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CPTPP 바로보기③ 탈세계화와 주인 잃은 CPTPP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어떻게 볼 것인가

편집자주

정부가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가입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CPTPP 국민검증단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나원준 경북대 교수가 CPTPP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글을 몇 차례 씁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2차 대전 종전 후 케인스주의 복지국가는 수십 년간 자본의 이동을 주권국가의 틀에 묶어놓았다. 그러나 브레튼 우즈 체제가 종말을 맞으면서 초국적 자본에 대한 통제는 이젠 거의 사라졌다. 금융자유화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흐름 총액이 전 세계 생산 총액의 20%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은 급격한 자본유출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외국인자금 이탈에 따른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은 일상이 되었다. 2022년 한국이 다시 마주한 외환위기의 공포는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다.

강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 주도 세계경제 지배질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하나의 실체적 단면은 달러 체제에의 예속이다. 자유를 획득한 초국적 자본의 불안정하고 예측이 어려운 움직임은 곳곳에서 주권국가를 투기적으로 공격하며 달러에의 복종을 강요한다. 모두가 달러에 목말라 하니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미국 국채로의 쏠림 현상이 반복된다. 체제 유지 수단은 다양하다. 전 세계 어디든 좌익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이 정치군사적으로 개입해 전복시키고 고립시켜 왔지만, 제한 없는 자본이동도 못지않게 폭력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 지배질서는 역설적이게도 평화를 깨고 불안을 자극해야만 안정되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의 지속가능성은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지위와 연동된 문제다. 몇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먼저 달러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 경우 20세기 초 양차 대전 사이 기간처럼 헤게모니의 불완전한 이동으로 국제정세가 매우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예견된다. 반면에 미국 의도대로 과거 미소 냉전처럼 두 개의 세계로 분열된 구도가 복원되는 시나리오도 있다. 미국의 우월적 권력이 세계 반쪽에서만 통하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도 힘을 잃어갈 것이다. 이 두 시나리오와는 달리, ‘전략적 경쟁’이라는 이름의 미국의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배제가 첨단산업에 국한되면서 부분적인 현상 유지와 부분적인 탈세계화가 병존할 것으로 점치는 시각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전날 기록한 장중 연고점(1,352.3원)을 하루 만에 경신한 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2022.09.01 ⓒ민중의소리


탈세계화와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

어떤 시나리오를 따르든 미국 일극체제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중국 경제의 부상은 이미 국제관계에 있어 기존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미국의 세계전략도 바뀌었다. 중국과 미국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패권 경쟁이 심화된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반중 블록화에 나서면서 ‘경제안보’라는 낯선 이름의 소동들이 이어진다. 그러나 달러 패권은 더 이상 미국 경제의 강고함 때문이 아니라 미국 이외 나라들이 겪는 불안정과 취약성 때문에 지탱된다.

지금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CHIP4),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자신이 여태껏 만들어온 질서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중이다. 미국은 우방국들에게 중국이냐 미국이냐 양자택일을 강제한다. 중국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한다. 미국이 자국 중심주의로 회귀하고 제국주의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냄에 따라 자유무역의 시대도 종말을 고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도 더는 가망 없는 것이 되어간다.

주인 잃은 CPTPP

2016년 체결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구상이 반영된 새 무역협정이었다. 내용적으로는 한미 FTA의 확장판에 가까웠다. 미국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친미세력의 대표로 ‘마름’(지주의 대리인) 역할을 자처해온 일본을 TPP에 끌어들였다. TPP는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미일동맹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도 트럼프의 자국 내 제조업 지역 득표율을 의식한 갑작스런 TPP 탈퇴 결정은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변수였다.

미국이 빠진 이후 TPP는 일본의 노력에 힘입어 2018년 연말에 CPTPP라는, TPP 앞에 ‘포괄적 점진적(CP)’이라는 용어가 붙은 새로운 이름으로 발효되었다. 현재 시장개방 협상을 진행 중인 영국의 가입이 받아들여지면 CPTPP의 실질적인 회원국은 국내 비준을 이미 마친 9개 나라를 포함해 총 10개 나라가 된다. 여기에는 일본 외에 미국의 전통 우방인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파이브 아이즈 4개국,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묶여있는 멕시코가 포함된다. 그 밖의 나라는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페루다. 칠레와 브루나이는 협정 서명은 했지만 국내 비준이 불투명하다. 칠레의 좌파 대통령 가브리엘 보리치는 CPTPP를 지지하지 않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2022.08.17. ⓒ워싱턴=AP

주권국가로서의 기회와 이익이 중요한 기준

경제안보의 강조는 자국 내로 공급망을 집중시키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혹은 범위를 조금 넓혀 공급망을 우방국과의 경제블록 내에서 안정시킬 수도 있다. CPTPP와 같은 메가 FTA가 바로 그 방향이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해 TPP를 출범시켜놓고도 국내 사정으로 인해 당장은 CPTPP와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중미 간 경제적 패권 경쟁이라는 지배적 구도가 강하게 작동하는 현실에서는, CPTPP도 IPEF처럼 여전히 배후에는 미국의 변화된 아시아 태평양 전략이 밑그림처럼 깔려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로서는 CPTPP에의 가입 여부가, 재편되는 국제무역질서에 어떻게 편입되느냐의 선택 문제다. 무엇보다도 미국 일극체제의 약화와 세계자본주의의 재편 전망을 염두에 두면서 제 발로 굳건히 선 ‘주권국가’로서의 기회와 이익을 중심에 놓고 고민할 일이다. 이번에도 FTA 만능주의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무턱대고 CPTPP 가입을 추진한다면 결국 미국의 돌격대로 일본에 굴종하며 가망 없는 신자유주의의 길을 영영 못 벗어날지 모른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평등한 자립적 경제의 길로부터는 분명히 멀어지고 말 것이다. 한국 민중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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