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성철 칼럼] 주택 소유 늘리는 것보다 시급한 주거권 보장

불평등이 재난, 주거권 보장은 지금 당장! 10.01 주거권 대행진



UN의 경고 “격차에 주목하라”

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은 UN이 정한 ‘세계 주거의 날(World Habitat Day)’ 로, 2022년엔 10월 3일이다. 이날은 지난 1986년 ‘인간에겐 주거가 기본적 권리’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 주거의 권리는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주거권’이라는 말은 어색하지 않게 쓰이지만, 주거가 권리라는 사실을 체감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실에서 주거는 권리보다 상품으로 기능한다. 시세 차익을 위해서라면 거액의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고들 한다. 누군가 ‘직장에서 가깝고 생활하기 편하고 안전하고 쾌적해서’ 집을 샀는데, 그 지역이 가격 상승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 주변인으로부터 ‘거기 집을 왜 샀어?’란 질문을 받게 될 지 모른다

사실 많은 사람들에겐 이런 가정은 다른 세계의 일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감당할 수 없어 전세나 월세에 살지만 그마저도 부담이 크다. 임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오르는 집세를 감당하기 위해 빚을 내거나, 가진 돈에 맞춰 일터와 기존 생활권에서 먼 공간에 살게 되는 게 실상이다. 그리고도 다음 번 계약 땐 얼마나 집값이 오를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된다.

주택 아파트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약 104%(2018년 기준)다. 수치대로라면 한국에 사는 모든 이들은 더이상 주택이 공급되지 않아도 집을 구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민의 자가보유율은 60%대다. 최근 수십년 간 공급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는 새로 공급된 민간 주택이 집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집 있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다주택자의 소유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옥탑방이나 쪽방, 고시원 같이 집 답지 않은 공간, 또는 시설이나 거리와 같이 집이 아닌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주거 불평등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일까. UN은 올해 세계주거의 날 케치프레이즈를 “Mind the Gap”으로 잡고, “격차에 주목하자”고 촉구했다.

한국의 주거 불평등 상태는 ‘총체적 난국’
 
‘주거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모두가 집을 소유하자는 뜻이 아니다.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라는 것은, 집을 소유하든 소유하지 않든 누구나 부담가능한 가격으로 원하는 기간 동안 안전한 집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소유 중심 주택정책과 대책없는 개발정책이 집값은 물론 전월세 가격까지 부담 불가능한 수준으로 상승시켰다. 현재와 같은 민간주도의 주택공급과 소유 중심의 주거정책이 주거권을 보장하기는 커녕,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겠다며 밀어 붙인 개발정책은 그 지역에 살던 세입자뿐만 아니라 개발에 필요한 추가금을 낼 여력이 없는 가옥주들까지 대책없이 쫓아낸다. 그리곤 그 자리에 화려하고 넓고 비싼 아파트를 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동네가 개발되면 그 공간에 오래 살았던 이들이 다시 거주할 수 있게 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개발지역 원주민 정착률은 20% 내외에 불과하다.

지난 2018년 11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대책없는 개발, 폭력적인 강제 철거와 퇴거 위협 속에 30대 청년 박준경이 세상을 등졌다. 그가 거주한 집은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의 저렴한 주택이었다. 몇 년이 지나 개발을 마무리 하고 있는 시점에서 박준경이 살던 동네의 들어선 아파트는 전세가만 수억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도시 주택의 가격을 급상승시키는 개발정책은 그로 인해 쫓겨난 이들이 기존 생활권에서 멀고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청년·세입자·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2022 지방선거주거권네트워크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재건축 및 재개발 공공성 강화와 세입자 보호 강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주거복지 확대 등 4대 주거정책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2.05.12 ⓒ민중의소리


설령 간신히 원하는 공간에 자리를 잡게 되더라도, 세입자의 지위는 불안정하다. 지난 2020년 임대차보호법이 30년 만에 개정됐고, 이를 통해 계약갱신청구권을 1회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은 4년에 불과하다. 전월세 가격 등락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져 있다.

서민들이 부담가능하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장기공공임대주택의 재고율은 6%로 매우 낮다. 좀처럼 확대되지도 않고 있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발표되지만, 보통 장기임대주택이 아닌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비싸고 임대 기간이 짧은 행복주택이나 전세임대주택 등이 주를 이룬다. 전세임대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반지하와 같이 열악한 환경의 집이많다.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한국 사회의 주거 불평등은 피부로 느껴지는 것 만큼이나 총체적 난국이다.

기후 재난까지 더해져, ‘엎친 데 덮친 격’

수년 전부터 지구의 평균온도가 상승하고 곳곳에서 폭우, 지진, 산불 등 예측 불가능한 기후 재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재난은 애초에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대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 기업 이윤을 최우선에 둔 정책결정자들이 탄생시킨 결과다. 그렇지만 재난의 결과는 더욱 불평등하게 작용했다. 기존의 사회 불평등을 경로 삼아, 일상이 재난같았던 이들에게 재앙으로 몰아닥쳤다.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반빈곤운동단체활동가들과 당사자들이 불평등한 기후재난을 끝내자는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2022.09.24 ⓒ빈곤사회연대

지난 8월 이례적인 폭우로 장애인 거주시설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는데, 119 구조대가 출동했는데도 구급차로 이동할 수 없어 탑차에 침대째로 사람을 실어 날랐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 즈음 서울 신림동과 상도동에선 반지하에 살던 4명이 폭우로 급작스럽게 차오르는 물을 피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후 서울시는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지상에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현재의 주거 불평등 구조의 원인을 대책이랍시고 내놓은 것이다. 이에 더해 정부는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5조 6천억 삭감한 예산안을 들고 나왔다. 또 건설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동산 시장주의자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차기 사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주거불평등의 그림자가 걷히기는 커녕, 더욱 짙어져가는 모양새다.

극심한 주거 불평등, 10월 1일 모여서 선언하자
“불평등이 재난이다, 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


지난 8월 같은 엄청난 폭우가 아니어도, 열악한 주거공간에서의 비극은 반복되어 왔다. 여름철 반지하에 발생하는 침수 피해, 겨울철 쪽방과 고시원에 발생하는 화재참사는 반복되어 온 위협이며 비극이다. 반지하, 옥탑, 쪽방, 고시원, 시설과 같은 공간에서의 거주를 처음부터 최우선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 크기와 입지 그리고 가격 같은 조건에 맞춰가다보니 결국 도달한 결론일 뿐이다.

그러니 날로 높아지는 도시 공간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으로 내몰리는 일은 한국 사회 구조가 발생시킨 문제다. 그 책임도 우리 사회에 있다. 누군가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사회는 결코 살만하거나 살고 싶은 세상이라고 할 수 없다.

2022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단체들은 ‘불평등에 잠기는 주거권’을 되찾기 위해 오는 10월 1일 주거권 대행진을 연다. ⓒ1001 주거권 행진


매년 세계 주거의 날 한국에서도 주거권운동단체와 사회운동단체들이 모여 서민들이 마주한 주거권 박탈 상황과 요구를 확인하고 주거권 실현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행사의 주제는 “불평등이 재난이다, 주거권 보장 지금당장!”이다. 다 같이 모여 서울 도심에서 주거권 대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우리는 물을 것이다. 집값은 왜 감당할 수 없이 오르는가? 왜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 불안정하게 살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쫓겨나고 밀려날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함께 묻고 목소리를 내면서 주거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상상하고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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