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돌봄노동자들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민간주도 돌봄정책 규탄, 돌봄노동자의 저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돌봄노동자 91.7%가 비정규직, 정규직은 8.3%라며 돌봄정책 국가책임강화, 돌봄노동자 임금인상·고용안정을 촉구했다. 2022.09.28. ⓒ민중의소리
돌봄 정책이 민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폐해가 극심해지고 있다. 노동자 처우가 열악해질 뿐 아니라, 서비스 질도 떨어지고 있다. 돌봄 민영화를 내세우는 새 정부는 현실 외면으로 일관한다. 국가의 돌봄 책임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민간 주도 돌봄 정책을 규탄하고, 돌봄 노동자의 저임금·노동조건 개선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주노총 산별조직 돌봄 노동자들이 참석했다.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 노인생활지원사, 사회서비스원 노동자 등이다.
돌봄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다. 이날 민주노총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507명 가운데 계약직은 92%에 달했다. 정규직은 8% 수준에 그쳤다. 가장 힘든 점으로는 ‘낮은 임금’(74.4%)과 ‘고용불안’(61.2%)을 꼽았다.
수십년간 진행된 민간 중심 돌봄 체계가 돌봄 노동자 처우를 악화시키는 가운데, 돌봄 민영화 추진을 가속화하는 정부를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노동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돌봄 노동자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은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최저시급과 계약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돌봄 정책이 바닥을 향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음에도, 윤석열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민간 기업에 주도권을 넘기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창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서울지부 재가요양분과장은 “언제 돌봄을 국가가 책임진 적 있는가. 지금까지 요양은 99%가 민간이 해왔다”며 “이젠 그마저도 재벌 돈벌이의 먹잇감으로 팔아넘긴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봄 민영화는 노동자 처우뿐 아니라 서비스 질을 저해하고 사각지대를 양산한다. 전종덕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민간 중심의 현 돌봄 체계는 한계와 공백을 드러냈다”며 “윤 정부 돌봄 민영화는 돌봄의 돈벌이를 심화시키고, 그 피해를 국민에 전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가부·서울시의 ‘엉뚱한’ 아이 돌봄 대책
정부와 지자체는 돌봄 민영화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7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아이돌보미 국가자격제도 도입 계획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공공과 민간 공통의 국가자격제도를 2024년 도입해, 아이돌보미를 기존 3만명에서 17만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여가부 계획은 정부의 돌봄 민영화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이현숙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서울 아이돌봄지부장은 “여가부는 국가 아이돌보미도 낮은 처우와 부실한 근무환경으로 인해 제대로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17만명의 아이돌보미를 감독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서울시도 돌봄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을 건의했다. 오 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오 시장 대책에 대해 “엉뚱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지부장은 이용자 고충을 인정하면서도 “그래서 아이돌봄 사업 비용에 대한 지원과 시간 확대를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 책임을 강화하라는 국민 요구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지부장은 “핵심은 민간을 확대·육성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 지원 사업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며 “이용자 요구에 따라 무상돌봄화를 추진하고 아이돌보미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려면 국가가 직접 운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2022.07.25. ⓒ뉴시스
‘노인 돌봄 공공성 강화’ 인권위 권고 무시한 복지부
복지부는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도 무시하고 있다. 인권위는 전체 장기요양기관 중 국공립기관 목표 비율을 설정하고 이행계획을 세우라는 권고를 복지부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 4월 권고 사항을 복지부에 통보한 바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역별 수요를 고려해 다양한 유형의 기관이 설치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민간 시설 품질을 제고할 계획이라고 회신했다.
또한 복지부는 요양보호사에게 합리적 임금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표준임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라는 권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지부의 권고 불수용 결정은 요양원이 민간 위탁 형식으로 운영되는 데 따른 폐해를 외면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미숙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조 경기지부 요양서비스분과장은 “시립요양원에서 일하는데, 지금까지 사장이 누군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5년에 한 번씩 위탁기관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시립 명성 지키랴, 재수탁받으랴, 그 답을 요양보호사에게서 쥐어짜고 있다”고 말했다. 13년차 요양보호사인 강 분과장은 성남노인보건센터 소속이다.
그는 “이익을 남기고자 어르신 먹거리를 부실하게 공급하고, 요양보호사에게 공짜노동과 임금착취가 죄인 줄조차 모르고 자행하고 있다”며 “더 나쁜 것은 알면서도 벌하지 않고 외면하는 지자체 행정기관, 더욱더 나쁜 곳은 요양 돌봄에 관심도 갖지 않는 바로 현 정부”라고 비판했다.
각종 수당이 원장 재량에 맡겨지면서 요양보호사에게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강 분화장은 전했다. 그는 “요양기관은 요양보호사가 받아야 할 코로나 한시 지원금, 감염 예방수당, 코호트수당 등을 생색내기 회식으로 몇 푼 쥐여주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대체 인력이 없어 연차도 쓰지 못한다. 서비스 대상자를 두고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다. 동료들의 업무가 가중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강 분과장은 “돌봄 노동자가 행복해야 돌봄을 받는 사람도 행복하다”고 강조하며 처우 개선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돌봄노동자들이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민간주도 돌봄정책 규탄, 돌봄노동자의 저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돌봄노동자 91.7%가 비정규직, 정규직은 8.3%라며 돌봄정책 국가책임강화, 돌봄노동자 임금인상·고용안정을 촉구했다. 2022.09.28. ⓒ민중의소리
노인 가정에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요양보호사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재가요양보호사는 보통 1~2명의 노인을 돌본다. 한 번 방문할 때마다 4시간 정도 머무르면서, 식사준비·세면·청소·세탁 등 일상생활을 돕는다.
최창준 분과장은 “어르신이 돌아가시거나 병원·요양원에 들어가시면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센터 측은 ‘담당 어르신이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핑계를 대며 해고 통보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11개월이 되면 자르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고 하소연했다.
재가요양보호사에 일괄 적용하는 수가표가 있기는 하나, 실제 임금은 센터마다 천차만별이다. 가령 장기근속수당을 지급할 때 센터 측이 부담하는 4대 보험료와 퇴직적립금을 공제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최 분과장은 “민간 위탁기관에 수가라는 이름으로 지급하면서 거기에 다 포함되어 있으니 알아서 하라고 맡겨 버린 탓”이라고 지적했다.
돌봄 노동자들은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한 요구사항으로 돌봄 시설을 직영화·정규직화할 것과 더불어 노-정 간 협의 구조를 마련할 것을 제시했다.
박현실 정보경제서비스연맹 다같이유니온 사무처장은 “최저임금 인생일 수밖에 없는 돌봄 노동자들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노동조합 간 직접교섭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의 복지국가 건설의 바탕에는 노정교섭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요구사항에는 기본 노동시간 보장과 인력 확충, 돌봄 예산 확충 등도 담겼다.
한편,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12일 돌봄 노동자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통령 집무실과 복지부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국가의 돌봄 책임 법제화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