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가보안법 오남용 사라졌다” 법무부 말이 허망한 이유

국가보안법 제2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소원 공개변론이 열린 지난 15일 오후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재동 헌재 심판정에 입장해 변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2.09.15 ⓒ민중의소리

국가보안법이 또다시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올라왔다. 이번이 8번째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보안법 2조와 7조 위헌심판과 관련해 지난 15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선 첫 공개변론이라 주목을 받았다.

이번 위헌심판의 요지는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를 처벌하는 법조항이 위헌이냐는 것이다. 해당 법조항으로 처벌 대상이 된 당사자들과 이를 판결해야 하는 법원들 일부가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에 맞서는 쪽을 대표해서 나온 건 법무부였다. 정부를 대리해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법무부는 공개변론에서 국가보안법이 존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헌법재판소에서 국가보안법 7조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2015년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해당 법조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던 재판관은 9명 중 무려 5명으로, 위헌 결정 기준인 6명에서 단 한 명이 모자랐기 때문에 최종 합헌 결정으로 정리가 된 것일 뿐이었다. 그동안 합헌을 유지했던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이번엔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다보니 법무부는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사정기관에 의해 오남용됐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그것은 과거일 뿐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공개변론에서 피력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져가는 국가보안법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 측은 “국가보안법이 엄격한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어 오남용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며 “최근 국가보안법 기소 사례가 줄어드는 추세인 데다 (기소가 될 경우에는)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는 일도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형벌권이 오히려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남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타당하지 않고 부풀려진 게 있다. 이런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법무부 측은 “(국가보안법은) 오히려 자유통일 수호라는 헌법적 가치를 위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법무부 측의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위헌심판 청구인 측은 “2015년 결정 이후에도 여전히 오남용 사례가 많다”며 “10년 전 동아리 활동을 이유로 기소하고, 노래 제창을 동조 행위로 처벌하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전체적인 과정을 보면 수사기관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엄격한 심사 과정을 거쳤는지 의문이 있고, 오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충분한 지침이 제공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훗날 무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법무부 측이 간과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수사기관은 계속해서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다. 여기서 ‘무자비하다’고 표현한 이유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거나 재심이 청구된 사건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이 기존 입장에서 조금도 물러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어제(27일)의 일이다. 1970년대 간첩으로 몰려 육군 보안사령부에 불법 체포돼 고문을 당하고 허위 자백을 한 이후 사형을 선고받은 고 박기래 씨가 이날 47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7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박 씨는 통일운동을 하다가 2012년 별세했는데, 그의 억울함은 한참 뒤늦게 풀리게 됐다.

그런데 앞서 검찰은 고인의 법정 진술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며 재심에서도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두 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통해 무기징역이라는 중형을 다시 구형하면서도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 격이다. 재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가 법정 진술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을 오남용한 지난 과오를 성찰하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히 확인됐다.

검찰뿐만이 아니다. 대공분야의 길을 걸어온 김순호 행정안전부 초대 경찰국장은 2020년 대법원 재심 판결로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다”라는 결론이 났음에도, “인노회는 이적단체였다”고 강변했다. 심지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말이다. 인노회는 1980년대에 인천과 부천 지역에서 활동한 노동운동 단체였다. 그런데 김 국장은 인노회가 노동운동 단체가 아니라 ‘빨갱이 단체’라는 30년 전 공안정국의 인식을 그대로 내보인 것이었다.

상황이 이런데, ‘우린 옛날과 달라졌어요’라는 법무부의 주장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국가보안법 존속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부터 우선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최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도중 카메라에 잡힌 ‘OOO X팔려’라는 발언이 ‘바이든 X팔려’이냐, ‘날리면 X팔려’이냐, 그것도 아니면 ‘말리면 X팔려’이냐는 논쟁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날리면’(대통령실 해명)이라고 말했는데, 이를 ‘바이든’이라고 보도한 것은 “국기문란”이자 “이적행위”라는 비난까지 보수층에서 나오고 있다. 급기야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과 보수단체는 MBC를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윤 대통령이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한 직후였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사회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 현직 언론인 단체들은 “군사독재시절 이 기사 써라, 저 기사 써라, 군홧발 앞세운 군인들이 언론사 편집국에서나 하던 짓”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안정국이 다시 조성될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왜곡된 보도로 인해 한미동맹이 파괴되면 국가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게 보수진영의 논리다. 공안정국이 조성되면 국가보안법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더욱 힘을 얻게 되기 마련이다. 국가보안법이란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국가보안법이 있는 한 황당한 코미디가 단숨에 다큐멘터리가 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암흑의 사슬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직결된다. 윤 대통령도 이번 유엔(UN) 연설에서 “자유”를 스물 한 번이나 외쳤다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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