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건강한 노동이야기]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는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정·재계가 떠들썩하지만, 실상 지난 9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업주가 기소된 사고는 단 한 건 뿐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8달 동안 140여 건의 중대재해 사고가 있었고, 이 중 고용노동부가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한 것이 21건, 이 가운데 단 1건만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고 발생 후 조사와 기소에 각각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어쨌든 아직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과 적용이 본격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사업주가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 한 건은 올 2월 발생한 경남 창원의 독성간염 집단 발생 사업장, 두성산업 건이다. 이 회사에서는 간 독성 물질이자 발암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세척제를 사용해 노동자 16명이 독성 간염에 걸렸다. 이런 위험한 물질을 사용하는데도 회사는 배기장치 설치, 개인보호장구 착용 등 최소한의 보건 조치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다뤄진 최초의 ‘직업성 질병’ 사건이자 사업주가 기소된 첫 번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8일 오전 노동부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이 급성중독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 16명이 발생한 것과 관련 경남 창원시 의창구 소재 두성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진은 두성산업 정문. 2022.02.18. ⓒ뉴시스

그런데, 지난 13일 이 회사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할 경우, 진행 중인 재판은 일시 중단된다. 법원이 신청을 기각하면 그대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지만, 두성산업 측은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두성산업의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사업주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것이 모호하고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유해물질을 사용하면서 재해 예방을 위해 배기장치나 개인보호장구 착용도 하지 않은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모호한가? 이 사고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사용물질 정보 제공, 건강진단과 작업환경측정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관리상의 조치’가 이행되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보는 것이 불명확한가? 16명이나 되는 노동자에게 독성간염을 발생시켜 놓고 전혀 반성이 없는 사업주와 그 수족이 된 대형 로펌의 뻔뻔함이 놀랍기만 하다.

이틀 뒤인 10월 15일 에스피씨 계열 제빵 공장(에스피엘)에서 발생한 사고도 마찬가지다. 20대 여성 노동자가 샌드위치 소스 배합 기계에 식자재를 넣는 작업을 하던 중 앞치마가 배합기에 빨려 들어가 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이후 나온 노동조합의 발표를 보면, 예견된 사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에도 앞치마가 벨트에 끼이는 일이 자주 있었으나 회사는 이를 개선하지 않았다.

사고 8일 전인 10월 7일에도 같은 공장에서 노동자 손이 기계에 끼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참변을 당한 노동자도 2인 1조로 작업하게 되어 있는 공정에서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했다. 게다가 해당 공장에서는 사고 다음날 사고 발생 기계를 흰 천으로 싸 두고, 나머지 기계들을 가동 재개해 노동자와 시민들의 분노가 더 커지기도 했다.

지난 15일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평택의 SPL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흰 천으로 싸여 있는 게 사고가 발생한 기계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이전에 끼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재발방지 대책을 잘 세워 이행했다면, 안전 사고 예방을 위한 2인 1조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다면,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대신 안전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잘 들었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기계 안전 조치가 이행되고 있는지 관리를 제대로 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다.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과 그 이행,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안전보건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는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상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의무다. 이렇게 기업과 경영진이 제 할 일을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로 지금도 계속해서 노동자들이 죽어가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 외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따로 만든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기업들이 달라진 모습도 본다. 산업재해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 전반에 대해서 CEO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관리자도 만났고, 노동조합이 3년 전 발행한 안전 관련 보고서에 대해 뒤늦게 회사에서 반응이 오기도 했다. 형식적인 위험성평가를 어떻게 내실있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담당자도 있었다. 이런 변화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의의다. 그 동안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사고 노동자 개인의 책임으로, 안전 담당자의 책임으로 미뤄두던 안전과 건강의 문제를 경영 차원에서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사고 예방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모호하게 한다든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건의 범위를 좁히자는 경영계의 주장이 지속되었고, 이제 다수의 중독 피해자를 발생시킨 사업주가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했지만,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산업재해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산재사고는 기본적으로 기업과 사업주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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