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공동행동,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은 30일 서울 노원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원센터 장애인 돌봄 사업 폐업 결정을 규탄했다. ⓒ민중의소리
전국에서 거의 유일한 공공 장애인 돌봄 서비스가 중단될 위기다. 노원종합재가센터(노원센터) 얘기다. 전격적으로 폐업이 추진되고 있다. 민간센터에서 서비스를 받기 어려운 장애인과 보호자들은 ‘인공호흡기’를 빼앗긴 심정이라고 호소한다. 노원센터 일하던 장애인활동지원사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성동구로 출근해야 판이다.
노원공동행동,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은 30일 서울 노원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원센터 장애인 돌봄 사업 폐업 결정을 규탄했다.
앞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은 지난 29일, 노조에 공문을 보내 ‘오는 11월부터 노원센터 장애인 돌봄 사업을 성동센터로 통합한다’고 통보했다.
노원센터가 운영하는 장애인돌봄사업은 장애인활동지원사업과 발달장애 청소년 방과후서비스가 있다. 활동지원은 활동지원사가 장애인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이고, 방과후서비스는 장애인이 센터를 찾아오는 방식이다.
서사원 산하 센터 가운데 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하는 곳은 노원센터와 성동센터 두 곳뿐이다. 발달장애 청소년 방과후서비스를 운영하는 곳은 노원센터가 유일하다.
서사원은 ‘통합’이라고 했지만, ‘폐업’이나 다름없다. 통합이 되면, 노원센터 활동지원사는 성동센터로 출근해야 한다. 노원센터와 성동센터는 대중교통·자가용으로 약 50분 거리다. 노원센터 소속 활동지원사가 일을 그만두면, 기존 노원센터 이용자는 더 이상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간 노원센터에서 방과후서비스를 받던 이용자도 비슷한 처지다. 성동센터까지 먼 걸음을 해야 하는데, 장애인에게는 이동 자체가 큰 부담이다.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지역주민과 활동지원사들은 “노원주민을 무시하고 공공성을 외면하는 서사원의 일방적인 돌봄 사업 중단은 노원주민에 대한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사원의 노원센터 장애 돌봄 포기 선언은 윤석열 정부 복지 민영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우려와 심각성을 느낀다”며 “노원지역이 돌봄 민영화의 시초가 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밀실 추진된 폐업…장애인·노동자에 일언반구 언급 없어
서사원이 노원센터 장애인 돌봄 사업 폐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용자와 활동지원사는 배제됐다. 노조가 처음 폐업 추진 상황을 파악한 건 불과 며칠 전이다. 지난 26일 열린 서사원 소속기관 센터장 정례회의 자료를 통해서다. 해당 자료에는 장애인 돌봄 사업을 효율화하는 방안으로 노원센터와 성동센터의 통합 방안이 명시돼 있다. 당시 회의에는 서사원 대표이사 및 실장, 각 센터장 등이 참석했다.
서사원은 당초 노원센터의 장애인 돌봄 사업 기간이 2019년 1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3년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노원센터가 이용자를 받거나 활동지원사를 채용할 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이다. 회의 자료에는 ‘9월 30일 활동지원사 및 발달장애 청소년 이용자에게 폐업 안내’라고 적혀있다.
강명신 서비스연맹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서울지부 운영위원은 “폐업 신고를 5일 앞두고 활동지원사들에게 통보했다”며 “이런 일방적인 폐업이 어디에 있느냐”고 비판했다.
이번 노원센터 폐업의 책임자로 서울시가 지목된다. 서사원은 노조에 보낸 공문에서 폐업 결정 배경에 대해 ‘서울시의 위탁사업 신규공모 자체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적었다. 서사원 대표이사도 서울시장이 임명한다. 또한, 황정원 서사원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회의원이던 2005년 보좌관을 지낸 최측근이다.
최나영 진보당 노원구의원은 오 시장을 향해 “장애인 정책에 대해 무지한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민간 주도의 돌봄 민영화를 위해 공공 기능을 축소한다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돌입한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어 “서울시가 노원주민의 돌봄 받을 권리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열린 노원구청 측의 대처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역주민과 활동지원사들은 “노원에서 공공 장애인 돌봄 사업이 민간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노원구청의 모든 역량을 다해 막을 것을 촉구한다”며 “폐업을 고집하는 서사원을 설득하고 구청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원구청이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노원구의 공공 장애인 돌봄은 중단될 것이며, 노원구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기관 센터장 정례회의 자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공공 돌봄 공백…장애인·보호자 “참담” 활동지원사들 “노원구에서 취업했는데 성동구로 가라니”
현재 노원센터 돌봄 사업 이용자는 총 32명이다. 활동지원사업은 23명, 방과후서비스는 9명이다. 노원센터가 사업을 접으면, 이들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부천시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아동 학부모 백선영 씨는 연대 발언을 통해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노원센터의 방과후서비스 폐업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잔혹한 조치에 분개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백 씨는 “발달장애아동은 아프지 않아도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학부모 단톡방에 하루가 멀다하고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며 “24시간 눈길을 줘야 한다. 이런 얘기는 하기 싫었지만, 아이의 장애가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방과후서비스는 양육자 숨통을 틔워주는 너무 소중한 기회”라며 “공공서비스를 없앤다는 건 인공호흡기를 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간센터는 대안이 못 된다. “민간센터는 중증 장애인을 기피한다”고 백 씨는 전했다. 그는 “아무리 민간센터가 많아도 지원사와 매칭이 안 된다”며 “차량 지원이 안 된다느니 온갖 핑계를 대면서 거부한다”고 말했다.
노원센터에서 일하는 김덕임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부지부장도 “현재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거의 100% 민간으로 운영되는데, 민간은 돈이 되고 쉬운 일만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가령 민간센터는 서비스 이용시간이 짧은 장애인을 대체로 거부한다. 이동거리는 긴 반면, 수익은 적어서다. 반면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서사원 산하 센터 활동지원사는 정해진 근무시간에 대한 보수를 받는다. 이동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이용시간이 짧은 장애인에게도 서비스를 제공할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서사원 산하 센터에 부여되는 서비스 제공 의무도 공공성을 담보하는 장치다. 서사원 산하 센터 활동지원사는 근무명령이 떨어지면 가리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오전 7시부터 이용자 가정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민간센터에서 거부한 이용자는 활동지원사 입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기 순탄치 않다는 의미다.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활동지원사 권리 보장할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노원센터 활동지원사는 당장 한 달 뒤부터 성동구로 출근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이 2시간 가까이 늘어난다. 성동센터로 출근했다가, 시간 맞춰 노원구 이용자 집에 가야 한다.
김 부지부장은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파도 진통제와 파스를 붙여가면서 결국 병만 남는 힘든 일을 하는데도 결론은 폐업으로 내쳐지는 대우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한 노원센터 활동지원사는 “성동센터로 출근해야 한다고 했으면 애초 노원센터에 취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노동자 활동 여건이 취약해지면 이용자에게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어렵게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