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고 시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마음의 스승, 경제학자 정태인 선생을 추모하며

나는 그를 사석에서 “내 마음의 경제학 스승”이라고 불렀다. 그와 나는 단지 세 번 만났을 뿐이고, 내 생각에 그는 나라는 존재를 기억조차 못할 것 같았지만 나는 정녕 그를 스승이라 생각했다.

그가 소주를 즐긴다는 소문을 들으며 언젠가 내 마음의 스승과 소주 한 잔 기울일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했건만, 나에게 그런 행운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영원히 그 기회를 잃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비주류 진보 경제학자 정태인 선생이 21일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지난해 7월 초 쓰러진 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이후 뇌종양 등으로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했다. 투병 중에도 꾸준히 SNS를 통해 지인들과 소통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선생이 이 길고 힘든 투병생활을 반드시 이겨내리라 믿었다. 투병 이후 거의 매일 그의 SNS를 방문해 그가 남긴 여러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응원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나의 소망과 응원을 짓밟았다. 결국 이렇게 또 한 명의 훌륭한 경제학자가 더 나은 세상을 채 펼쳐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반(反)시장적이었던 그의 목소리

고백하자면 나는 정태인 선생과 꽤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랐다. 아마 정태인 선생이 내 생각을 생전에 들었다면 나를 매우 개량적이고 타협적인, 그래서 선생보다 너무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석에서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꾸지람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평생을 지켜온 비주류 경제학자로서의 신념을 뜨겁게 존경했다. 내 마음을 가장 불타오르게 만들었던 그의 외침은 “경제학은 300년 동안 우리를 속여 왔다.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고, 시장은 효율적이지 않다”는 두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주류 경제학은 300년 동안 우리를 속였다.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며 현실을 왜곡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래 7,000년 동안 협동을 원칙으로 살았던 인류를 이기적 존재(호모 에코노미쿠스)로 폄훼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40여 년의 역사가 증명하듯 시장은 효율적이기는 개뿔, 인류를 더 깊은 도탄의 구렁텅이로 빠뜨렸다. 지난해 국제연합(UN)의 발표에 따르면 8억 명이 넘는 인류가 영양실조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있다. 어린이들이 5초에 한 명씩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다.

반면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비만이 흡연을 제치고 사망 원인 1위에 올라서네 마네를 논하는 상황이다. 누구는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데, 누구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다. 그런데도 시장이 효율적인가? 웃기는 이야기다.

선생이 생전에 목소리를 높였던 “인간은 이기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내 마음에 끝없는 울림을 가져다주었다. 인류는 사실 최근 자본주의 300년을 제외하면 그 어느 시절에도 이기적 존재라는 강요를 듣고 살아온 적이 없다.

되레 인류는 수 만년 동안 훨씬 협동적인 존재였다. 나는 협동하는 인간, 경쟁하지 않고 공생을 도모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정태인 선생의 글과 책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었다. 내가 선생을 마음 속 경제학 스승으로 여기는 이유다.

이해 당사자 이론

학문적으로 선생은 이해당사자 이론(Stakeholder theory)의 지지자였다. 나 역시 이해당사자 이론을 지지한다. 이해당사자 이론이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언급을 한 뒤 학계에서 이슈가 된 용어다.

이 이론이 등장하기 전까지 신자유주의를 지배하던 기업 지배구조 이론은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였다. 주주자본주의란 “기업의 주인은 주주들이다”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에 기반을 두면 기업의 지배구조는 오로지 주주들을 위해 편성돼야 한다.

정태인 선생이 2013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던 모습. ⓒ양지웅 기자

그런데 이렇게 하면 기업의 지배구조는 너무 편협한 모습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기업의 주인은 주주들이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그 기업과 관련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주주들은 주가가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집단이다. 주가가 오르려면 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기업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더 착취해야 하고, 소비자들의 등을 더 잘 쳐야 한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구조인가?

그래서 블레어는 “기업은 회사 안에서만이 아니고 사회 속에서도 신뢰의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신뢰는 함께 일하고 함께 혜택을 받는 서로의 목적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해당사자 경제에서는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실력에 따라 발전하고, 어떤 그룹이나 계층도 분리되거나 배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블레어가 말하는 이해당사자란 주주뿐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그리고 공장이 들어선 지역 주민들을 모두 포함한다. 쉽게 말해 기업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이사회에 주주 이사뿐 아니라 노동자 이사, 소비자 이사, 지역주민 이사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기업은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착취하려 하지도 않는다. 소비자들을 등쳐먹으려 하지도 않는다. 지역주민들의 이익에 반하는 반(反)환경적 태도를 취할 수도 없다. 이해당사자 모두가 참여하는 의사결정과정을 갖는 것, 정태인 선생은 이것이 한국 자본주의를 개혁할 대안이라고 믿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는 기후 위기에 관한 여러 연구 자료들을 읽으며 SNS에 관련 자료를 공유했다. 그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이론을 정립하는 것을 경제학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최후의 소명으로 여겼던 듯하다. 실로 마지막까지 더 나은 세상을 후대에 물려주려 애를 썼던 뜨거웠던 학자였다.

선생과 마주 앉아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꾸지람을 듣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 꿈을 이룰 수가 없다. 사람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나의 은둔자적 성격과 게으름이 이런 큰 후회를 남긴 셈이다.

부디 잠든 그곳이 선생이 평생 꿈꾸던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불평등도 없고, 고통 받는 민중들도 없으며, 시장이 지배하지도 않고, 협동적 인간이 가득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위해 싸워나가는 것, 그것은 우리 후대의 몫이다. 나는 오늘 선생이 더욱 그립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