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강남역·신당역 살인사건 이후 여전히 남은 과제

오는 29일 신당역 살인 사건 피의자 전주환이 숨진 피해자에 대한 불법촬영 및 스토킹 혐의로 1심 선고를 받는다. 피해자는 3년 넘게 피해자를 스토킹하며 괴롭혀온 전씨를 두 차례나 고소하며 엄벌을 촉구했지만, 결국 1심 선고 하루 전 보복살인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좀 더 빨리 구속시켰더라면’, ‘피해자 보호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더라면’, ‘관련법 개정이 진작에 됐더라면’... 여성이 살해될 때마다 반복되는 뒤늦은 한탄이 또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사건 이후 정부와 정치권은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 등 여러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쉽고 미흡한 대책으로 남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전의 스토킹 살인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우리 사회의 안일한 시스템이 부른 예견된 참사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전씨는 음란물 유포와 같은 성범죄 전력이 있음에도 입사 결격사유 조회를 무사통과했다. 두 사람의 근무지였던 서울교통공사는 피해자의 고소가 이뤄진 후에도 전씨의 범죄경력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직위해제가 된 전씨에 대한 내부망 접속 차단 조치를 하지 않아 피해여성의 동선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사건이후에는 분향소에 피해자 실명을 드러내 2차 피해의 우려를 나았고, ‘여성당직 축소’ 라는 황당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불필요한 논쟁까지 일으켰다. 공사 사장은 피해자가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나서야 사과를 표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은 서울교통공사가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을 다룰 책임있는 자세는 물론이고, 기본적 성인지 감수성조차 전무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년간 350차례 스토킹 메시지 전송, 불법촬영 및 촬영물을 이용한 협박, 고소 합의 종용까지, 전씨의 죄질만 보더라도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위험성 체크리스트 3단계 중 가장 낮은 ‘위험성 없음 또는 낮음’이라 판단했고, 피해여성에 대한 신변보호 요청도 한 달 만에 종료시켰다.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가해자 심리가 증폭되고 보복범죄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것임에도 정작 수사당국은 이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었던 것이다.

입법초기부터 우려했던 스토킹처벌법에 대한 개정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반의사불벌 조항 폐지뿐 아니라 기소·체포를 의무화하여 수사당국의 재량을 축소하는 방안, 협소한 스토킹 범죄의 개념을 확대하여 더 심각한 범죄로 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방안, 세 모녀 살인사건에서 보여주듯 피해자를 당사자에 국한하지 말고 가족과 동료, 주변지인으로 확대해 보호를 강화하는 방안, 보복범죄 예방 차원으로 구속수사를 강화하고, 피해자보호 및 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등 단순히 한두개 조항을 빼고 넣는 수준이 아니라 관련법들을 총체적으로 손 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과 제도의 개선을 책임져야 할 정치권의 그릇된 인식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좋아하는데 안 받아 줘서”,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식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발언은 매우 부적절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권의 의식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어 참담한 심정까지 들게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우리가 얻은 교훈은 여성의 죽음을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위계구조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가 신당역 살인사건이 남긴 수많은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남역의 교훈부터 바로 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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