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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험대에 오른 경제·금융당국의 위기관리능력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채권시장의 자금경색이 이어지면서 당국이 시장 안정 방안을 내놨다. 22일 추경호 부총리, 이창용 한은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은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기존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 이상으로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당국은 국책은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한도를 16조원으로 올리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 등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는 3조원 규모의 지원을 약속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이행하기로 확약했다. 이번에 발표된 지원책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와 비교해도 더 큰 규모인데다가 단기 유동성 위기에 노출된 양호한 PF 사업장까지 포함해 당국의 '의지'는 분명히 보여줬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가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신용평가업체에 따르면 연말까지 돌아오는 PF와 ABCP규모는 32조원이 넘고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되는 회사채 물량은 70조원에 달한다. 지금과 같이 금리인상과 주택가격 하락, 경기둔화 국면에서 채권시장이 이들 물량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지난주 한국전력은 4천억원 대의 회사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2천8백억원에 그쳤다. 회사채-국채 스프레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자금시장 경색이 우량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도산으로 이어진다면 금융위기가 재발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나서서 신규로 특수목적법인(SPV)을 설립해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큰 규모로 매입하는 것도 어려워보인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돈줄을 죄고 있는 정책방향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주택가격 상승기에 마구잡이로 늘어난 부동산 PF 모두를 구제하는 것도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큰 폭의 정책전환이 어렵다면 위기관리가 중요하다. 이번 레고랜드 사태만 해도 강원도가 ABCP지급을 거절한 것이 지난달 말이었다. 경제·금융당국은 이를 지켜만 보고 있다가 시장이 패닉에 빠지고 나서야 대책을 내놨다. 이번에 내놓은 채권안정펀드도 금융회사의 출자로 이루어진 것이라 실제 원활하게 시행되지 않을 수 있다. 국내외의 경제환경은 그야말로 살얼음이다. 작은 불씨가 커다란 화재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당국의 빠르고 치밀한 위기관리를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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