3만 5천여명(주최측 추산)이 함께했다. 당초 예상한 참여 인원은 2만명이었으나, 실제는 이를 크게 웃돌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열린 기후위기 관련 행사 중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번 행사는 기후위기 대응의 변곡점으로 평가된다. 시민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서 나서겠다고 선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에 맡길 수만은 없다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이날 행사에서 채택한 선언문에서는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바로 기후위기의 최일선 당사자들”이며, “불평등하고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이 체제 아래서 이대로 살 수 없고, 이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또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해 결집할 것”이라며, 향후 “불평등한 체제를 끝장내기 위해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세 가지 요구를 내놨다.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 ▲모든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등이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 면면을 보면, 기후위기에는 경계가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 사회적 약자로서 가장 먼저 기후위기 피해를 받는 장애인과 빈민도 함께했다. 배제와 불평등을 겪는 성소수자도 목소리를 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가 ‘기후위기 최전선 당사자’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본행사의 문을 열었다. 이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원자력과 석탄 화력 발전소로 삶의 터전을 위협당하는 주민들도 에너지 전환 필요성을 호소했다.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를 마친 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국제기후정의포럼에 참석한 해외노조 참석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선생님 따라 모인 초등학생들 “태풍 피해, 이제 우리 일 될 것”
한 돌 아기 업은 30대 엄마 “생명이 이윤에 밀리는 사회는 공포”

집회 이후 행진이 이어졌다. 시민들 손에는 재활용 박스로 만든 피켓이 들려있었다. 이날 행사장 인근에 설치된 부스에선 참가자들이 직접 피켓을 만드는 등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피켓에는 ‘자본에 우리 미래 못 맡긴다’, ‘기후불평등 해소하라’ 등 문구가 적혀있었다. ‘기후위기 막는 재생에너지 확대하라’, ‘태양과 바람의 나라로’ 등의 문구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행진 대열에서 ‘꺄르르’ 웃으며 뛰어가는 한 무리가 보였다. 서울 은평구 은빛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었다. 담임선생님이 행사 참가 학생을 모집했다고 한다. 지원한 이유를 물으니 “그냥 오고 싶어서”,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고 저마다의 대답을 쏟아냈다. 아이들은 “그냥”이라고 했지만, 실은 기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한 학생은 “날씨가 너무 더워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무섭다”며 “얼마 전 태풍 피해를 보면서 이제 곧 우리 일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는 소감도 전했다.

학생들을 모은 박세영(47) 교사는 “교과 과정에 기후위기 관련 내용이 여러 과목에 흩어져 있는데, 통합해서 교육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행사에 참여할 아이들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4·19 혁명 등을 배우면서 아이들이 학생운동의 중요성을 느끼기도 했고, 이번에 많이들 같이 가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박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와 보니 너무 좋다”고 말할 때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는 “교실 수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특정 개인이 자기 주장을 얘기하는 거 같지만, 사실은 모두가 한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발전소 피해당사자 발언이 크게 다가왔을 것 같다. 제가 백날 얘기해 봐야 뭐...”라며 웃었다. 그는 앞으로도 기후정의 현장 학습을 늘릴 계획이라면서 “이제는 아이들끼리 얘기하면서 관심도 커지고 지원자도 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에서 참석한 어린이가 기후위기 경고 피켓을 들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은빛초등학교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이날 행진에는 많은 미래 세대가 참여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 아빠 어깨에 올라탄 유치원생도 보였다. 유모차를 끌며 행진하는 한 여성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두 아들을 붙잡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한 돌 아기를 등에 업은 손모(35·마포구) 씨는 “주위에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친구들이 많아 평소에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었다”며 “아기랑 같이 오면 좋을 것 같아 직접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 씨는 오랜만에 광화문을 찾았다며 “이곳이 이렇게 여러 정치적 구호로 난무하는 걸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본다. 이번을 계기로 기후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를 정부와 언론이 진지하게 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환경·에너지 정책이 기후정의와 역행하고 있어 위기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대부분 사람은 생명이 이윤에 밀려 뒷전이 되는 사회에 공포를 느낀다”며 “거창하게 공동체를 얘기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행복을 위해, 기후정의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했다.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주제로 ‘9·24기후정의행진’ 행사가 열린 24일 오후, 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 세종로 도로에 누워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기후위기 경고 피켓을 들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부채감’으로 나선 60대 “기성세대, 책임 느껴야”
20대 부산 청년 “자본주의 체제서 약자 고통 심각…체제 전환 필요”


중장년층도 눈에 띄었다. 서울에 사는 정모(62) 씨는 배우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정 씨는 “부채감이 들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크다는 걸 느껴야 한다”며 “내 이익을 위해 미래에서 자원을 땡겨쓰고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엔 정 씨와 비슷한 연배의 시민이 ‘우리세대는 늙어 죽겠지만 아이들은 기후재앙으로 죽게 생겼다’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먼 곳에서 발걸음을 한 이들도 있었다. 부산에서 올라온 박모(25) 씨는 ‘부산기후용사대’라는 단체에서 활동한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청년이 주도하는 지역 운동단체다. 가덕도 신공항 반대 운동과 기후정의행동 관련 교육을 한다. 그는 “청년은 기후위기 시대의 대표적인 약자”라며 “지금의 자본주의체제는 기후위기로 약자, 소외계층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구조다. 정의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선 자본주의, 성장만능주의 체제에서 공공적·민주적·생태적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도발적인 제안 같아 보였지만, 시민들은 이미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민경(41·고양시) 씨는 “성장을 얘기하면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건 모순”이라며 “성장하려면 더 개발하고, 건물과 발전소를 짓고, 많은 자원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이상 성장 위주로 갈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5시 15분, ‘다이-인(die-in)’ 시위가 행사의 백미를 장식했다. 행진 도중 사이렌이 울리자 참가자 수 만명이 광화문 앞 세종대로에 드러눕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너나할 것 없이 자리를 잡고 바닥에 등을 댔다. 휴대전화를 하기도 하고, 옆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조용히 눈을 감은 사람도 있었다. 이 비폭력 시위는 5분간 이어졌다.

다이-인 시위 이후에도 행진은 계속됐다. 시민들은 광화문에서 우측으로 틀어 안국역·종각역·을지로입구역을 지나 서울시청 인근 집회 장소로 복귀했다. 이후에는 타악기 퍼포먼스와 밴드 공연 등 문화제가 진행됐다. 시민들은 주말 서울 도심에서 각자의 방식과 목소리로 기후위기를 실감하고 함께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내보였다. 이날 자리는 행동하는 한국 시민들의 ‘또 하나의 시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924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24일 서울시청 인근 세종대로에서 화석 연료와 생명 파괴 체제 종식을 촉구하며 행진하던 중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924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24일 서울시청 인근 세종대로에서 화석 연료와 생명 파괴 체제 종식을 촉구하며 행진하던 중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행진을 하다가 정부서울청사 앞 도로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도로 위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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