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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기침체 시그널, 그리고 한국

주요 수출 시장 성장률 둔화, 국내 내수 소비 침체 우려 커져

글로벌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코로나 위기 직후 유동성 파티로 끌어올린 경기가 인플레이션을 불러왔고, 인플레이션에 짓눌린 경제가 침체로 돌아설 것이라는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경제 전망치는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IMF는 지난 1월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4.4%로 전망했다. 하지만 4월 3.6%로, 7월엔 3.2%로 낮췄다. 내달 나올 전망치는 2%대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고심은 더 깊어진다.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수출시장 성장세가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미국은 올해 초 4.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1.7%포인트나 떨어진 2.3%로 전망됐다. 유럽도 상황이 좋지 않다. 7월 기준 성장률은 2.6%로 연초 대비 1.3%포인트 하락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는 경기 사이클상 상승 국면이 종결되고 하강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근 세계 경제는 다발적 리스크 요인이 경기 하강 폭을 확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한국 수출 경기에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했다.

여기에 고금리 시대,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가 최근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소비까지 위축시켜 내수 상황도 악화할 전망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_① 유럽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북·동·중앙 유럽을 잇는 발트해 해저에서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엔 드넓은 북해에 1km 직경의 거대한 거품이 용솟음치는 사진이 보도됐다. 이곳엔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이 묻혀있다. 서방에선 ‘러시아의 고의 파손’이라는 정치적 공방을 하는 모양이지만, 핵심은 정치적 쟁점이 아니다. 조만간 유럽에 공급될 것으로 기대했던 천연가스가 상당 기간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2022년 9월 27일 덴마크 국방부가 공개한 항공 사진, 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Nord Stream) 누출 현장 모습 ⓒ제공 : 뉴시스, 덴마크 국방부, 신화통신

노르트스트림을 운영하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즈프롬은 당초 지난달 3일, 독일로 향하는 노르트스트림1을 점검 후 공급 재개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하지만 가스누출 발견을 이유로 공급을 잠정 중단하더니, 이번에 대형 유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유럽 경제의 ‘에너지 리스크’가 경기 침체 뇌관으로 작용할 공산이 더 커졌다.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이 장기화로 접어들면서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EU 경제는 전체 에너지 소비의 24%를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전체 천연가스 사용량의 36%는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에너지 생산의 1/3을 가스에 의존하고, 전체 가스 소비의 1/3을 러시아에 의존하는 구조다.

대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타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동유럽, 이탈리아, 독일 등을 중심으로 성장이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라트비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이상 의존도 100%) 등 동유럽 국가와 독일(65%), 이탈리아(43%), 스페인(17%) 등이 높은 의존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8월, 독일의 물가는 1차 석유파동인 1973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을 이끈 것은 단연 에너지가격이었다. 1년 전에 비해 35%포인트 급등했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 전기료는 이미 1년 전에 비해 25% 이상 올랐다.

독일 전기·가스·통신·우편·철도 등을 총괄하는 연방네트워크청 클라우스 뮐러 청장은 지난 6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재 연간 가스 요금이 1,500유로(약 200만원)인 소비자는 2023년 최대 4,500유로(약 620만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과 1년 만에 가스요금만 420만원 더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독일은 환경 규제를 한시적으로 풀어, 예비 석탄·석유 발전소를 가동하며 ‘에너지 인플레이션’ 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여의찮다.

독일 연방 통계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물가 상승률 10%, 에너지 소비자물가 35.6% 상승, 식료품 소비자물가 16.6% 상승 등 높은 인플레이션이 눈에 띈다. ⓒ출처 : 독일 연방 통계청 홈페이지

독일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유럽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다. 영국은 오는 10월 ‘에너지 비용 상한선’이 해제된다. 그간 눌러왔던 에너지 비용이 한꺼번에 치솟을 전망이다. 프랑스는 이미 25% 이상 전력 가격이 높아졌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며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 8월 유로존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9.1% 올랐다. 1997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높다. ‘역대 최고치’는 벌써 10개월째 매달 경신되고 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3국은 20% 이상 급등했다. 에너지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 올리고, 올라간 물가가 고착화하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조사국 미국유럽경제팀 최영우 과장은 “러시아 가스공급 중단과 이에 따른 EU 경제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한국 경제의 대EU 수출 둔화, 에너지 수급불안, 산업생산 차질 등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기침체_② 미국

“높은 이자율, 낮은 성장률, 노동시장 유연화는 인플레이션을 낮추지만, 가계와 기업에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이는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데 드는 불행한 비용(unfortunate costs)입니다”

지난 8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제롬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의 일부다. 기준금리를 높이면 성장률이 낮아지고, 고용이 줄어 경기가 침체로 가지만,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파월 의장 발언 이후 미국 증시가 2% 가까이 폭락한 데 이어 글로벌 증시도 함께 주저앉으며 ‘블랙 먼데이’가 재현됐다.

잭슨홀 연설 한 달 뒤, 지난달 21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에서도 파월은 “내 주요 메시지는 잭슨홀 이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경기침체 우려에 따른 금리 인상 속도 조절, 혹은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에 분명한 선을 그은 셈이다.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의지는 연준의 성장률 전망치에서도 드러난다. 연준은 이날 미국의 실질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0.2%로 하향했다. 불과 3개월 전인 6월에 성장률 전망치는 1.7%였는데, 1.5%p 더 떨어지리라 전망했다. IMF 전망치 2.3%와 비교해 급격한 성장률 전망 하락이다. 침체 폭이 커진다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권도현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통화정책이 금융여건 긴축을 통해 실물경제에 파급되는 시차를 감안할 때,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은 조달비용 상승, 소비 위축과 기업실적 악화, 실업률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설한 뒤 떠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AP

진퇴양난이다. 공격적 금리인상에도 인플레이션은 견고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급격하게 올라간 원유가 촉발한 측면이 강하다. 지난 5월, 배럴당 120달러를 뚫고 급등한 유가는 7월까지 100달러 이상 고공행진 했다. 하지만 최근 두 달간 80달러에서 안정세를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 휘발유 가격 역시 6월 리터당 1,850원 선에서 500원 가량 낮아진 1,372원까지 내려왔다.

시장에선 원유가격 안정에 따라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상승세가 큰 폭으로 낮아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미미한 감소세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원유와 농식품 등 가격 변화가 심한 품목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달에 비해 높아졌다는 데 있었다. 근원소비자물가지수가 올랐다는 것은 원유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이 임금·서비스 등 다른 품목의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뜻이 된다. 임금·서비스 가격은 한 번 올라가면 좀처럼 내려오지 않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성장을 짓누르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급격한 금리인상이 또 한 번 경기를 위축시키면서 올해와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이 0.2%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브 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미국 경기침체 확률을 80% 정도로 본다. 어쩌면 그보다 높을 수 있다(Maybe even higher than 80%)”고 했다. CNBC는 9월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75%p 인상한 직후 미국 내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경기 침체 가능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 한 바 있다. 당시 전문가들은 ‘향후 12개월 안에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에 대해 52% 정도로 예측했는데, 행크 교수는 이보다 훨씬 높은 확률로 경기 침체를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_➂ 내수

2022년 2분기, 한국 경제는 민간 소비가 증가한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 관련 방역 조치가 4월부터 사실상 완전히 해제되면서 대면활동이 재개됐고, 그에 따라 서비스 소비가 증가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2분기 한국 경제는 0.7%p 성장했는데, 성장률 기여도를 보면 민간소비가 1.3%포인트로 전분기(-0.2%)보다 크게 늘었다. 순수출(수출-수입) 기여도 -1.0%나 정부소비 기여도(0.1%)를 압도하며 성장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3,4분기에도 소비가 성장을 주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꾸준히 올라 실질 임금, 소비 여력이 줄어드는 데다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며 또 한 번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2년 하반기 국민 소비지출 계획’을 조사한 결과 국민 10명 중 6명은 하반기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소비 지출을 축소하는 이유로는 ‘물가 급등’이 46.3%로 가장 높았고, ‘고용·소득 불확실성 확대’(11.5%)와 ‘채무 상환 부담 증가’(10.6%)가 근소한 차이로 뒤를 이었다. 전경련은 “지속된 물가 상승으로 실질구매력이 감소하고 금리 인상으로 채무 상환 부담이 가중된 데 더해, 주식 등 자산시장 위축으로 국민들의 소비여력이 크게 위축됐다”고 짚었다.

내년부턴 금리 인상에 따른 부채 부담이 소비를 더 크게 옥죌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기준, 금융기관의 대출금리(잔액기준)는 3.91%로 2년 전에 비해 1.11%포인트 인상됐다. 2년 전 부동산 급등기에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이자만 1.11%포인트를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서울에서 8억원 아파트를 구매할 때, 대출을 한도인 3억2천만원까지 받았던 사람은 2년 전 월 이자가 74만원이었지만, 지난 8월 이자는 30만원 늘어난 104만원이 됐다는 의미다.

주택담보대출만 계산했을 때 이야기다. 현실에선 보험대출이나 신용대출 등 주택담보대출 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줘야 하는 돈을 끌어다 주택을 구매한 이른바 ‘영끌’ 족들이 상당수다.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가 2년 전 4%에서 최근 8%를 넘어서며 두 배로 올라붙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월 이자 추가 부담액은 더 큰 규모로 늘어난다. 앞서 예로든 8억원 아파트 구매자가 주택담보대출 3억2천만원에 더해 연 4% 신용대출 8천만원을 추가로 받아 집을 샀다면 2년 전 주택에 들어가는 이자비용이 100만원이었지만, 지난 8월 기준 이자는 57만원 늘어난 157만원이 되는 셈이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생활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월 이자액이 57만원씩 더 들어가게 되니, 올겨울 소비는 더 꽁꽁 얼어붙을 전망이다.

한 시민이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은행 광고판을 지나가고 있다. ⓒ제공 : 뉴시스, AP

민간 소비보다 먼저 한파를 맞고 있는 건 자산가격이다. 부동산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2020년 8억2천만원에 거래됐던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 H 단지의 30평대(86.83㎡)아파트는 최근 실거래가 7억원이 찍혔다. 2년 만에 1억2천만원이 떨어진 것이다. 앞서 예로 들었던 아파트 구매자라면 8억2천만원 중 대출 4억2천만원을 뺀 자기자본 4억원 중 1억 2천만원이 공중에 사라지고 2억8천만원만 남은 셈이다. 수익률이 마이너스 30%에 달한다.

누구나 예상하듯, 향후 부동산 전망도 밝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3년 만에 최저치다. 매매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한다. 100보다 낮으면 집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말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78.5로 21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2년 전 지수가 102.9였던 데 비해 24.4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가 올해 연말까지 급격히 오르고, 내년 하반기까지 고금리 시대가 ‘뉴노멀’로 자리 잡을 경우 주택가격 하락을 더 가팔라질 수 있다. 결국 상당수 주택구입자는 자산가격 하락으로 인한 심리적 소비 위축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수출 시장의 경기 침체 가시화, 내수 소비 축소로 한국 경제의 침체 폭은 예상보다 더 깊고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미·중 분쟁 격화, 중국의 경기침체 등 잠재적 위험 요인을 감안하면 위험성은 더 커진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세계 경제의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응한 선제적인 위기 대응 능력 강화와 취약 계층에 대한 안전망 확충이 요구된다”며 “ 경제정책 최우선 목표가 ‘물가 안정’에서 ‘경기 침체 방어’로 점차 이동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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