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5억짜리 판때기’ 둘러싼 세 친구의 우정, 블랙코미디 ‘아트’

돌아온 연극 ‘아트’는 진일보했다. 연극 ‘아트’는 이전 작과 다르게 두 가지 버전으로 돌아왔다. 최재웅, 김재범, 박은석 등 젊은 세대의 ‘아트’와 이순재, 백일섭, 노주현의 시니어 세대 ‘아트’를 볼 수 있다. 11명의 배우들이 각자의 색깔로 만들어 가는 이번 ‘아트’는 배우들의 조합이 볼만하다. 관록의 배우들과 젊은 배우들이 전혀 다른 색깔로 이끌어가고 있는 무대를 엿보기로 하자.

이야기는 세르주가 그의 절친 마크에게 자신이 구입한 미술작품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세르주가 산 작품은 가로 150 세로 120센티쯤의 흰색 바탕에 흰색 줄이 쳐진 하얀 그림이었다. 친구 세르주가 유명한 화가 앙뚜르와의 작품을 5억을 주고 산 것을 알게 된 마크는 순간 당황하고 만다. 무대에는 세르주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마크와 자신이 산 미술작품의 가치를 알아봐 주길 원하는 세르주가 서있다.

“설마 이런 ‘판때기’를 5억이나 주고 산 거 아니지?”

세르주와 마크의 갈등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들에게는 친구 이반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거의 없고 싫고 좋음이 분명하지 않는 이반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문방구 업자다. 마크는 이반에게 세르주가 저지른 ‘5억 짜리 판때기’ 이야기를 전하며 울분을 토한다. 이반은 세르주의 그림을 보게 되지만 지나치게 반응하는 마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이 그림을 둘러싸고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친구의 갈등이 시작된다.


사건은 세 사람이 오랜만에 ‘발레’를 보기 위해 약속을 한 그날 터지고 만다. 때마침 이반은 결혼 문제로 모임에 늦고 만다. 결혼 문제로 가족 간 갈등을 겪고 있는 이반의 하소연은 끝없이 이어진다. 마크와 세르주는 다시 그림 이야기로 논쟁을 벌이고 그들 사이에 낀 이반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들의 논쟁은 점점 그림에서 서로에게 품어왔던 감정들로 격해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시즌 공연은 주저 없이 시니어 회차를 선택했다. 무대와 스크린 등을 오고 가는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공연도 좋지만 노배우들의 ‘아트’를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다. 배우 노주현이 연기하는 댄디한 매력의 세르주, 배우 이순재의 지적이고 독불장군 같은 마크, 그리고 백일섭의 소박하고 친근한 이반은 ‘찰떡’같은 캐스팅의 힘을 보여주었다. .

더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는 대 배우들의 조화

세 인물이 몰아치듯 쏟아놓는 대사의 향연이 압권인 연극이지만 노배우들의 연기는 그와 다른 농도를 갖는다. 진짜 반평생 친구로 살아왔을 것 같은 세 사람의 연기는 어떤 연기보다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다. 대배우들의 오랜 세월 쌓인 연기 내공은 이 작품이 꾸준히 보여준 세련된 이미지와 사뭇 다른 매력을 전해준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할지라도 이기심과 오만이 어떻게 우정을 해체하는지, 그리고 해체된 우정은 논리나 명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인정’으로 복구될 수 있다는 게  삶의 진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세 배우의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할 수 없는 티키타카를 보며 쉴 새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세르주의 ‘5억짜리 판때기’는 극의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5억짜리 작품이 된다. 세르주는 마크에게 자신의 하얀 작품 위에 신상 마커로 그림을 그리게 허락한다. 마커는 물로 지워내고 그림은 다시 하얀 그림이 되지만 더 이상 그냥 하얀 그림이 아니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진짜 작품이 된 것이다. 이 100분짜리 연극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나 프랑스 작품의 풍미보다는 여기에 진짜 묘미가 담겨있다.

쉴 새 없는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이번 시즌, ‘마크’역에 배우 이순재, 김재범, 조풍래, 박은석, ‘세르주’역에 배우 노주현, 최재웅, 최영준, 김도빈이, 그리고 ‘이반’역에 백일섭, 박영수, 박정복이 11인 11색의 연기를 볼 수 있다. 세대를 아우르는 연극 ‘아트’는 오는 12월 11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