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지학의 세상다양] 체제가 만든 위기, 전환의 기회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존중은커녕 노동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의 논리가 기본값이 된 현실은 매우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 의미대로의 ‘자본주의’의 역사는 긴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불과 15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기후, 환경, 생태 그리고 인간의 행복감이나 건강 또는 최소한 죽지 않고 생존함 등 비용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까닭에 빠른 속도로 지구와 인간을 병들게 하고 있다. 철저하게 이윤 극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분명한 사회적 비용이지만 비용으로 계산되지 않은 자연 착취의 결과 기후위기가 앞당겨졌고 이는 인류가 생존의 위기를 마주하게 만들었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저렴한 노동력을 동원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자본과 결탁한 국가는 ‘기업이 잘돼야 모두가 잘산다’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며 자본가의 요구를 받아들여 제도화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데 적극 동참했다. 이러한 구조는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 시켜줄 때 노동자는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었다.

미국의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가리키는 표지판 ⓒAP

이러한 현실에서 ‘확장실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확장실업률이란 아르바이트, 일용직 등 임시직의 불완전한 고용 상태로 일하며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까지 실업 상태로 간주하는 계산법으로 ‘체감실업률’이라고도 한다.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률과 체감실업률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기도 한다. 이는 비정규직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콜롬비아를 제외하곤 가장 높아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가뭄에 콩 나듯이 일자리가 생겨도 비정규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권’을 이야기 할 때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권리보장(안전, 노동 시간, 임금 등)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주장조차 하지 못하고 놓치고 있는 부분은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다. 2010년도에 상영된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에 박중훈 배우의 대사 중에 “한국 백수들은 참 착해. 프랑스 백수들은 다 부수더만. 한국 백수들은 다 지 잘못인줄 알아”라는 대사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왜 ‘내 일자리를 내놓으라’며 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일까? 우리가 배운 대로라면 자신의 일자리는 자신이 구해야 하는 것 아니었던가.

심지어 이는 시험만능주의와 결탁해, 공정한 시험에서 낙오한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일자리를 갖는 것은 ‘공정한 일’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이는 진짜 문제인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들면서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동하게 만들고 있다. 진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기를 원하는 권력이 원하는 방향이다. 많은 시민들이 진짜 문제를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해결을 요구하기보다는, 문제적인 상황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각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한 ‘덕분에’ 착취에 기반한 사회 구조가 지속된다. 지난 4월 지상파에서 방송된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려주는 <자본주의 학교>만 보더라도 그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아껴 쓰며 저축을 하든 투자를 하든 투기를 하든 알아서 “잘” 살아야 한다.

그런데 2008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신자유주의 시장질서의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 시민들의 점령시위가 일어났다.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전말은 오늘날 한국 부동산 시장과 닮아있다. 정치적 이유로 저금리가 지속되며 부동산 불패신화가 만들어진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대출을 통해 부동산을 매수했지만, 이후 금리가 폭등하고 집값은 떨어졌다. 물론 2008년의 월스트리트의 상황이 한국의 현실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많이 닮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은행은 위험한 대출 파생상품을 무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상환을 받지 못한 은행 역시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 국가와 자본의 무책임한 ‘돈놀이’ 가운데서 피해를 받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애초 착취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많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99%의 가난한 사람, 1%의 부자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99%를 위한 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참고로 이 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대부분은 백인 노동자 계급으로, 99%가 아니라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근본적인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한계도 분명하게 존재했지만 오늘날의 인간과 자연이 소외된 구조에 맞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가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직시하고 시스템의 변화를 요구했던 소중한 사건이었다.

시스템의 실패는 개인의 삶을 위협하지만,
‘노오력’을 게을리한 개인의 책임을 묻는데 익숙한 사회에서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묻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요즘 세계의 경제 흐름이 심상치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이어가면서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새로 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국사회에서도 2020~2021년 사이에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불안감을 가진 실수요자들이 대거 ‘영끌’로 주택을 매수했지만, 집값은 떨어지고 대출금리는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월 상환금액에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자본주의의 분명한 실패가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통받는 시민들은 과연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시스템의 실패는 개인의 삶을 위협하지만, ‘노오력’을 게을리한 개인의 책임을 묻는데 익숙한 사회에서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묻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동시에 자신이 ‘노오력’하면 자본가의 이윤창출과 낙수효과를 통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마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변화의 노력 없이 낙수효과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오랜 시간동안 목격하고 있다. 체제를 흔드는 일은 종교의 언어에서처럼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지며 한국 사회에서는 이것이 여전히 ‘빨갱이’의 일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오랫동안 학습된 사회화의 영향으로 근본적인 체제의 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일로 여겨지고는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신자유주의 질서가 아니라면 공산주의라는 논리 역시 매우 위험한 이분법이다. 우리는 언제나 모든 존재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24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 대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이 행진을 하다가 정부서울청사 앞 도로에서 기후위기를 경고하며 도로 위에 드러눕는 ‘다이-인(die-in)’ 시위를 하고 있다. 2022.09.24 ⓒ민중의소리

우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지구는 자정능력을 잃어가는 극단의 상황에서 여전히 인간과 동물의 생명 그리고 생태, 기후, 환경의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는 ‘틀린 계산법’만 부여잡고 여전히 경쟁과 성장을 외치며 폭주하는 이 세상을 멈출 수 없을까. 2022년은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으로 다시금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떠오르는 시기다. 사회운동학자 진 샤프(Gene Sharp)는 100가지 비폭력 직접행동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 행동의 방법에는 우리가 이미 해본 것들과 해보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들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의 모습을 설계하고, 가치에 맞게 싸움의 방법을 정하며, 잘못된 체제를 전환시키는 싸움에 나서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자. 사람과 동물 그리고 자연을 모두 죽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과 완전히 결별하고 생명중심의 서로 돌봄세상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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