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원준의 경제비평] CPTPP 바로보기④ CPTPP는 한일 FTA, 무역역조 심화가 우려된다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 어떻게 볼 것인가

편집자주

정부가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범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가입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CPTPP 국민검증단에 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한 나원준 경북대 교수가 CPTPP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글을 몇 차례 씁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FTA, 즉 자유무역협정은 협정을 체결한 국가 사이에 관세를 비롯한 무역장벽을 없애거나 낮추는 협정이다. 지난 4월 문재인 정권 말기에 한국 정부가 가입 추진을 확정했던 CPTPP도 FTA다. 현재까지 11개국이 CPTPP 가입 서명을 마쳤다.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캐나다, 멕시코, 페루, 칠레, 브루나이, 호주, 뉴질랜드가 그 11개 나라다. 이들의 GDP를 더하면 세계 GDP의 약 13%를 차지한다. 정부는 이 정도의 대규모 경제권에 우리가 참여하지 않으면 손해를 입을 듯이 호들갑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FTA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린 관료들과 정부 용역 타내는데 열중인 기성 학계의 타성과 낡은 인식을 드러낼 뿐이다.

위장된 한일 FTA, 이번에는 제조업도 위태롭다

한국 역대 정부는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명분으로 FTA의 글로벌 허브(‘호구’가 아니라고 하니 조심히 읽어야 한다!)가 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오늘 한국에 발효되어 있는 FTA만 해도 총 18건이다. 서명 내지는 타결된 것을 더하면 22건이다. 이미 작년 말 기준으로 57개국과 FTA를 맺었다. 그렇다면 CPTPP 11개국과는 어떤 상태일까? 올해 1월 발효되었고 개방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 주도의 RCEP(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을 예외로 하면, 한국은 CPTPP 11개국 가운데 9개국과 이미 FTA를 체결한 상태다. 아직 FTA가 체결되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멕시코뿐이다. CPTPP 가입으로 딱 그 두 나라와 FTA를 새로 맺는 셈이다. CPTPP 덕에 거대한 수출시장이 새로 열리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9월 21일 낮 12시 23분부터 30분 동안 UN 총회장 인근 한 콘퍼런스 빌딩에서 두 정상 간 '약식 회담'이 이루어졌다면서 대통령실이 공개한 사진. ⓒ대통령실 홈페이지

물론 무역규모 측면에서 일본을 멕시코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에 있어 CPTPP의 실체는 위장된 ‘한일 FTA’에 가깝다. 과거 정부가 추진하다가 포기했던 바로 그 한일 FTA 말이다. 한일 간 무역에서 한국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을 중심으로 기술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일본에 의존해왔다. 수출이 늘어날수록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커지는 구조적인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 FTA의 역사는 농업과 농촌을 희생시킨 대가로 재벌 대기업의 해외 수출시장을 열어온 과정이었지만 CPTPP는 다를 법도 하다. 이번에는 시장 개방으로 농업뿐만 아니라 제조업도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는 탓이다. 중소 제조업과 국내 소부장 생산 기반이 도태될 위험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한일 FTA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가 어떤 자들인가. 불과 3년 전 한국을 수출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해 소부장 대란을 가져온 사례에서 보듯 언제든 다시 이웃을 극우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을 자들이 아닌가.

CPTPP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FTA

한 가지 유의할 점은 CPTPP는 여태껏 있었던 어떤 FTA보다도 시장 개방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CPTPP 회원국들과의 가입 협상 과정에서 개방 수준을 합리적인 범위 내로 조정할 수 있을 것처럼 낙관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낙관은 전혀 근거가 없다. 실제 CPTPP 회원국 간 협상 결과를 보면 품목 수를 기준으로 평균 95% 이상 거의 전 품목에 대해 관세가 철폐되었다. 장기 철폐나 TRQ(일정 수입물량까지는 낮은 관세를 적용하고 초과 시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이중관세제도)의 관세할당 방식으로 각국의 민감한 사정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이었다. 게다가 협상은 후발 가입희망국에게 특히 불리하기까지 하다. 일본 등 회원국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가입 자체가 안 된다. 민감 품목에 대한 충분한 개방 유예(양허 제외)를 얻어낼 가능성은 없다. 가입 신청부터 서두르고 그런 다음 협상하면 된다는 정부의 태도는 그래서 무책임하다.

CPTPP 가입은 최근 무역적자 확대 흐름에 기름을 붓는 격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CPTPP 회원국 11개 나라와의 최근 무역수지를 살펴보면 2017년 81억불 흑자로부터 2018년 18억불 적자, 2020년 58억불 적자, 2021년 138억불 적자로 무역역조(적자)가 심화되는 추세라는 사실이 눈에 띈다. FTA 미체결국인 일본과 멕시코만 놓고 보면 한국은 2017년 218억불 적자, 2021년 212억불 적자로 이 두 나라 때문에 무역적자가 최근 크게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CPTPP 회원국에 대한 최근 무역수지 악화는 기존에 이미 한국과 FTA가 체결되어 있는 9개 나라에 대한 무역흑자가 2017년 299억불, 2018년 159억불, 2020년 132억불, 2021년 74억불로 급격히 줄어든 결과다.

CPTPP 가입국 상대 무역수지 추이 ⓒ자료 : 한국무역협회 국가별 수출입통계

향후 CPTPP에 가입하려는 과정에서는 이미 FTA가 체결된 이들 회원국과 개방 수준을 놓고 재협상을 벌이게 된다. 그 경우 개방 수준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CPTPP가 요구하는 개방 수준 자체가 높아서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에 있어 CPTPP 가입은 최근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는 나라들을 상대로 앞으로 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무역적자는 더 커지기 쉽다고 볼 일이다. 이제 설상가상으로 일본에 대한 구조적 무역적자까지 더해지면 결국 CPTPP 가입은 최근 무역역조 심화 흐름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 무역에서 적자가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리 만무하다. 그것은 적어도 경제성장에는 확실히 부정적이다. CPTPP 가입이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그래서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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