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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아름다움을 향해 집요한 허클베리 핀의 새 음반

모던 록 밴드 허클베리핀 정규 7집 [The Light Of Rain]

모던 록 밴드 허클베리 핀.왼쪽부터 멤버 성장규, 이소영, 리더 이기용 ⓒ샤레이블
 

오래 활동 중인 뮤지션의 새 음반을 들으면 어떤 점이 그대로이고, 어떤 부분이 달라졌는지 대조해보게 된다. 모던록 밴드 허클베리 핀의 정규 7집 [The Light Of Rain]도 마찬가지다. 이기용과 이소영이 주도해왔고 기타리스트 성장규가 가세한 허클베리 핀은, 보컬이 그대로이고 곡을 쓰는 멤버도 동일하다는 사실 때문에 예전과 별다르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게 될 지 모른다.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최근 젊은 밴드들만큼 트렌디하지 않을 거라고 미리 낙인찍어버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것이 오래된 밴드가 감당해야 할 숙명 같은 서러움일까.

하지만 10곡의 노래를 담은 새 음반을 한 번만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이 음반은 우리가 알고 있던 허클베리 핀의 연속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허클베리 핀과의 단절이기도 하다. 영롱하거나 음울하고 서정적이며 리드미컬한 기타·베이스 기타 리프를 제시하며 곡을 시작하는 방식이라던가, 멜로디가 이어지는 흐름을 들으면 역시 허클베리 핀이구나 싶지만,  보컬 이소영의 목소리부터 지난 음반에 비해 훨씬 허허롭다. 거칠게 폭발시키기보다 부드럽게 감싸는 보컬의 질감은 소리를 대하는 자세로서만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태도의 성숙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이번 음반은 한 인간의 내적 고뇌와 절망, 분노와 상실만 노래하지 않는다. “먼지를 털듯이 내 과거를 버렸어 워- 내 안의 두려움도”(‘Tempest’)라는 노랫말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혼자인 밤 네가 어떨지 난 자꾸만 걱정됐어”(‘눈’), “네 곁에 서 있을게 / 혼자라는 외로움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눈’), “지친 어깨 감싸던 너의 두 손에 / 오랜 나의 슬픔도 사라져갔어”(‘Sunlight’), “너는 아직 오지 않고 난 너를 기다렸어”(‘너를 떠올린 건 항상 밤이었다’) 같은 노랫말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모습은 ‘너’보다 많은 다른 대상과의 교감과 배려다. 이처럼 교감하고 배려하는 태도는 이번 음반을 허클베리 핀의 전작과 다르게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 태도는 “우리도 그처럼 수없이 낯선 길에서 / 주저하고 떨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갔어”(‘눈’)처럼 긍정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모던 록 밴드 허클베리 핀 정규 7집 The Light Of Rain ⓒ샤레이블


이번 음반의 ‘비처럼’과 ‘금성’ 두 곡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를 분명하게 노래한 것 역시, 자신에 대한 불화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에 대한 존중과 세계에 대한 발언으로 나아가는 허클베리 핀의 현재와 연결된다. 이전 음반에서도 이들은 현실에 대한 부정과 재창조 의지를 강하게 표현했는데, 이번에도 “우리는 지금 타고 있어 지구는 금성처럼 타고 있어 / 우리는 길을 가고 있어 돌아올 수 없는 길 가고 있어”(‘금성’)라는 노랫말로 백척간두 앞에 놓인 지구생태계의 삶을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특히 위기에 대한 인식은 다른 노래에서 표출한 교감과 배려와 맞물리면서 단순한 고발이 아니라 “우리는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두 다 연결됐어”(‘금성’)라는 연대의식으로 드러나 사유의 깊이를 증거한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비중이 높은 편이고, 댄서블한 곡이 적지 않다는 점도 허클베리 핀 음악이 꾸준히 변해온 흐름과 이어진다. 그런지한 사운드를 발산했던 초기의 허클베리 핀에서 출발해 그루브하고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병행하는 현재의 허클베리 핀은 4집 이후의 허클베리 핀이 계속 진행형임을 확인시킨다.

음반에 담은 허클베리 핀의 태도와 인식을 사운드로 표출할 때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은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적일만큼 집요한 실천이다. 수록곡의 상당수가 비트를 장착하고 있지만, 허클베리 핀의 사운드 미학은 템포와 무관하다. 보컬,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같은 보편적인 편성으로 연주를 구성하면서 허클베리 핀은 속도를 늦추고 사운드의 여백을 만들거나(‘적도 검은 새’), 명징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로 아찔한 여운을 창출하고(‘눈’,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Sunlight’), 아득한 보컬의 공간감을 부각시키기도 한다.(‘Tempest’.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드럼 연주의 크기를 조절해 드라마를 만드는 곡(‘눈’, ‘Tempest’, ‘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과 트럼펫 연주를 더해 상실감을 배가시키는 연출(‘사랑하는 친구들아 안녕’), 리드미컬한 비트에 의지해 전진하는 방식(‘아래로’, ‘금성’)처럼 다채로운 어법은 허클베리 핀이 자신의 어법을 계속 변경하고 확장하면서 아름다움이라는 대지를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밴드임을 분명히 한다. ‘비처럼’ 같은 곡에서는 허클베리 핀의 팝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확인시키기도 한다. 멜로디와 비트마다 배어나는 쓸쓸한 기운과 간절한 열망이라는 상반된 태도는 삶의 불가해한 양면성에 밀도 높게 천착한 허클베리 핀의 예술가 정신을 보여준다.

삶은 자신이 꿈꾸고 이끄는 것이지만, 우리는 곧잘 무너지고 부서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함께 슬퍼하고 고심하고 손을 잡아주는 노래가 있으면 주저앉았을 때 비로소 자신을 만날 수 있고, 너무 오래 외롭지 않을 수 있다. 멀리에서 부는 바람처럼 다시 허클베리 핀의 노래가 왔다. 이렇게 오래도록 곁에 있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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