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고종호 문어의 꿈] 윤석열차 논란, 표현의 자유와 청소년의 권리

편집자주

김고종호 선생님은 전북 지평선고등학교 교사로 전교조 전북지부 정책실장을 맡고 있습니다. 매월 학교와 교육의 문제를 참교육을 고민하는 교사의 시선으로 전해줄 것입니다. 글은 전교조의 교육희망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고종호 문어의 꿈’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윤석열차 논란이 10월 내내 뜨거운 화제다. 올해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작품 윤석열차가 카툰 부문 금상을 수상하고 부천국제만화축제에 전시된 것에 대해 정부가 탄압에 나서자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를 연상시키며, 검열을 당장 중단하라는 문화예술인들의 규탄 성명이 이어졌다.

카툰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동미술 용어사전’을 펴보면 카툰을 “시사나 정치적인 문제를 생략, 강조, 과장의 기법으로 표현하는 풍자화 또는 만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치 풍자라는 내용적 요소가 빠지면 카툰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치적 주제를 다뤘다”며 발끈한 것은 (몰라서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이다.

표절 논란 어이없어, 패러디는 카툰의 대표적 문법

카툰 세계에서 패러디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법이다. ‘천지창조’나 ‘모나리자’ 같은 고전을 패러디하기도 하고, 역사적 장면을 패러디하기도 하며, 영상매체·인쇄매체의 한 컷을 그대로 패러디하기도 한다. 장면의 상황과 등장하는 인물의 특성을 카툰의 주제의식과 연결한다. 강용석 전 의원은 자신을 비꼰 ‘슬램덩크’ 패러디물을 자랑스럽게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하며 “영국에선 대중정치인으로 입문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첫번째 기준이 신문 만평에 나왔는지라고 하네요. 그래서 국회의원이 나온 신문의 첫 만평을 동판에 새겨서 선물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구요”라며 흡족해하는 듯한 글을 남긴 적도 있다.

'윤석열차'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패러디는 가지고 오는 원래의 이미지가 강한 기억 소환 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소재로 삼은 대상이 약자이거나 피해자인 경우 패러디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대구·경북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5.18 계엄군의 광주시민 진압 사진을 두 차례 패러디했다가 큰 비판을 받았다. 광주시민과 5.18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지적에 신문사는 사과했다.

한겨레는 외벽 노동자의 생명줄을 입주민이 잘라버려서 사망한 사건을 가져와 정치권을 풍자한 만평이 큰 비판을 받았다. 역시 한겨레가 논란이 되었던 잡지 ‘맥심’ 표지의 자동차 트렁크 납치 여성 재연 사진을 패러디한 만평이 논란 끝에 게재되지 않은 적이 있다. 만평엔 독재자 박정희가 담배를 물고 ‘진짜 나쁜 남자는 바로 이런 거다 경제발전 했으면 됐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등장하고, 차 트렁크엔 사람 다리가 나오고 ‘민주주의’라는 글자가 보인다. 이 만평이 삭제된 것에 대해 시사만화가협회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반발했다.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권력의 폭력이 성폭력과 닮았음을 만평이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사만화가협회는 성폭력 상황의 재연이 다수에게 큰 공포와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성의 몸을 소비하기 위해 존재했던 과거 예술 영역을 어쭙잖게 패러디했다가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국회에 전시되었다가 난리가 났던 ‘박근혜 누드화’가 대표적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풍자하기 위해서, 에두아르두 마네가 그린 ‘올랭피아’를 패러디하면서, 마네가 비판적으로 패러디한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만 잘라붙이기 한 다음, 박근혜·최순실 얼굴을 합성했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뭔지는 알겠으나, ‘n번방’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지인능욕 범죄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아무런 의미 연상 없이 그냥 재미로 언어유희를 하는 경우도 있다. MB가 뒷짐 지고 청와대를 바라보는 사진을 차용해서, 민간인 불법 사찰을 비판한 내용의 만평이 그것이다. MB는 스님으로, 청와대는 절로 묘사하며 ‘민간사찰 불법사’라는 현판을 걸었다. 말풍선 안에는 “사과라니..차리라 술과 고기를 달라 해라!”라고 적혀있다. ‘사찰’. ‘불법’, ‘사과’ 등의 동음이의어를 장난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불교계는 발끈했다.

소수자를 혐오하고 차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린 카툰은 카툰으로 볼 수도 없기에 굳이 여기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카툰들은 모두 정치권력을 비판·풍자해야 한다는 카툰 정신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 다만 그 소재를 잘못 선택·활용한 데에 문제가 있다. 이런 시비에서 자유로운 카툰을 그려야 하므로 작가들의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윤석열차가 훌륭한 것은, 패러디이지만 위와 같은 문제점이 전혀 없다는 데에 있다. 토마스 열차 패러디는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해왔던 작업이다. 정치권력의 폭주를 기차에 빗대는 작업들로, ‘보리스 총리 풍자 카툰’이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기간에 윤석열 대통령이 열차 안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의자에 발을 올린 일에서 착안해서” 열차 이미지를 떠올린 학생은 기존 작품들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형을 가했다. 김건희 여사가 기관사로 등장하고, 열차에 검사들이 탑승해 있고, 예산을 대폭 삭감당한 노인, 청년, 군인, 여성이 열차의 피해자로 등장하며, 뒤에 ‘여성가족부’ 빌딩이 무너지고 있다. 현 정국에서의 피해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짚어내고 묘사한 부분은 정말 뛰어나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차에 대한 이번 정부 검열 행태는 긁어 부스럼이었다. 그냥 한번 보고 넘어갈 작품을 두 번, 세 번 보게 했다. 그러면서 ‘아, 윤석열 정부가 진짜 이런 면이 있지’하고 곱씹게 된다. ‘스트라이샌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최근 표현의 자유 논란의 퇴행성

카툰 논쟁이 벌어지면 표현의 자유가 언급된다. “내가 샤를리다”(표현의 자유 옹호) vs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혐오·모욕 표현 규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테러를 당할 짓을 했다는 생각은 잘못이지만, 샤를리의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지지할 수도 없다. 가톨릭 교황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믿음을 도발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종교를 모욕하거나 놀릴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때로는 믿음체계가 공고한 권력이 되기도 한다. 종교가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이 될 때, 이를 비판·풍자하는 것은 당연한 작가 정신이다. 정치인을 둘러싼 팬덤 문화도 종교 믿음체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윤석열을 풍자하는 만큼, 우리는 조국이나 문재인을 풍자할 수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 원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비판·풍자의 방향이 권력에서 뒤처진 소수자, 사회적 약자를 향할 때에는 혐오와 폭력이 된다. 즉, 논란이 될 만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할 때에는 사회적 역학관계 내에서 불균형과 비대칭을 견제하고 해소하는 목적을 가질 때 가능할 뿐, 오히려 그것을 강화시킬 때는 억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허용하는 표현의 자유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 기본권이라는 미명하에 혐오와 폭력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은 그대로 두고서, 정작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은 ‘감히 어딜’ 하며 재갈을 물려왔다. 이런 문화적 토양은 익명의 온라인 세상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정신 차리고 살기 힘든 삶의 팍팍함에 대한 분노를 위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표출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있는 보수 개신교 계열의 사람들이 하는 주장이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종교·학문·예술·표현의 자유가 줄어들 것이라 걱정한다. 얼마 전 개판이 된 교육부 개정교육과정 공청회에서도 이런 발언이 나왔다. “우리에겐 혐오할 권리가 있다. 근데 차별금지법은 우리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이는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일베’의 정서와 동일하다. 따라서 지켜야 할 표현의 자유와 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잘 골라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주목받지 못하는 권리 - 학생과 교사의 권리

윤석열차를 두고 일부 정치인들은 “나이 어린 학생이 정치적 내용을 다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참으로 한심한 발언이다. 만16세만 되면 정당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다. 만18세가 되면 공직선거 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초·중·고 학생 모두 언제든 정치적 이슈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전북 A고등학교’의 학교생활규정 징계기준표 일부. 학생의 정치적 활동을 금기시 하는 구시대적 내용이 여전히 들어있다. ⓒ필자 제공

그런데 실제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은 이런 억압을 늘 느낀다. 이번 윤석열차 사태가 남 일이 아닌 것이다. 정치권력에 종속된 교육을 거부할 권리로써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지금은 오히려 교육활동에서 정치적 내용을 다루고 비판하는 활동을 가로막고 있다. 교사는 정치적 기본권이 없어서 정당에 가입도 후원도 지지선언도 못한다. 수업시간에도 말 한마디 잘못하면 징계받고 처벌받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도 광주에서 한 교사가 “검찰 출신이 검찰 동원해 보기 싫은 놈들 조져버리면 군사독재 못지않게 된다”라고 말했다고, 서울에서 한 교사가 “범죄자가 대통령이 됐다”라고 말했다고 징계를 받았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다가 어찌 될지 모르는 게 교사 운명이다.

이건 학생도 마찬가지다. 학생에 대한 규제는 교사가 수행한다. 여러 중고등학교 학교생활규정 분석을 해보면, △불법 집회, 사상 써클에 참여하거나 가입한 학생 △학교장의 허가 없이 대회 행사에 참여하여 학교 명예를 훼손한 학생 △학생을 선동 또는 선동에 가담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한 학생 △동맹 휴학을 선동, 주동하거나 동참한 학생 △정치 관여 행위, 학생 신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학생을 처벌하겠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학교가 여전히 많다. 최근에도 실제로 학교를 비판하거나 정치참여를 한 일로 징계를 받은 학생 사례들이 있다.

따라서 윤석열차 논란은 단순히 문체부 예산 지원을 끊을 것이냐 말 것이냐 정도의 논의에 그칠 일이 아니다. 학교 교육의 영역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정치적 내용을 다루는 데 어떤 억압과 족쇄에 묶여 있는지, 청소년들이 ‘나이주의’에 기반한 차별로 정치·사회적으로 어떻게 소외·배제되어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짚어내고 개선해야 한다. 선발식 경쟁교육 내에서 블랙리스트를 내면화하고 진정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도 못한 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인양 착각하면서 커가는 사회에서는, 예술도 민주주의도 자리잡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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