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는데 윤석열은 초중고와 싸운다

진짜 지랄도 대풍년이다. 제25회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윤석열차(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 금상 수상작)』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입장문을 발표했단다.

그런데 내용인즉슨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한다. 엄중히 경고한다”라는 것이었다.

입만 열면 자유 타령하던 윤석열 정권이 고등학생 풍자만화에 ‘유감’이니 ‘엄중경고’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을 쏟아내다니 이 어찌 지랄이 대풍년이라 하지 않을 수 있나?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조중동과 싸웠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시작부터 초중고랑 싸우고 자빠졌다. 뭔 놈의 정권이 고등학생 풍자만화에 엄중경고를 날리며 광분을 하나?

만화가 기분 나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기분 나쁘라고 그리는 만화가 풍자만화다. 풍자라는 단어 뜻 자체가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이다. 이 말 뜻도 모르나?

그러니까 풍자를 당하면 그냥 “기분 좀 나쁘네” 하고 치우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에 문체부가 나서 초중고와 격돌을 벌이는 게 정상이냐? 그렇게 무식하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던가.(이거 권성동 의원이 한 말입니다~)

멍청한 게 자랑이냐?

이런 짓이 정치적으로 멍청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인지언어학자인 버클리대학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교수는 자신의 저서 『진보와 보수, 문제는 프레임이다 :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설한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사람의 뇌 구조는 “무언가를 생각하지 마!”라고 강요받을수록 그 ‘무언가’를 생각하게끔 설계돼 있다. 사람은 생각의 틀, 즉 프레임을 통해 사고(思考)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우리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호소했다고 치자. 우리는 그 호소를 받아들여 “네, 앞으로 코끼리는 생각하지 않을게요”라고 답을 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아무리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코끼리 생각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코끼리라는 생각의 프레임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윤석열차'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이번 만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저 만화는 내 개인적으로 매우 훌륭하다고 평가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하는 수많은 만화 중 하나일 뿐이다. 저 만화가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됐다고 하는데 그걸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저 만화가 금상을 수상한 게 8월의 일이었다는데 솔직히 2개월 동안 저런 만화가 있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지 않나?

윤석열 정권이 저 만화에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일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비록 저게 뉴스가 됐다 하더라도 그냥 잠시잠깐의 이슈로 묻혔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문체부씩이나 나서서 “무엄하다 이놈!” 이 짓을 하고 있으니 저게 이슈가 안 될 리가 있나?

논란이 거세지자 이제 저 작품을 안 본 사람이 드물 정도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강요할수록 코끼리가 생각나는 게 인간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에 표절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원작품 『영국 총리열차』의 작가로 알려진 스티브 브라이트의 인터뷰까지 공개됐다.

당연히 그는 “해당 고등학생의 작품이 절대 표절이 아니고, 오히려 상당한 실력을 갖춘 뛰어난 학생”이라고 극찬했단다. 아주 국제적 망신을 사서 하고 있는 셈이다. 윤석열 정권, 당신들 목 위에 달린 건 혹이 아니다.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라.

창의성의 최대 적은 ‘군림’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논쟁조차 되지 않을 이 일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윤석열 정권의 뿌리 깊은 군림 의식이 깔려 있다. 감히 대통령을 풍자해? 감히 영부인을 비웃어? 감히 검찰 권력을 깔아뭉개? 뭐 이런 의식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저열한 대응이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런 군림하는 태도가 사람의 창의성을 크게 제약한다는 데 있다. 리더가 이렇게 군림하는데 부하가 창의적일 가능성은 단 1%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하 직원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부장님을 찾았는데, 부장님이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타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직원에게 ‘아이디어를 찾는 일’은 ‘쓸 데 없는 짓’이 되고 업무는 오로지 ‘정해진 일’을 하는 것이 된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무도 창조적인 시도를 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고교생의 풍자만화에 광분을 하면 우리 청소년들 중 그 누구도 쉽게 대통령이나 정치를 풍자할 생각을 갖지 못한다. 문체부가 초중고와 격돌을 하면 대한민국의 풍자 문화는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짓을 윤석열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경제적으로도 꽤 큰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보자. 박근혜 시절 유행했던 말이 ‘적자생존’이었는데, 이 말은 ‘대통령이 입을 열면 가장 열심히 받아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는 뜻이었다.

이러니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하는데 재벌 총수들이 모두 고개를 처박고 대통령 말씀을 수첩에 받아 적는 황당한 장면이 연출된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적자생존’의 문화에서 무슨 얼어 죽을 창조경제가 가능하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적인 풍모를 잃지 않으며 그 누구와도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을 즐겼다. 자기를 향한 과도한 비난도 달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탈권위주의를 실천한 대통령으로 국민들에게 큰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풍자만화 하나에 문체부까지 동원시켜 초중고와 열라 싸운다. 이건 뭐 하도 유치짬뽕해서 눈뜨고 봐줄 수도 없는 지경인데, 이게 우리 청소년들의 창의성과 사고의 폭을 제한할까봐 걱정이 돼 죽겠다. 멍청한데다가 풍자를 받아들일 기초적인 똘레랑스조차 없는 이 정권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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