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전 정부 탈탈 털면서 국회 검증엔 ‘철벽’ 치는 감사원

“곤란하다”며 자료 제출 무더기 거부에 국감은 공전...‘감사원 개혁’ 벼르는 민주당, 다음 주 법안 발의 예고

최재해 감사원장(왼쪽)과 유병호 사무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2022.10.11. ⓒ뉴스1

중립성 논란의 중심에 선 감사원이 납득할 수 없는 사유들로 국회 국정감사 관련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피감기관을 상대로 “민간인 사찰” 수준의 무리한 감사를 벌인 감사원이 정작 자신들을 향한 검증에는 선택적으로 입장을 내놓는 모습이다.

20일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감사원은 지난 11일과 오는 24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 법사위원들의 서류 제출 요구에 답변서를 보냈다. 더불민주당 법사위원들이 주로 요구한 ‘서해공무원 피살 사건’, ‘국민권익위원회 감사 과정’ 등 첨예한 현안에 관해서는 대부분 답변을 거부했다. 제출을 거부할 때는 “감사업무 수행에 지장을 준다”는 말이 단골로 등장했다.

특히 감사원은 앞서 자신들이 권익위 등에 요구한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수장 근무태도 관련 자료를 역으로 요구받자 “제출이 곤란하다”며 난색을 보였다. 감사원이 권익위에 자료를 요구한 건 업무 권한으로 적절하지만, 국회의원이 감사원에 요구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감사원은 야당 의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가 ‘정치적’이라는 말도 보탰다.

지난 18일 감사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 일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 제공

툭하면 “제출 곤란하다”는 감사원
최재해·유병호 근태 자료 요구에도 동문서답


감사원이 법사위 소속 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감사원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사무총장을 포함해 지난 2020년부터 거쳐 간 감사원장과 사무총장의 복무 현황과 공용차량 운행일지, 감사원장 등의 관사 관리비 납부내역 요구를 모두 거절했다. 감사원은 감사원장과 사무총장의 근태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판단한 ‘법적 근거’를 묻는 박 의원에게 “감사원 정무직 공무원은 출퇴근 시간을 엄수하고 있다”며 동문서답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유 사무총장의 감사연구원장 재직 시절 ▲출퇴근 시간 기록 ▲특정업무경비 집행내역 ▲업무추진비 사용내역 및 카드사용 내용 ▲외부강의 현황 및 강의료 내역 일체 ▲감사연구원장 국내외 출장 여비 지출 내역 ▲관용차량 운행내역 ▲관사 관리비 지출내역 등 요구도 감사원은 모두 거절했다.

최근 2년간 감사원에서 발생한 출장의 사유와 기간, 출장비 총액 등을 묻는 말에는 “감사업무 특성상 불가피하게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고, 최근 3년간 감사원의 특정업무경비 집행내역을 알려달라는 요청엔 “감사 활동 등에 제약을 줄 우려가 있어 제출이 곤란하다”고 했다. 최근 3년간 감사원 특수활동비 집행내역도, 월성 1호기 감사 관련 감사팀의 특수활동비 지급내역도 감사원은 모조리 “제출이 곤란하다”며 함구했다.

2022년 국책기관에 보낸 감사 실시 관련 공문 일체를 알려달라고 하자 감사원은 “기초 자료수집을 위해 다수 출연·출자기관에 자료요구 공문을 송부한 바 있으나, 해당 공문에는 감사 관련 정보 등이 포함돼 있어 외부에 공개할 경우 향후 감사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며 또 거부했다. 2022년도 하반기 출연·출자기관 경영관리실태 감사 사항을 의결한 지난 8월 감사위원회 회의록 요청 역시 “감사위 회의에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하거나 공정한 논의를 하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며 거절했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실도 ‘거절’ 연속의 답변을 받았다. 최재해 감사원장 및 유병호 사무총장 관련 근태 기록 요구에 감사원은 “감사원장 등 감사원 정무직 공무원은 출퇴근 시간을 엄수하고 있으며, 근태상황도 잘 관리하고 있는 등 복무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국회 국정감사가 '정치적'이라는 감사원의 모순

감사원 답변의 특이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감사원은 야당 법사위원들이 근태 자료를 요구할 때면 꼭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권익위에 대한 ‘공직자 복무 관리실태 등 점검’ 감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에 대응하듯 복무 관련 자료를 요청받아 (국회에) 제출하는 것은 공정한 감사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적절치 않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자신들이 지난 8월 권익위에 대한 감사를 개시한 이후, 민주당 일부 의원이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의 근태 자료를 연달아 요청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거듭되는 국회의 자료 요구는 “감사 방해에 해당할 위험이 있다”고 엄포도 놓았다.

감사원이 제 발 저린 듯 묻지도 않은 권익위 감사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배경엔 감사원의 지난 전력이 소환된다. 지난 8월 1일 감사원은 권익위에 ‘전현희 권익위원장에 근태 문제가 있다’며 실지 감사(현장 감사)에 착수한 뒤 전 위원장의 근태 자료는 물론 업무추진비와 카드 사용 내역 일체 등을 권익위에 요구한 바 있다. 자료 분석을 위해 디지털 포렌식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부위원장들과 수행원들 근태 및 권익위 직원들과 권익위 업무 전반에 대한 자료 제출 요구와 감사가 마구잡이 털기식으로,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감사원의 이례적인 자료 요청에 골머리를 앓는 기관은 권익위뿐만이 아니다. 방송통신위원회,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세청, 법무부, 한국철도(코레일), 질병관리청, 통계청 등이 난처함을 호소하고 있다. 일례로 감사원은 질병청에 공직자 2만여 명에 대한 코로나19 확진 이력을, 국세청에 공직자 7천여 명의 5년간 기타소득 관련 자료를, 코레일과 수서고속철도(SRT) 운영사인 SR에 공직자 7천여 명의 KTX·SRT 이용 내역까지 내놓을 것을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월권” 비판까지 나왔지만, 감사원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감사원 국정감사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2022.10.10. ⓒ뉴시스

공전하는 감사원 국감, 의원실 곳곳에서 한숨
감사원 개혁 벼르는 민주당, 다음 주 법안 발의 예고


감사원의 도 넘는 자료 미제출에 감사원을 견제하는 유일한 외부 기관인 국회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법사위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민주당 의원실 곳곳이 고충을 겪는 상황이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감사에 착수해 실지 감사에 들어간 부분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감사 취지를 내놓는데 지금 감사원은 아예 내지 않는다. 모니터링 상황들에 대해서도 전혀 자료를 못 준다고 한다”며 “중요한 건 거의 제출을 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통상의 국정감사 때와 달리 감사원장의 근태까지 추궁해야 하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며 “다른 기관 횡령 잡으려고 열차 사용 내역까지 요구하면서 자기들 출장비는 안 준다. 최근 공문 수발신 목록도 안 주고, 사무총장·감사원장 결재 서류도 안 준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근태, 출장비, 업무추진비 관련은 하나도 안 냈다. 본인들이 접근 가능한 자료들도 안 내니 감사원 국정감사가 계속 공전 중인 것”이라며 “자료 제출을 안 하면 ‘왜 않냐’는 말 정도밖에 안 듣지만, 내고 나면 그걸로 계속 방어전을 하니 감사원이 버티는 중인 거 같다”고 말했다.

무조건 ‘자료가 없다’, ‘제출할 수 없다’는 감사원의 태도는 표적감사, 정치감사 의구심을 더 키우고 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감사원을 겨냥해 “대통령 지시에 따르는 하명 감사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 검찰의 수사정보 수집기관을 자처하고 있는 꼴”라며 날을 세웠다. 수사기관이 아닌 감사원이 편의적으로 감사 수단을 사용해 무리하게 자료를 수집한 뒤, 이를 검찰에 넘겨주는 “정치보복”, “기획 사정”에 앞장선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감사원 개혁을 벼르고 있다. 전날 국회에서 ‘감사원 개혁 방안 범국민 토론회’를 연 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감사원에 과도하게 집중된 감사 기능과 감사 권한을 분산, 분권화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송병춘 변호사(전 서울시 감사관)는 발제문에서 “감사원은 국회의 요구 등에 따른 주요 국책사업 감사에 집중하도록 하고, 공공기관 기관운영감사, ‘상시공직감찰’ 명목의 불시 복무감사 등은 폐지해야 한다. 자체 감사기구의 감사 기능을 존중하고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는 보충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다음 주 중 당론 형태로 감사원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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