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추앙하라

매몰 비용 ⓒ그림=클립아트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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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에 만들어진 신용어 대퇴직(Great Resignation) 현상은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로 기록적인 수의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현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컨설팅 회사 PwC가 44개 국가의 5만2천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적으로 5명 중 1명이 퇴직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퇴직 현상에 대해 제도권은 노동자들 비난하며 기업들에게 ‘믿을 만한’ 사람들을 고용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제도권의 비난처럼 정말 ‘루저’인 것일까? 2000년대 중반 포커 붐이 일었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프로 포커 선수 중 하나였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인지심리학 석박사 과정을 수료한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대로’의 저자 애니 듀크가 쓴 애틀랜틱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Why Quitting Is Underrated

2019년 런던 마라톤이었다. 수만 명의 참가자 중 하나였던 시오판 오키프는 6.5km 지점에서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통증이 악화되는데도 계속 달렸다고 한다. 결국 13km 지점에서 그녀의 종아리뼈가 부러졌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붕대를 감아주며 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오키프는 계속 뛰었다. 그녀는 거의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각오하고 결국 42.195km를 완주했다.

부러진 다리로 30km 가까이 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더 믿기 어려운 일은 이런 이야기가 생각보다 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같은 날 비슷한 지점에서 또 다른 참가자였던 스티븐 크웨일은 발뼈가 부러졌다. 그 또한 계속 달렸다. 마지막 5km 동안은 여러 번 멈춰서 의료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통증은 극심했다. 그러나 크웨일도 마라톤을 완주했다.

내가 몸담았던 프로 포커의 세계에서는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가르는 생존기술 중 하나다. 나쁜 패는 접는 것이 좋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대부분의 삶의 영역에서 인내를 추앙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세계 곳곳에서 경기 도중 끔찍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선수들의 이야기가 쏟아질 정도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지 않은 인간관계, 직업, 커리어에서도 근성이 과연 미덕일까? 코로나가 불러온 미국의 ‘대퇴직 현상(Great Resignation)’과 관련해 대부분의 언론인과 방송인은 노동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만을 하는 ‘조용한 사직자(quiet quitters)’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을 해주면서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고 떠나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치 패배자라도 되는 듯 유독 비판적이다.

마음에 없는 것일지라도 인내하고 버텨야 한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경영인을 영입한 기업은 만족 못할 성과에도 그들을 교체하지 않으며,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 명백한 제품을 계속 판매한다. 국가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돈과 인명을 내던지며 몇 년, 때로는 수십 년을 보낸다.

이것이 ‘근성’, ‘버티기’의 단점이다. 근성은 우리가 가치 있는 어려운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버틸 가치가 없는 어려운 일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13km 지점에서 종아리뼈가 부러져도 마라톤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2013년에 베스트셀러 ‘프리코노믹스(Freakonomics)’의 공동저자인 경제학자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는 ‘할지 말지’ 고민 중인 사람들을 돕겠다며 ‘동전 던지기’ 사이트를 만들었다. 동전 던지기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겠느냐 하겠지만, 불과 1년 만에 2만여 명이 이 사이트를 이용했다. 그 중 약 6천 명은 이직, 퇴직, 이혼 등 심각한 고민 중인 사람들이었다. (놀랍게도 전체 참자가의 63%가 동전 던지기 결과에 따라 결단을 내렸다).

레빗의 가설은 이랬다. ‘동전 던지기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어떤 선택이 좋은지를 분간하기 어렵다면, 현상 유지를 택한 사람이나 퇴직한 사람, 혹은 이혼을 한 사람의 만족도는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2개월과 6개월 후에 동전을 던진 사람들을 추적했을 때 레빗은 놀랐다. 포기한 사람들이 버틴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본인들은 잘 몰랐지만 참가자들에게 어떤 선택이 좋은지 사실 굉장히 분명했다. 참가자들의 행복으로 보면 확실한 승자는 ‘포기’였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너무 늦게, 그러니까 어떤 선택이 좋은지 명확해진 한참 후에야 결정을 내린 것이다.

거의 반세기에 걸친 연구를 통해 ‘포기’가 미뤄지는 여러 이유가 밝혀졌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80년 리처드 탈러가 제시한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이다. 미래의 비용과 이익을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미 지불한 비용에 집착해 실패한, 또는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시간과 노력, 돈을 계속 투자하는 것이 매몰비용의 오류이다. (‘넛지’의 저자로 잘 알려진 탈러는 2017년 행동경제학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잘 알려진 또 다른 이유는 1988년 경제학자와 리처드 잭하우저와 윌리엄 새뮤얼슨이 제시한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다. 현재의 상태가 변화하면 얻을 수 있는 상태보다 나쁘다는 것이 명백해도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현상유지 편향이다. 기업은 중간 정도의 성과만 낸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존 직원을 교체하지 않고, 사람들은 싫더라도 현재 직장에 머무른다.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 의사결정자들은 선수의 생산성에 대한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받는다. 선수의 기여도에 대한 객관적인 측정 방법이 있고, 그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된다. 팀의 수익을 위해서나 자기 평판을 위해서나 더 나은 선수를 확보해 승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NBA 구단주와 감독들조차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고수한다.

1995년에 사회심리학자 배리 M. 쇼와 하황이 1980년부터 1986년까지의 미국 프로농구 드래프트를 연구한 결과 경기력, 부상, 포지션과 상관없이 드래프트 선순위 선수들에게 경기 시간을 더 많이 주고, 자기 팀에 붙잡고 있는 기간도 길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경쟁 전략이다. 경기력이 나쁜 드래프트 선순위 선수가 경기력이 비슷하거나 더 좋은 후순위 선수보다 코트에서 더 오래 뛸 자격이 없다. 이것이 매몰비용 오류의 결과다.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높은 드래프트 선택을 쓴 팀은 제한된 귀중한 자원을 소모했기 때문에 그것이 비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수를 벤치에서 쉬게 하거나 다른 팀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포츠 영화 ‘머니볼’(2011)이 나오기 전의 얘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경제학자 퀸 키퍼가 여러 현장연구를 통해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 프로 미식축구와 농구에서 드래프트 순위와 연봉이 선수의 경기 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정도가 약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비합리적인 선택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승리에 대한 압력이 엄청난 프로 스포츠 팀들이 분석가 군단을 갖추고도 자기 오판을 수정하지 못하고 계속 끌고 갈 정도이니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오죽하겠는가.

우리는 뭔가를 그만두거나 포기하면 그것이 실패, 즉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낭비’를 과거가 아닌 미래의 문제로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더 이상 투자가치가 없는 일에 1분, 1달러를 더 쓰는 것이 (그것이 얼마가 됐건) 이전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낭비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참는 것, 버티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승리자들은 굉장히 자주 ‘포기’한다. 사실, 그것이 그들이 승리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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