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단독] SPC 사망 사고, 30만원짜리 거름망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다

회사 측, 노동부에 “작업 시 망 사용” 보고…현장 노동자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SPC 제빵공장 사망 사고는 30만원짜리 거름망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 측은 작업할 때 거름망을 사용하게 돼 있다고 조사 당국에 설명했으나, 사고 현장에서 망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들은 거름망을 본 적도 없고, 회사 측으로부터 작업 시 거름망을 사용하라는 설명을 들은 적도 없다고 증언한다.

22일 수사당국 등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23)씨를 부검해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의 구두 소견을 경찰 등에 전달했다.

SPL 평택 공장 소속 노동자 A(23) 씨는 지난 15일 소스 혼합 작업 중 혼합기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 신체 일부가 혼합기에 끼여 소스에 파묻힌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SPL은 냉동생지와 빵, 샌드위치 등 완제품을 생산해 파리바게뜨에 납품하는 회사로, SPC그룹 계열사다.

사고 현장에 CCTV가 없어 정확한 사고 경위는 조사 중이지만, 혼합기에 재료를 붓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 소스를 만들 때 마요네즈나 고추냉이 소스 등 재료를 넣는데, 1통에 10~20kg 정도다. 12시간 맞교대로 이뤄지는 장시간 노동 속에 통 무게를 못 이겨 무게 중심을 잃었을 상황을 추정해볼 수 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있었더라도 인명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혼합기에서 가장 기초적인 안전장치는 망(網)이다.

A 씨가 작업한 혼합기는 가로·세로 1m 통에 3개의 날이 달린 스크루가 돌아가면서 재료를 섞는 방식이다. 혼합기에 망을 거치하면 작업할 때 신체가 스크루에 빨려 들어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망은 숯불에 고기를 구울 때 올려놓는 석쇠나 그릴과 비슷한 형태이다.

혼합기 제조 업계에 따르면, 망은 노동자 안전을 위한 목적과 재료 투입 과정에서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막는 목적으로 쓴다. 

한 혼합기 제조 업체 사장은 “고객사가 혼합기를 주문할 때 망 구입 여부는 선택사항인데, 많은 경우 망을 같이 구입한다”며 “식품회사에서는 스테인리스 재질을 써야 하는데, 1m² 크기로 망을 제작하면 30만~40만원 정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투입하는 재료를 고려해 그물코 크기를 다양하게 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보통 망을 올려두고 작업을 할 텐데 어떻게 재료를 붓다가 사고가 났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망이 없었다면 그렇게 사고가 났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망은 이번 사고 현장에도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였다. A 씨가 작업한 혼합기에는 뚜껑이 열리면 혼합기 작동이 멈추는 이른바 ‘인터록’ 장치가 없어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실제 소스 혼합 작업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혼합 작업을 할 때 재료를 한 번에 대량으로 넣으면 많으면 잘 섞이지 않아, 일정 분량을 조금씩 부어야 한다. 반복적으로 뚜껑을 여닫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무리라고 게 현장 노동자들 설명이다. 망을 거치하면 혼합기 뚜껑을 열어둔 상태에서도 재료를 부을 수 있다.

사고 현장에서 그물망은 발견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관계자는 “사고 당일 초동 조사하러 현장에 갔을 때 망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경찰과 국과수가 먼저 조사한 후라서 치워진 것일 수도 있다”면서도 “망이 있었다면 사람이 혼합기에 끼일 수 없는 구조이니, 애초에 망 없이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거름망이 거치된 혼합기 ⓒ혼합기 제조 업체

SPL 사고 소스 혼합기(교반기) ⓒ이은주 정의당비상대책위원장

다양한 형태의 식품 혼합기 ⓒ구글

“작업 시 망 쓴다” 노동부에 허위 보고한 정황도 

회사 측이 노동부에 작업 시 망을 사용한다고 허위 보고한 정황도 있다. 평택지청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측은 작업 방식을 설명하면서 망을 사용한다고 했다. 소스가 담긴 비닐을 혼합기에 거치된 망에 올려놓고 주걱으로 밀어서 재료를 투입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평택지청 관계자는 “소스 덩어리가 걸러지도록 하기 위해 망을 쓴다고 하더라”라며 “회사 측이 작업 방식을 설명하면서 보여준 사진에는 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이 허위 보고한 것이 사실이라면, 회사 측은 사고 발생 이전에 이미 노동자 안전을 위해 망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장 노동자는 망을 본 적도 없다고 증언한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 강규형 지회장은 “10년간 일하면서 내 눈으로 망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회사 측으로부터 재료 투입할 때 망을 거치한다는 설명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회사 측이 비용을 아끼고 작업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작업 시 망을 사용을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혼합하는 소스가 달라질 때마다 망을 갈아 끼워야 한다. 또한, 망 세척 작업도 추가된다.

혼합기 통에 부은 재료가 완전히 섞여 소스 한 통이 완성되는 걸 1배합이라고 한다. 약 30분을 작업하면 1배합이 완성된다. 배합마다 만드는 소스가 달라질 때도 있고, 한 소스 여러 배합 만드는 경우도 있다.

망을 여러 개 가져다 놓고, 만드는 소스가 달라질 때마다 갈아 끼우면 될 일이다. 마치 고깃집에서 불판을 바꾸는 것과 같다.

이번 사고 발생 혼합기와 동일·유사 설비로 판단돼 작업중지가 내려진 혼합기는 총 9대다. 한 혼합기당 망 10개를 쓴다고 하면, 총 90개, 금액으로는 2,700만원이다. SPC 그룹은 지난 21일, SPL이 영업이익 50% 수준에 해당하는 100억원을 산업안전 개선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강 지회장은 “망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게 필요하다는 인식을 사고가 나기 전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취할 수 있는 안전 대책은 무수히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지속된 위험성 개선 요구에서도, 효율성과 비용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 이번 사고로 이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회사 측 입장을 듣기 위해 복수의 회사 관계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이들 관계자에게 이전에도 ‘빈소에 빵 박스를 가져간 이유’와 사망 사건 경위 등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답변 없는 SPC 홍보팀 ⓒ민중의소리



기사 원소스 보기

  • 등록된 원소스가 없습니다.

기사 리뷰 보기

  • 첫번째 리뷰를 작성해 보세요.

더보기

관련 기사

  • 등록된 관련 기사가 없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