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 해외순방 뒤 첫 출근길에서 대국민 사과는커녕 “사실과 다른 보도”라며 관련 보도에 대한 “진상규명”까지 언급했다. 비속어 발언과 48초 정상회담, 굴욕적 한일외교 등으로 외교참사 논란을 빚은 터라 최소한 유감표명이라도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통령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였다. 처음에는 대통령실이 나서서 ‘보도하지 말아달라’며 문제를 감추려했고, 문제가 불거지자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고 ‘미 의회’가 아니라 ‘우리 국회’라며 거짓해명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보도한 매체들에게 겁박을 하고 있다. 적반하장이란 말도 부족하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내용을 종합하면 언론사의 잘못된 보도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한미동맹을 훼손하여 국민을 위험에 빠트렸다는 것이다. 비속어 발언 관련 보도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황당한 논리를 펼치면서 진상규명을 주문한 것이다. 실제로 같은 날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이 ‘MBC가 관련영상에 왜곡된 자막을 달았다’며 박성제 사장, 편집자, 해당 기자 모두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혐의로 고발했다. 분위기만 보면 당장이라도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들고 MBC 사옥에 쳐들어갈 기세다. 고발당한 언론사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들에게도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대통령실과 사전협의된 공동취재단, 이른바 풀(pool)기자단의 취재영상이 각 언론사에 공유된 일을 두고 MBC를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도 악랄하다. 풀기자단이 취재 결과를 어떻게 공동으로 운영하는지 충분히 알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거꾸로 MBC를 정권의 적으로 규정하고 좌표를 찍어 공격한 것이다. 평소 보도태도에 대해 불만을 품고 ‘손 좀 봐줘야겠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정잡배 같은 짓을 정부당국이 하고 있다.
이 사건은 무능함과 굴욕적 태도에 대통령의 말실수가 더해진 일이다. 야당이 주장하지 않더라도 외교안보라인 전체에 대해 책임을 물을 당사자는 대통령이고, 본인 외에는 해명할 방법이 없는 수준 낮은 말실수는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해명도 않고, 책임도 안 지고 오히려 보도를 통해 이미 온국민이 전체 맥락을 파악한 사실을 왜곡보도로 규정하고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런 오만하고 몰상식한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본 적이 없다. 이명박, 박근혜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