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서울시가 토지임대부주택의 시세차익을 보장해주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토지임대부주택 사업 실패 원인으로 지목된 ‘사인간 거래’를 다시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16일 국토교통부(국토부)와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에 따르면 토지임대부주택 수분양자들의 시세차익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사인간 거래 제한을 완화하는 등의 제도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국토부는 올 하반기 중 이 같은 내용의 ‘토지임대부 활성화 방안’을 도출해 입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주거복지의 일환인 토지임대부주택은 공공이 소유한 땅에 건물을 지어 건물의 소유권을 분양하는 방식이다. 수분양자는 건물에 대한 소유권만 갖는 만큼 주변 시세보다 30~50%가량 싼값에 집을 소유할 수 있다. 정부 소유의 토지에 대한 임대료는 별도로 내야 하지만, 주변 시세보단 저렴한 수준이다. 토지임대료는 택지조성원가에 3년만기 정기예금 평균이자율을 곱한 뒤 12개월로 나눠서 산정된다.
현행 주택법에서는 이렇게 분양된 토지임대부주택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되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매가격은 수분양자가 낸 입주금에 은행 1년 만기 정기예금의 평균 이자율을 적용한 이자를 합산한 금액이다.
토지임대부주택은 주변 시세에 비해 집값이 저렴하고, 반영구적 거주가 가능한 만큼 수분양자가 시세차익을 거둘 수 없게 한 조치다.
처음부터 토지임대부주택에 대한 환매가 LH에만 가능했던 건 아니다. 초창기 도입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전매제한기간(5년) 종료 이후 사인간 거래가 가능했다. 그러자 가격이 급등하며 수분양자가 막대한 시세차익이 올리는 상황이 초래됐다. 건물 소유권만 갖는 만큼 집값이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인데다, 토지임대료까지 낮게 책정되다 보니 생기는 일종의 프리미엄이 붙어 발생한 현상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0년 12월 토지임대부주택을 LH에만 되팔 수 있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주택법이 개정됐다.
‘반값 아파트’ 시세차익도 보전해 주겠다는 정부와 서울시
현재 국토부와 서울시, SH가 진행 중인 논의의 핵심은 수분양자들에게 토지임대부주택의 시세차익을 보장해주는 데 있다. ‘토지임대부 활성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수분양자가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LH에만 되팔 수 있도록 하고 있는 주택법을 개정해 사인간 거래를 다시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들은 이미 토지임대부주택의 시세차익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으며, 사인간 거래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국토부와 서울시, SH 모두 토지임대부주택에 대한 제도개선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면서 “기존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사인간 거래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8.16주택공급대책 발표에서도 토지임대부주택 수분양자들의 시세차익을 보장해주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당시 자료를 살펴보면 국토부는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청년 원가 주택’과 ‘역세권 첫 집’을 토지임대부로 분양하되, 수분양자가 전매제한기간(5년) 이후 공공에 환매시 매각 시세차익의 70%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인간 거래를 다시 허용할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토지임대부주택의 개인간 거래를 허용해 주고, 거주 기간에 따라 시세차익을 수분양자와 공공이 나눠 갖는 방식이 유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토지임대부주택의 경우 사인간 거래를 허용하면서 매매가가 너무 급격하게 올랐다. 그래서 ‘로또분양’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주는 분들이 많다”면서도 “개인간 거래를 허용하더라도 거주 기간에 따라 일정 시세차익을 보장해주는 방식을 국토부와 얘기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토지임대부주택 시세차익 보장이 낳은 부작용
부동산 전문가들은 수분양자의 시세차익을 보존해주는 순간부터 토지임대부의 존재 이유도 사라진다고 우려했다. 거래가 발생할 때마다 가격 역시 상승할 수밖에 없어 토지임대부주택과 일반주택간의 차이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임재만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법이 현행대로 유지돼야 공공이 싼 토지임대부주택을 계속 보유할 수 있다. 그래야 이후 토지임대부 주택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주거 약자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세차익을 보장해 주는 순간 토지임대부주택의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처음 들어와 팔고 나간 사람만 돈을 벌게 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임 교수는 “가격이 오른 토지임대부주택은 일반분양주택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며 “그렇다면 굳이 정부가 예산을 들여 토지임대부주택을 지을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공공택지 조성 방식으로 토지임대부주택을 짓는다. 저렴하게 확보한 땅에 토지임대부주택을 지어 분양한다. 토지수용 등으로 마련된 공공주택의 잇점이 특정 수분양자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MB정부 시절인 2011년 서울 강남구과 서초구에 공급된 토지임대부주택도 마찬가지다. LH는 강남의 그린벨트를 풀어 택지를 조성함으로써 택지조성원가를 파격적으로 낮췄다. 임대료율 역시 주변 지역에서 통용되는 임대료율이 아닌 은행의 ‘3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이자율(당시 1~3% 수준)’을 기준으로 삼아 토지임대료가 주변에 비해 크게 낮았다. 당시 집값이 높았던 강남에서 토지임대부주택이 ‘반값 아파트’라 불리며 청약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실제 강남 자곡동 ‘LH강남브리즈힐’은 전용면적 84㎡의 분양가가 2억2천만원, 토지임대료 35만원이었다. 서초 우면지구의 ‘LH서초5단지’는 같은 면적에 분양가 2억400만원, 토지임대료 45만원이 책정됐다.
하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토지임대부주택의 가격은 전매제한기간(5년)이 끝나자마자 급등하기 시작했다. 사인간 거래가 가능했던 탓이다. LH강남브리즈힐 전용면적 84㎡는 2020년 매매가 11억3천만원을 기록했다. 올해 기준 매매가는 11억5천만원, 호가는 16억원에 달한다. LH서초5단지도 개인간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매매가거 8억원대로 뛰었다. 현재 매매가는 10억원, 호가는 15억원대다.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은 “토지임대부주택 환매를 공공만 가능하도록 한 것은 사인간 거래를 통해 수분양자가 지나친 이익을 가져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라며 “다시 사인간 거래를 허용한다거나 정부 차원에서 시세차익을 보전해 주는 대책은 토지임대부의 근본취지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법부터 뜯어 고치겠다는 윤석열 정부
주택법 개정 이후 토지임대부로 공급된 주택은 전무하다. 주택법이 개정된 이후 단 한 번도 토지임대부주택이 공급되지 않았는데, 정권이 바뀌고 다시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인 청년 원가 주택과 역세권 첫 집이 토지임대부로 진행돼야 하는 상황에서 현행법상 수분양자들은 무조건 분양가에 정기예금 금리 정도로만 팔아야 한다. 그래서 토지임대부주택이 주거사다리로써의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서울시와 국토부, SH는 ‘약간의 자산축적 기회라도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토지임대부주택에 책정되는 임대료 현실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토지임대부주택의 토지임대료가 시중보다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토지의 시장임대료와 공공이 환수하는 임대료의 차이가 자본화돼 건물가격에 더해지기 때문”이라며 “토지임대부주택의 토지임대료를 시장임대료 근처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임재만 교수도 “토지임대부주택은 주거복지를 위해 토지임대료를 시장임대료보다 낮게 받는다”며 “그런데 그걸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해주면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런 임대료의 차이가 토지임대부주택의 프리미엄으로 붙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토지임대부주택를 통해 자산 축적의 기회를 주는 건 깊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며 “정부가 나서 특정 소수에게만 돌아가는 ‘로또 분양’을 해주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