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달러화초강세로 세계적 경기침체 우려가 뚜렷해지고 있다.
26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금융정보업체 네드데이비스 리서치는 경기후퇴 확률이 98%를 넘어섰다고 추산했다. 하루 뒤인 27일에는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이 "글로벌 경기침체가 다가오고 있으며 우리는 경제성장을 회복할 방안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고 경고했고, 28일엔 애플이 스마트폰의 수요 부진을 대비해 증산계획을 철회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미국 통화당국은 인플레이션을 명분으로 당분간 금리인상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환율 문제로 세계 제조업 경기가 위축되고 이에 따라 무역이 줄어들면서 다시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늘어나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 사실상 미국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결과가 빚어지는 셈이다.
이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하다. 환율, 물가, 금리 모두 우리 정부나 금융당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28일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시장에 5조원의 자금을 긴급 투입하고 증권시장 안정펀드 재가동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급격한 환율 변동에 금융 당국이 구두개입을 넘어 스무딩 오퍼레이션에 나선 정황도 관측된다. 일단 환율과 물가, 금융시장 안정에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도 "지금 정책은 무엇보다도 물가 안정"이라고 목표를 분명히 했다.
이런 정책기조라면 경기 침체가 뒤따를 것은 분명하다. 억누른 소비와 높아진 이자는 모두 경기에 악영향을 끼친다. 반도체나 자동차 등 주력수출 역시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남는 건 재정 수단이다. 추 부총리의 말처럼 "장마가 오는데 장마를 안 오게 할 방법이 우리 힘으로는 없다"면 "부실한 곳에서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국내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응"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긴축재정' 기조를 내세워 내년 예산을 제출했다.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을 깎아주고,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쓸 곳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을 편성하던 시기와 지금의 여건은 이미 다르다. 재정건전화나 작은 정부 같은 도그마에 매달릴 여유도 없다. 마침 야당은 적극적인 재정정책에 우호적이다. 그렇다면 국회와의 협의를 통해 재정운용 방향을 바꿔야 한다. "장마가 오는데"도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는 건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