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총리 탄생하는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즘의 부활인가


이탈리아의 차기 총리 조르자 멜로니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25일(현지시간) 실시된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2012년에 창당한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이 주축이 된 우파 연합이 상원과 하원에서 모두 과반을 확보했다. 우파연합은 44%를 득표해 하원 400석 가운데 235석, 상원 200석 가운데 112석을 차지했다. 중도좌파연합은 26%의 득표율로 하원 80석, 상원 39석을 얻는 데 그쳤다. 민주당(PD)이 19%로 2위에 올랐지만 다른 연합이 크게 부진했다. 독자 행보를 이어간 오성운동(M5S)은 16%를 득표했다. 이로써 파시즘의 발생지 이탈리아에서 100년만에 극우 정당 지도자가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이것은 파시즘의 부활을 의미하는가? 이탈리아형제들과 과거 파시즘은 어떻게 다른가? 포린 폴리시의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인터뷰를 소개한다. 애덤 투즈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호출되는 인물 중 하나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분석한 '붕괴(Crashed)'로 파이낸셜 타임스, 뉴스테이츠먼, LA 타임스 등으로부터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세계 정계와 금융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원문:  Is Italy Seeing the Rise of a New Fascism?

이탈리아의 9월 25일 총선에서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의 직계 후손인 극우 정당이 승리했다. ‘이탈리아형제들’을 이끄는 조르지아 멜로니는 파시스트 상징주의를 수용하고 무솔리니의 리더십을 칭송해 왔다.

정치적인 이념인 파시즘의 경제적 모델은 무엇인가? 20세기의 파시즘이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이탈리아에서 정권을 잡은 현대 파시스트들의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포린폴리시 논설위원인 애덤 투즈와 얘기를 나눠 봤다.

우선 역사를 한번 되짚어 보자. 20세기의 고전적 파시즘에 경제적 모델이라는 것이 있는가? 파시즘이 애초에 일관된 경제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가?


애덤 투즈: 쉽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파시즘은 명확한 정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독일과 이탈리아의 국가사회주의를 하나로 묶으면 안 된다는 학자들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논의상 이것을 하나의 개념, ‘파시즘’으로 묶을 수 있다고 해 보자. 그러면 파시즘만의 특성을 골라낼 수 있다. 그 특성의 대부분은 부정적이다.

파시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그것이 반사회주의인 동시에 반자유주의적이라는 사실이다. 파시즘은 사회민주주의의 국가 개입도 싫어하고 자유주의의 자유 시장도 싫어한다. 그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파시즘의 논리는 간단하다. 자유시장주의 때문에 사회주의가 등장했기 때문에 악의 뿌리인 자유시장주의를 없애지 않으면 사회주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가 강조하는 계급 갈등과 계급 간의 투쟁을 통해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믿지만 파시즘은 계급 간의 협조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모두 노동전선을 구축하고 노동자 계급을 국가 주도의 일원적인 정치로 끌어들일 방법을 모색했다. 양국이 1차 대전을 통해 노동자 계급을 포괄하지 않으면 강력한 국가를 수립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가 비판하듯, 노동자 계급의 포섭은 대자본의 이익에 맞게 일방적으로 이뤄졌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파시즘의 부상을 눈감아주기도 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은 굉장히 일방적인 자본가 계급의 통치 형태 중 하나이다.

사람들이 흔히 하듯 전쟁을 빼고 평화로운 때의 모습만으로 파시즘을 분석하는 것은 잘못됐다. 정복과 제국주의를 봐야 파시즘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군사적인 정복과 전쟁, 그리고 인종적 위계질서를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본질이다. 파시즘은 공개적으로 인종적인 우월성의 논리를 갖추고 대량 학살 등을 통해 이것을 실천한 후기 단계의 백인 우월주의 정권이다.

파시즘의 경제적 현실이 무엇인지를 한 가지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인종적 정복을 위해 전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압도적인 연합 세력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에 파시즘은 패배가 운명인 자살적인 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정치로 봤을 때 파시즘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위기 정권이기 때문에 파시즘이 실현한 경제모델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파시즘의 경제모델을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파시즘의 사회적 기반은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파시즘을 노동자 계급에 기반한 우파 포퓰리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반사회주의를 표명한 파시즘의 적이었던 20세기 공산당들의 사회적 기반도 노동자 계급이었다. 파시즘이 실제로 기반했던 다른 계층이 있었는가?


애덤 투즈: 특히 프랑스의 극우가 1990년대까지 중요한 정치세력이었던 공산당에게 돌아갈 수 있는 표를 잠식하면서 우리가 ‘극우’라고 하면 머릿속에 그리게 된 그림이 뒤에 남겨진 사람들, 정치에서 소외된 좌절한 탈산업화 시대의 노동 계급이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고전적인 파시즘은 반사회주의, 반공산주의 운동이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대중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그랬다.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전투 파쇼’를 결성하면서 1919년 탄생해 1922년에 쿠데타로 집권한 초기 이탈리아 파시즘의 사회적 기반은 쁘띠 부르주아지였다. 파시스트 분대에서 노동자들을 폭행하고 노조 사무실을 부수는 등 노동자 계급과 투쟁한 것은 지주와 자본가 계급이 아니라 그들이 동원한 소상공인, 농부, 농장 관리인 등이었다.

그런데 독일 나치당은 극우의 반란 시도였던 1923년의 뮌헨 폭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1933년 선거로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그 전에 기반을 넓혀야 했다. 당시 나치당은 여전히 중하류층과 중산층에게 기울어져 있었지만 노동자 계급도 포섭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현재의 이탈리아 극우도 입장이 비슷하다. 이탈리아 유권자 자료를 보면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의 기반이 놀라울 정도로 넓다. 이탈리아형제들이 급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하나의 계급에 집중하지 않고 사회 모든 계층에서 약 20~25%를 득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형제들은 중도에서 오른쪽으로 있는 모든 사람을 타깃으로 삼는 것 같다.

이탈리아형제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무솔리니와 직접 연결된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볼 때 여전히 남아 있는 파시즘의 잔재가 있는가?


애덤 투즈: 이탈리아형제들은 자기가 파시즘의 후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밀리에 카메라가 없을 때, 그리고 가끔 카메라가 있을 때에도 무솔리니에게 건배를 한다. 고위 당직자들은 무솔리니의 로마 점령 기념식에 참석한다. 멜로니도 젊어서 공개적으로 무솔리니를 변명했고, 지금도 무솔리니의 유산을 지지한다.

이탈리아에서 이런 모습은 극우에게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총리였던 2003년 당시 영국의 보수 잡지 스펙테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무솔리니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으며 무솔리니의 수용소는 정치인들이 잠시 쉬는 휴양지였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념은 여러 면에서 본질적으로 보수당의 이념과 같으며 미국의 공화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한 발자국 더 나간다. 그들은 자기 계보가 2차 대전에서 이탈리아를 전쟁으로 이끈 독재자로 직접 거슬러 올라간다고 믿으며 무솔리니와 자기를 적극적으로 연결시킨다.

이런 현상은 다른 국가의 극우세력에게서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헝가리의 극우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주요 이슈에서 굉장히 신중하게 나치 협력자였던 헝가리 지도자 호르티 미클로시와 거리를 두며 헝가리 우파가 홀로코스트에 관여한 것을 비난한다. 마찬가지로 현재 폴란드의 민족주의 세력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기승을 부린 폴란드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다. 자기가 과거 파시즘 세력의 후예임을 강조하는 것은 이탈리아 극우뿐이다.

파시즘의 가장 일관된 정치적 노선 중 하나가 반의회주의이다. 이탈리아형제들도 직선제에 의한 대통령제 개헌을 주장한다. 이것이 지니는 경제적 함의가 있는가? 예를 들어 ‘의회는 경제정책의 방해물이다’ 식의 신조 말이다.


애덤 투즈: 이탈리아형제들이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꽤 흥미롭다. 그 중 하나는 대통령제가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국민의 참여가 상대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직선제로 대통령을 선출하면 의회가 뒷방 거래로 뽑은 대통령이 의회 입법 과정의 중재자 역할이나 할 때보다 국민의 의사가 정치과정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아형제들도 의회제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통령중심제 국가가 많지 않은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통령제의 가장 흔한 유형은 직접 선출된 대통령이 있고, 역시 직접 선출된 의원들로 구성된 상원과 하원이 있다. 그것이 더 수월한 의사결정과 단순 명료한 통치로 이어질지는 대통령과 의회의 협력 가능성에 달려 있다. 협력이 잘 이뤄지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 프랑스 등에서 많이 봤듯, 대통령과 의회가 완전히 대립할 수 있다.

결단력 있는 경제정책으로 변화를 가져오거나 인기 없는 강경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목표라면 한 선거구에서 다수표를 얻은 한 명만 당선되는 단순다수제의 영국식 의원내각제가 가장 적합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거대 정당에게 유리해 양당제가 고착되고, 정권을 장악한 정당이 의회 과반을 차지해 국정이 안정적인 운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경우 서로 중첩되는 여러 유형의 경제 문제가 많아서 헌법으로 결정되는 정부 형태 중 어떤 것이 나은 지 분명하지 않다. 동시에 이탈리아는 막대한 부채가 있다. 국가 부채를 꼭 없애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유럽연합(EU)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저성장으로 표출되는 뿌리 깊은 구조적인 문제가 많아 장기적인 경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정당 간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승자독식이 아닌 다른 정치 유형이 적합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탈리아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기는 어렵다.

20세기 파시즘, 최소한 20세기 초기 파시즘은 청년층이 주도했다. 그런데 이탈리아는 지금 압도적으로 고령화 사회다. 고령화 사회에서도 혁명적 행동주의를 지향하고 명백히 폭력적인 파시즘이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덤 투즈: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현대 파시즘과 20세기 파시즘의 핵심적인 차이점이 여기에도 있다. 20세기 파시즘을 규정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매우 구체적인 두려움이었다. 1차 대전 이후 공산당은 매우 강력했고 대규모 파업이 이뤄졌다. 다른 하나는 1차 대전이라는 전면전이다. 군복 입은 나이든 남성들이 전쟁을 이끌 수는 있어도 실제로 싸우는 것은 청년들이다.

이탈리아형제들의 파시즘은 다르다. 이탈리아형제들은 인구 증가 정책을 추앙한다. 청년층의 출산율이 높았던 사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런 정서는 노년층이 아닌 중장년층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정치에 영향을 받은 노년층은 주로 중도좌파의 민주당에게 투표한다. 이탈리아형제들에게 투표하는 것은 주로 사회 현실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35세부터 65세까지의 중장년층이다.

청년층이 이탈리아형제들이 표방하는 젊고 활기찬 이탈리아라는 이미지에 매력을 느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24세 이하의 젊은이들 압도적으로 민주당이나 오성운동을 지지한다.

주변부의 군소정당이었던 이탈리아형제들이 이렇게 부상하게 된 것은 더 좋았던 청년 시절과 과거의 이탈리아에 대한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 덕분이다.

파시즘의 후예라는 계보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형제들은 유럽통합을 지향하는 유럽연합(EU)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래서 드는 의문인데, 범유럽 파시즘와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애덤 투즈: 파시즘이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에 국제연대가 모순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파시즘은 늘 국제연대 측면이 있었다. 1936년에는 이탈리아, 나치 독일, 일본 제국의 반코민테른 협정이 있었고, 유럽 유대인의 대량학살을 추구한 홀로코스트도 독일의 주도로 유럽의 파시스트와 반유대주의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현재의 유럽 극우는 1980년대에 등장했던 뉴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문화권에 대적하기 위해 유럽의 공통된 유산을 강조할 때가 많다. 멜로니는 이탈리아 극우의 대표 인물이었던 마테오 살비니보다 유럽 통합을 놀라울 정도로 훨씬 더 강력하게 지지한다. 이것은 대중이 그녀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이 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런 입장을 취하는 측면도 물론 있다. 이탈리아 유권자의 다수가 유럽 통합을 지지하고, 이탈리아가 유럽연합, 특히 유럽 중앙은행의 지원에 상당히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어떤 정권이 등장하든 유럽연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면 또한 역사적인 전례가 있다. 1920년대의 무솔리니는 1930년대만큼 급진적이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 좌파를 압살하며 국내적으로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였지만 국제적으로는 월가 금융자본가들과 서방 정치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국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20세기 파시즘과 현재의 파시즘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앞으로도 이탈리아 정부가 실용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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