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급공사도 안전불모지…지자체·시공사 책임 방기가 부른 ‘인재’

지난 22일 원주시·하동군 현장서 중대 재해 발생…정부는 중대재해법 후퇴, 국회는 특별법 뒷전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이 안전사고에 노출된 공사 현장의 실태를 전했다. 또한, 노조는 시행령 개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추진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국회를 향해서는 발주처와 시공사의 안전 관리 책임을 명시한 건설안전특별법 처리를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최근 원주시와 하동군이 발주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한 명은 뇌사 상태에 빠지고, 한 명은 사망했다. 관급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사고는 기본적인 안전장치만 있었더라도 막을 수 있었다. 노동 현장은 안전불모지인데, 정부는 발주처와 시공사 책임을 완화하려고 한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이 안전사고에 노출된 공사 현장의 실태를 전했다. 또한, 노조는 시행령 개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추진하는 정부를 규탄하고, 국회를 향해서는 발주처와 시공사의 안전 관리 책임을 명시한 건설안전특별법 처리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묵념으로 시작했다. 공사 현장 사고로 생사기로에 선 노동자의 쾌유를 기원하고, 사망 노동자를 애도하는 의미다. 지난 22일 강원 원주시와 경남 하동군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원주시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한 목수는 뇌사 상태다. 하동군 현장에서 일하던 덤프트럭 운전사는 트럭 본체와 문에 사이에 끼어, 병원 후송 중 사망했다.

두 공사는 각각 원주시와 하동군이 발주한 관급공사다.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지자체가 발주·관리하는 관급 공사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데, 민간 공사는 어떻겠냐”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고는 분명 인재”라며 “정부와 지자체, 건설 자본이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현실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비계·추락방지망·안전고리, 기회는 3번이나 있었다

원주시 사고는 행정문화복합센터 건설 현장에서 발생했다. 노동자는 약 10미터 높이의 2층에서 작업하다가 떨어졌다. 그가 딛고 있던 건 구조물에 위태하게 걸쳐놓은 나무판이었다.

건설 현장에서는 골조 작업을 할 때 노동자가 발을 딛고 작업할 수 있는 철제 구조물을 설치한다. 이른바 ‘비계’다. 건물 뼈대가 될 구조물 주변을 둘러 비계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노동자가 작업하는 형태다.

원주시 현장에 설치된 비계는 발판 역할을 하지 못한다. 공사 중인 센터는 5층짜리 건물로, 3층부터 평수가 넓어지는 구조다. 문제는 2층 비계도 3~5층 기준으로 설치한 점이다. 2층 구간은 오목하게 들어가다 보니 비계에서 구조물까지 거리가 멀어진다. 정상이라면, 작업 위치에 가깝게 비계를 설치해야 한다.

노동자는 비계와 구조물 사이에 튀어나온 강관에 나무판을 놓고 발판 삼아 작업해야 했다. 발을 잘 못 디디거나, 나무판이 강관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추락하는 것이다.

추락방지망이 있었더라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나무판 밑에는 그물망이 없었다.

높은 곳에서 작업할 때 추락 방지를 위해 걸어 놓는 안전고리도 무용지물이었다. 노동자가 입은 조끼에는 안전고리가 달려 있었지만, 현장에는 안전고리를 매달만한 곳이 없었다. 안전고리를 걸었다면, 나무판에서 떨어지더라도 추락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고 이후 현장을 다녀온 강한수 위원장은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발주처와 건설 자본이 노동자 안전에 유의하고 있다는 현장이 맞나 싶었다”며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10미터 높이에서 일하는데, 서서 작업할 발판도 없었다”며 “마치 곡예를 하듯, 밟아 부러져 떨어질지도 모르는 각목을 철제 가설물 위에 놓고 일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추락 사고가 발생한 원주시 발주 공사 현장. ⓒ전국건설노동조합

예산만 측정한 시공사, 관리·감독 책임 방기한 지자체, 안전불감증 만연한 현장

원주시 사고를 막기 위해 마련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적어도 세 가지는 있었지만, 시공사는 어느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 현행법상 안전장치 설치를 위한 예산 책정은 의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사비 규모에 따라 2% 안팎을 산업안전보건관리비로 책정하도록 규정한다. 노조는 시공사가 예산을 책정만 해놓고 실제로는 안전장치 설치에 돈을 쓰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발주처인 원주시가 공사 기간을 짧게 잡은 점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다. 사고 현장 공사 기간은 약 1년 7개월이다. 노조는 공사 기간이 적정하지 않다는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했다. 노조가 입수한 원주시-시공사 간 공사변경계약서에 따르면, 도중에 공사 금액이 기존 86억원에서 97억원으로 증액됐다. 변경 사유는 ‘설계서의 불분명, 오류, 누락, 및 설계서 상호모순’이다. 설계상 문제로 추가 작업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작업은 늘었지만, 준공일은 오는 11월 8일로 유지됐다.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설계에서 누락된 부분을 반영해 시정하려면 돈뿐 아니라 기간도 늘어나야 한다”며 “노동자들은 공사 기간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 속에 일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안전에 대한 원주시의 관리·감독도 부실했다. 노조에 따르면,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원주시 공무원은 일주일에 2~3번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문외한이라도 한눈에 보기에 안전 조치가 미흡한 상황이었지만,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전 실장은 “현장에서 상황을 봤으면서도 전달을 안 했거나, 혹은 전달은 했지만 상부에서 무시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지자체의 발주 공사 현장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허술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하동군 사고도 안전 조치를 통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사고 당시 노동자는 도로 재포장 공사 현장에서 덤프트럭 적재함을 청소하고 있었다. 이때 후진하던 소형건설기계가 적재함 뒷문을 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신호수가 있었다면 소형건설기계 운전자가 덤프트럭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신호수 일당은 10만원 수준이다.

전 실장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건 아닌데, 다들 안 하니까 관행처럼 이어지는 실정”이라며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이 안전사고에 노출된 공사 현장의 실태를 전했다. 사진은 추락 사고가 발생한 원주시 발주 공사 현장 노동자들의 복장을 설명하는 모습. 안전고리가 달려 있지만, 현장에는 안전고리를 매달 곳이 없어 제 역할을 못하는 실정이다. ⓒ민중의소리

‘시행령 통치’로 중대재해법 후퇴시키려는 정부…건설안전특별법 처리 미루는 국회

관급공사 현장에서조차 노동자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오히려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대표적인 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이다.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고용노동부에 전달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방안에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의사결정권을 쥔 사업주 대신 CSO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건설 업계에서는 CSO를 두고 ‘감옥수당 받는 사람’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고 전했다. 처벌 대상을 사업주에서 CSO로 변경하는 건 기업의 안전 조치 강화 유인 효과를 무색하게 하는 ‘개악’이라는 지적이다.

국회를 향한 비판도 제기된다. 발주처와 시공사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과 지난해 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처와 시공사, 감리, 노동자 등 각 주체의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고 처벌 조항을 규정했다. 발주처가 적정 공사 기간을 산정하도록 하고, 시공사의 안전 시설물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내용이다. 법안이 발의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건설 업계 반발로 국회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강한수 위원장은 “건설 자본이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안이 특별법에 담겨 있다”며 “적정 공기와 비용이 핵심이라는 걸 정부와 국회만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태의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살인 기업을 처벌하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령 개정으로 후퇴시키려는 윤석열 정권의 의도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외면하는 행태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며 “현장의 죽음이 쌓일 때 우리는 심판의 칼날 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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